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론 밸리 북부에 있는 콩드리유 마을의 와인 생산자 ‘도멘 조르쥬 베르네’의 포도밭. /도멘 조르쥬 베르네

마르셀 프루스트는 침대에 누운 채로 베토벤 현악 4중주를 듣곤 했다고 한다. 그의 특별한 요청을 받아들여 프루스트의 집에 방문한 4명의 연주자가 단 한 명의 청중인 그만을 위해 연주하는 실황으로. 프루스트에 대해 생각하면 마들렌 냄새보다 침대에 누워 연주를 듣는 그가 떠오르는데, 어떤 표정이었을지는 모르겠다. 감격스러운 마음을 표정으로 드러냈을지, 그런 건 부끄러워서 있는 힘을 다해 자제했을지 감을 못 잡겠다.

이런 음악 애호를 넘어선 프루스트에 대해 누군가는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마신다고 했었다. 콩드리유(Condrieu)를 마시다가 ‘지금 나는 음악을 마시고 있군’이라고 생각했다. 아르페지오나 셈프레 같은 음악 용어처럼 이름도 유음으로 되어서 그런가. 프루스트에 대해 누군가 말했던 ‘음악을 마신다’라는 표현이 어딘가에 잠복해 있다가 튀어나왔다. 프루스트가 마신 건 음악이고 내가 마신 건 와인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그 와인은 음악 같았다. 음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 입에서 ‘음악 같다’라는 말이 나온 게 어리둥절하지만 정말로.

나는 그가 콩드리유도 좋아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음악 같다고 비유한 그 술은 마음을 어딘가로 흐르게 했기에. 현실에 없는 아름답고, 감각적이고, 오렌지빛 광선이 있는 세계로 그의 마음도 흘렀을 거라고 말이다. 그는 레드보다는 화이트, 화이트 중에서도 부르고뉴보다 루아르의 푸이 퓌메나 론의 에르미타주나 콩드리유 같은 다소 보편적이지 않은 화이트를 좋아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베토벤 현악 4중주 같은 것이다. 프루스트가 연주자들을 집으로 모셔서 연주를 들었던 시절만 해도 이 음악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프루스트가 아무리 좋아했다고 해도 이 음악이 지금처럼 상당히 유명했다면 나는 그가 연주자들을 집으로 부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뭐 그런 거 있지 않나. 내가 좋아하던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슬며시 발을 빼고 아직 다른 사람이 모르는 세계를 찾고 싶은 마음. 세상에는 은밀하거나 조용히 좋아하고 싶은 것들이 존재한다.

모임에 갔다가 마신 캘리포니아 비오니에가 맛있어서 집에 콩드리유가 있다는 게 떠올랐다. 콩드리유도 비오니에 품종으로 만드는데, 비오니에 중에서 콩드리유가 최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산 술이었다. 나파 밸리 샤르도네는 오크 냄새가 강하고 단 편이라 그다지 끌리지 않았는데 그날 마신 캘리포니아 비오니에는 다시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어쩐지 친밀하게 다가오는 사람을 다시 떠올려보는 느낌이랄까.

그 콩드리유는 아는 레스토랑이 문을 닫으면서 재고 정리할 때 사게 된 와인이었다. 매입한 금액으로 주겠다며 원하는 와인이 있으면 말하라고 레스토랑의 사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사업가답게 사장님은 포도 품종, 원산지, 빈티지, 입고 가격, 매장 가격 같은 게 정리된 레스토랑에서 재고 관리할 때 쓰는 걸로 보이는 문서를 함께 보내셨고. 내가 선호하는 품종의 와인이 있어서 몇 병을 샀다. 콩드리유는 그때 내가 산 와인 중에 가장 비싼 술이었다. 마셔본 적은 없었다. 콩드리유는 말만 들어봤지 잘 볼 수 있는 술은 아닌데다 콩드리유를 마실 거면 좋은 걸 마시고 싶었기에.

그렇게 산 콩드리유가 도멘 조르쥬 베르네(Georges Vernay)의 테라스 드 랑피르(Terrasses de I’Empire)다. 빈티지는 2017년. 누군가는 미디엄 바디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풀바디라고 했다. 풀바디면 장기 숙성에 유리하고 미디엄 바디면 오래 두는 게 좋지 않다. 부르고뉴 화이트에 풀바디가 많다. 그러다 테라스 드 랑피르는 7년 정도에 마시면 좋다는 걸 어디선가 보았다. 며칠 전에 이만하면 적기에 마시는 거라며 코르크를 열었다.

어… 이 술은 뭐지? 복숭아와 살구 냄새가 나는데 리슬링에서 나는 복숭아나 살구와 다르다. 리슬링의 복숭아가 황도라면 비오니에는 백도랄까. 소박한 깨달음이 왔다. 촉감과 색 때문에 백도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향기를 간과했다는 걸. 내가 좋아하는 것은 복숭아 냄새가 아니라 백도 냄새라는 걸 자각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달콤한 냄새가 서서히 진해졌는데 꿀은 아니었다. 꿀보다는 꿀을 품은 밀원식물에서 나는 프루티하고 생동력 있는 냄새였다. 이마에 주름을 잡으며 한참 생각했다. 뭐지?

처음 보는 것인데도 뭔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들이 있다. 책에서 묘사된 문장이 어딘가에 잠복해 있다가 이게 바로 나라고 아우성치는 에너지가 밀려올 때다. 뇌에 혈류가 쫘악 쏠려서 어지럽기도 한 가운데 정말 그런지 노이즈인지 해독하기 위해 정신을 모은다. 놀라운 것은 거의 처음 떠오른 생각이 맞다는 점이다. 처음 생과를 먹고 ‘이게 대추야자군’이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처럼 이번에도 그랬다. 뭔지 알 것 같았다. ‘이건 인동덩굴이다. 허니서클이야.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를 냄새로 휘감던 그 인동덩굴이겠어.’라는 누군가를 납득시킬 수는 없어도 나를 굴복시키기에는 충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러 가지로 이상한 책이라 좋아한다고 하기는 그렇지만 인동덩굴에 대한 묘사만은 피부에 달라붙어 있다. 소리와 냄새로 모든 걸 파악하는 백치인 벤지는 밤마다 집밖으로 뛰쳐나가는데 그의 마음을 헤집는 냄새 때문이다. 달콤하고 은밀하게, 말하지 못하는 벤지의 마음을 열리게 하는 냄새가 인동덩굴이다. 인동덩굴에 달린 꽃에서 나는 향기는 사람의 마음을 뒤집어놓는 종류의 달콤함인데 낮이 아니라 밤에 개화한다는 걸 소설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밤에 피어나는 관능을 꽃으로 상징화한 게 인동덩굴이라고 느꼈다고도 말해야겠다. 이쯤 되니 대체 인동덩굴에서 어떤 냄새가 나길래라는 의문을 품지 않기 힘들지 않겠나? 의외의 순간에 나의 오랜 궁금증이 풀린 것이다.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인동덩굴 냄새가 궁금하세요? 콩드리유 드시면 됩니다.

더운 곳의 와인은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햇볕이 너무 잘 드는 곳의 와인에 담긴 햇살의 맛은 와인에서 느끼고 싶은 맛은 아니라고. 신대륙보다 구대륙 와인이 취향이라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생각하곤 했다. 구대륙에서도 햇살이 강한 곳 말고 좀 서늘한 곳, 위도가 높은 곳에서 만들어지는 와인이 좋다고. 그 광물질의 맛, 미네랄러티는 그런 기후와 위도에서만 느낄 수 있다고. 그런데 콩드리유는 론의 북쪽 끝이기는 하지만 햇살이 강한 지방인 론의 와인이 아닌가. 와인에 대한 나의 오랜 추구점을 수정할 순간이었다. 이제 콩드리유와 비슷한 기후와 위도에서 만들어지는 와인도 마셔보기로 한다.

이래서 술이 좋다. 희미하게 알거나 기억 속에 있는지도 몰랐던 것들이 육체를 부여받고 부스스 일어나게 되는 순간이라서. 나를 바꿔놓기도 하는 물질이라서. 몸으로 한번 익힌 감각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들었다. 자전거 타기나 수영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수영도 못하고 자전거도 타지 못하는 처지에 이런 말을 하는 게 당당하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술을 한 병 열었을 뿐인데 음악을 마셨고, 햇살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