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영화 보는 일에 꽤 많은 시간을 들인다.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만든 고전 영화나, 영화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작품들, 해외 영화제에서 소개된 최신작이나 매달 수십 편씩 쏟아지는 극장 개봉작까지. 좋은 영화를 많이 봐야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영화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보고 싶지만, 사실 그건 불가능하다. 우선 물리적 시간이 따라주지 않는다. 영화를 매일 한 편 보는 일조차도 두 시간이라는 평균 러닝타임을 생각하면 부담으로 느껴지니까. 게다가 영화를 보는 건 어떤 의미에서 축적하는 시간이기는 하나 소비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즉 돈이 든다는 뜻이다. 영화표 한 장에 1만5000원이 넘는 시대에 매일 극장을 방문하는 건 영화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도 사치다.

그렇다 보니 나는 돈과 시간을 써서 극장을 찾는 행위에 좀 더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극장이 단순히 영화를 ‘보기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일종의 영화적 ‘체험을 하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극장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영화에 대한 인상이 달라지기도 하니 고유한 매력을 품고 자리를 지키는 극장들을 찾아가는 건 그 자체로 꽤 즐거운 취미가 됐다. 최근에 친구의 부름을 받고 찾은 극장은 종로의 낙원상가에 있는 ‘허리우드 클래식’이다. 서울극장이 문 닫기 전 종로3가를 찾을 무렵에 낙원상가를 자주 지나쳤지만, 악기를 파는 곳이라고만 생각해서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국밥집이 늘어선 좁은 골목 옆으로 4차선 도로를 끼고 우뚝 서 있는 상가 건물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이 안에 극장이 있다고?

진짜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올라가니 상상도 못 한 광경이 펼쳐졌다. 녹색으로 가득 찬 정원 옆으로, 고전 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찰리 채플린, 오드리 헵번 등 익숙한 얼굴들이 벽마다 붙어 있었다. 작은 매표소 앞에는 영화 시간표와 요금표가 큼직하게 쓰여 있었다. 55세 이상 어르신 요금은 2000원, 일반 요금은 7000원으로 무척 적당했다. 우리는 어르신들이 영화표를 사는 모습을 눈여겨보다 따라 말했다.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있는 영화관 ‘허리우드 클래식’. /오세연 감독

“열 시 반 영화 두 장요.”

사나흘간 한 편을 매회 상영하는 단관 극장이라, 티켓을 예매하면서 영화 제목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이번 상영작은 장뤼크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오래되었지만 전혀 낡지 않은 기념비적 영화다.

골동품과 화분으로 가득 찬 로비를 지나, 상영장으로 들어섰다. 낯선 풍경이었다. A열, B열이 아니라 가열, 나열로 나뉜 좌석, 손바닥보다 큰 글씨로 좌석 번호가 인쇄된 의자들. 멀티플렉스에서 자주 보던 화려한 광고 대신 요실금 팬티 광고까지. 과연 내가 찾은 곳이 실버 영화관이 맞구나 싶었다. 이른 시간 상영이지만 듬성듬성 자리를 채운 관객들이 있었다. 영화가 시작된 이후에도 문을 여닫는 소리, 자리를 찾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라면 영화를 보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을 휴대전화 벨소리나 기침 소리도 극장 분위기와 합쳐져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상영이 끝나고, 극장에 불이 켜졌다. 뒤를 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어르신이 뒤쪽 좌석에 앉아 계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영화가 덜 끝났나 싶었다. 여운을 즐기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느긋한 여유일까. 아직은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이지만, 왜 그런지 멋있어 보였다. 그중 한 분께서 우리를 보고 말씀하셨다.

“여기 젊은 사람도 오나 보네?”

그 말에 놀라움보다는 반가움이 더 많이 묻어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극장 바로 앞에 있는 분식집에서 장사를 시작했는지 어묵 국물 냄새가 났다. ‘떡볶이 맛 없으면 영화표 두 장 환불’이라 쓰여 있는 안내문 때문에 웃음이 나왔다. 다음에는 ‘허리우드 클래식’표 떡볶이를 먹고, 화분이 가득한 로비에 가만히 앉아 있어 보기도 하고, 이곳을 찾는 어르신들과 대화도 나누고 싶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영화를 봤다는 사실만으로도, 영화 친구가 아주 많이 늘어난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