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보르기니를 타고 구찌 옷을 입고 프라다 모자를 썼다. 돈깨나 있나 보다. 오늘은 예약한 8만원 상당의 오마카세를 즐기려고 레스토랑에 왔다. 테이블 위에는 방문을 환영하는 문구가 적힌 웰컴 카드가 놓여 있고 담당 셰프 이름도 써 있다.
“고객님, 내 가족이라 생각하면서 귀한 재료와 정성의 손길로 준비해 보았습니다.”
총 7가지 코스 요리. 셰프 2명이 나와 부채질까지 해가며 구워주는 소고기와 캥거루 고기는 단연 일품이다. 아주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순식간에 그릇을 비운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가족은 “진지한 퍼포먼스인데 조금 웃기긴 하다”고 깔깔댔다. 가족은 비싼 오마카세 대신 돈가스와 떡볶이를 먹었다. 1시간 30분간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돌아서며 손님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멍멍멍!! 잘 먹었단다. 개팔자가 상팔자다.
◇“요지경 세상” vs. “견주 마음이지”
몇 달 전 서울 청담동에 애견 오마카세 가게가 문을 열었다. 업체는 직접 ‘반려견 오마카세’란 이름으로 메뉴를 만들고 홍보에 나섰다. 100% 예약제로 펫 요리 전문가들이 프라이빗룸에서 코스 요리를 준다. 오마카세를 예약하면 100만원이 넘는 구찌 의상도 입을 수 있다.
7kg 미만 소형견은 5만8000원, 15kg 미만 중형견은 6만8000원, 15kg 이상 대형견은 7만8000원이다. 코스는 자주 바뀌는데, 최근엔 청정육으로 만든 고기를 구워주거나 영양솥밥, 편백찜 등이 나왔다. 견주를 위한 식사는 따로 비용을 내야 한다. 커피를 포함한 떡라면 가격은 1만2500원, 떡볶이는 1만9000원, 소시지김치볶음밥은 2만3000원. 비싸지만 강아지 밥값보다는 싸다. 개가 먹는 동안 견주도 옆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견주들 사이에서는 벌써 입소문이 나서 원하는 시간대 예약이 꽉 찼을 정도라고 한다. 이곳을 다녀온 한 블로거는 “셰프님이 부채질까지 해가며 고기 구워서 이한테 줄 때는 ‘에브리바디 현자타임(일동 당황)’이었다”고 썼다. 또 다른 방문자도 “원가 780원짜리 라면 먹으면서 7만8000원짜리 식사하는 개 나리를 뵙고 있는 내가 레전드”라고 썼다. 이 같은 반려견 오마카세 체험 영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반응은 엇갈렸다. “나라의 평화가 길었다” “하다하다 개마카세라니” “아주 개판이네요” 등의 부정적 의견이 있는 반면, “생일 때 한 번쯤 해볼 만” “반려견과 추억 쌓는 게 왜 나쁘냐” 등의 댓글도 있었다.
◇반려 인구 1300만명 시대
반려동물 시장은 어마어마하다.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고 좋은 곳에도 데려가고 싶은 게 주인의 마음이다. 그래서 이를 겨냥한 산업도 점차 커지고 있다. 펫 산업은 지난해 8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상조 회사도 뛰어들었다. 반려동물 전용 장례 상품을 출시했다. 매월 4만~8만원을 내면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 전문 장례지도사가 직접 염해주고 최고급 수의와 유골함 혜택을 받는다. 평생 간직할 수 있게 반려동물의 털이나 발톱 등을 넣어 보석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제약 회사는 반려동물 전용 영양제를 출시하고 있다.
얼마 전 오픈한 서울 강남 한 호텔은 펫 동반이 가능한 객실을 선보이며 반려동물을 위한 코스 요리, 이른바 개마카세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이 밖에 펫 관련 업체뿐 아니라 유명 외식업체 등도 펫 전용 음식을 속속 내놓고 있다. 사람이 먹는 것보다 신선하고 유익한 재료들만 사용해 만든다는 홍보가 눈에 띈다. 한 유튜버는 시바견과 나란히 앉아 탕후루, 닭꼬치, 피자 등을 먹는 ‘먹방’을 연출하는데, 개가 먹는 음식에는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는 등 더 건강하고 질이 좋다고 언급한다. 자신이 먹는 음식 일부는 광고 음식인데, 시바견이 먹는 건 정성을 담아 비슷한 모양으로 직접 만든다고. 채널을 연 지 1년 정도지만 구독자는 빠르게 늘어 40만명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웃픈(?) 댓글도 보였다. “5000원짜리 짬뽕 먹으며 유튜브를 보고 있는 나, 다음 생은 견생으로 살고 싶네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