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중에 머리 하얀 사람 있잖아, 하면 이 남자가 떠오를 것이다. 히트곡 ‘화개장터’를 작사한 그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이라는 노랫말처럼 살고 있다.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김한길(70) 전 민주당 대표는 윤석열 정부로 건너와 국정 과제 1순위를 맡았다. 국민 통합. 날마다 와장창 소리가 들리는 한국 사회에서 아득한 난제를 붙잡고 있는 셈이다.
“‘화개장터’가 사랑받은 까닭은 우리 국민들 마음속에 ‘지역이 이렇게 반목하고 차별하다가는 나라가 제대로 되지 않겠구나’ 하는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서로 얼마나 다른지 확인하는 게 아니라 서로 얼마나 비슷한지 확인하는 사회적 장치가 곳곳에 마련돼야 해요.”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이하 통합위)는 정권 교체 후 시대정신이 국민 통합에 있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고 첫 번째 국무회의에서 설치령을 통과시켜 ‘1호 위원회’라 부른다. 출범 1주년을 맞아 지난달에 한 업무 보고는 극찬을 받았다. 윤 대통령이 직접 문구를 작성한 편지를 국무위원들에게 나눠주며 “통합위가 제안한 정책을 각 부처에서 적극 반영하라”고 주문할 정도였다.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폐암 4기라는 병마까지 이겨낸 통합위 김한길 위원장은 표정이 밝았다. 그는 “최근에 장관들 전화를 많이 받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어떻게 하면 대통령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지 묻더라고요. 비법이랄 것은 없어요. 대통령이 듣고 싶은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에게 필요한 얘기를 잘 정리해서 그때그때 하는 게 중요합니다.”
◇국민 통합이라는 ‘킬러 문항’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에 ‘있으나 마나 한 위원회는 싹 없애자’고 했다. 김 위원장은 “주변에서는 ‘대선까지 도운 사람 많은데 갈 자리는 없고 위원회 명함이라도 파게 해줘야 한다’고 말렸지만, 대통령은 유명무실한 면피용 위원회는 필요 없다고 밀어붙였다”며 “그런 점이 대통령의 매력”이라고 했다.
-그래도 통합위는 출범했군요.
“국민 통합이 그만큼 절실하니까요. 이명박 정부 때 사회통합위원회, 박근혜 정부 때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있었지만 내세울 만한 결과물은 없었어요.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하는 위원회 말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에 접근해서 문제를 완화하거나 해소할 구체적 대안을 마련하라는 취지였습니다.”
-대통령을 자주 만나나요?
“한 달에 몇 번은 봅니다. 통합위 보고 사항만 들고 가는 건 아니에요. 이런 얘기는 꼭 필요하겠구나 싶으면 말씀드립니다. (요즘 대통령의 고민을 묻자) 저한테 다 얘기하지는 않아요. 발설할 수도 없고요. 하여간 제가 70년 살면서 본 사람 중에 가장 지치지 않고 열정적으로 일합니다. 일정을 빡빡하게 짜지 않으면 담당자가 엄청 깨진대요(웃음).”
-지금 한국 사회는 둘로 쪼개진 것 같고 양극화가 심해집니다.
“세계적 현상입니다. 기술 환경의 변화가 원인 중 하나예요. 만인이 각자의 감정을 만인에게 즉각적으로 드러내 보이니까 갈등이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됩니다. 알고리즘에 의해 정보와 의견에 편향도 발생하고요. 강성 팬덤(적극 지지층)이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국민 통합이란 무엇입니까.
“통합위는 청년·장애인·이주민·자살 등 도처에 분열의 틈이 존재하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싸우지 않고 뭉쳐 있다고 통합은 아니고요,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게 진정한 통합입니다.”
-수능시험에 빗대면 ‘킬러 문항’ 같습니다. 임무를 마치고 빨리 없어지는 게 지상 목표인가요.
“하하. 국민 통합이라는 구호 자체가 불필요한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거의 불가능한 꿈이겠지만.”
-1988년 가수 조영남이 부른 ‘화개장터’를 작사하셨지요.
“30대에 도망치듯 미국에 가 있다가 돌아와 보니 지역감정이 가장 큰 문제였어요. 유행가 가사로 대중과 마주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조영남씨는 처음엔 ‘건전 가요 같다’며 안 부르겠다고 했는데 유일한 히트곡으로 남았지요.”
-통합위원장을 맡을 땐 어떤 생각을 했나요.
“이게 천직인가?(웃음). 우리 사회 밑바닥에 있는 문제들을 중심으로 현실적 대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보수·진보의 화개장터, 남자·여자의 화개장터, 부자·빈자의 화개장터 등 사회 도처에 화개장터를 만드는 일과 같아요.”
-성과를 좀 설명해주신다면.
“지난 1년간 위원회 산하에 특별위원회 11개를 가동했어요. 예를 들면 이주민 문제가 불거지고 있습니다. 충남 인구를 넘어 230만명쯤 돼요. 저도 이주민들과 여러 번 만났고, 그 입장을 겪어본 사람이에요. 일본에서 ‘조센징’, 한국에서 ‘쪽바리’라는 놀림을 당했습니다. 미국에서 햄버거 쿡헬퍼, 주유소 아르바이트 등을 할 땐 동양인 차별도 경험했고요. 이주민이라도 우리 사회에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성공할 수 있도록 통합위가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0년 넘게 본 윤석열 대통령
김 위원장은 195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야당 정치인 아버지(김철 통일사회당 당수)를 둔 대가로 연좌제에 걸려 청년기는 혹독했다. 그는 소설 ‘여자의 남자’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김한길과 사람들’이라는 토크쇼를 진행하면서 유명해졌다. 1995년 배우 최명길과 결혼해 아들이 둘 있다.
-제가 그런 아버지를 두었다면 정치를 혐오했을 것 같습니다.
“민주화와 통일을 외치면서 정작 당신이 거느린 식솔들에겐 한없이 무력한 분이었어요. ‘통일이고 민주화고 개뿔이고 간에 우리한테 신경 좀 써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라며 아들로서 많이 대들었습니다. 제가 유명해지니까 YS와 DJ가 ‘같이 정치를 하자’고 손짓했어요. 얼마나 더 사실지 모르는 아버지까지 그런 부탁을 하니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문학과 정치, 공통점이 있나요?
“사람과 세상에 대한 관심이라는 점에서 같아요. 문학은 그 관심을 다른 관점으로 표출하고, 정치는 현실적이고 제도적으로 표출한다는 게 차이점이지요.”
-정치인으로서 여러 가지 일을 겪었습니다만.
“작은 성공 몇 가지에 나머지는 숱한 좌절이었죠. 후회하지는 말자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돌아보면 세월을 잘 헤쳐온 것 같아요. DJ가 ‘50년 만의 정권 교체’를 이뤘을 때는 처음으로 대선에 TV 토론이 허용됐고 그게 결정적이었습니다. 토크쇼를 한 제가 큰 책임을 맡았고 보람도 느꼈지요.”
-윤석열 대통령과는 인연이 언제부터였나요.
“민주당 대표이던 2013년에 국정원 댓글 사건이 터졌고 윤석열 검사가 수사팀장을 맡아 박근혜 정부와 충돌할 때였어요. 제가 박 대통령을 만나 ‘수사팀의 신변을 보장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는데 얼마 후 지방으로 좌천시키더라고요. 선의로 한 말인데 미안하잖아요. 대구고검으로 쫓겨난 윤석열 검사에게 서울 법대 나온 선배를 보내 ‘검사로는 끝난 것 같으니 다음 총선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자’고 권유했습니다.”
-윤석열 검사가 뭐라고 답했습니까.
“‘출마하면 제가 대선 개입 수사를 한 것이 야당에서 정치하기 위한 포석으로 오해받고 공격받을 텐데 이건 아닙니다!’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어요. 의원총회에서 ‘윤석열이라는 검사가 물먹고 내려가 있는데 이 정의로운 검사를 반드시 지켜내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법사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한 겁니다. 국민적 주목을 받았지요. 구석 자리에 앉아 현장을 목격했는데, 나중에 좀 친해진 다음에 ‘그때 몰래 봤다’고 했더니 ‘저도 다 봤어요’ 하더군요.”
-머리가 하얘서 숨을 수가 없습니다.
“하하. 그러다가 이념을 등에 업은 정권이 국민을 고통스럽게 했잖아요. 문재인 대통령과 갈등이 생기고 저한테 조언을 구하면서 더 가까워졌어요. (대선 출마도 상의했는지 묻자) 그런 얘기를 안 했다면 거짓말이지요. 내 말이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는 모르지만.”
-왜 대선 출마를 권했나요?
“저는 민주당 주류 세력이 하는 정치에 동의할 수 없어 헤어졌습니다. 저들을 이길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권하지 않았을 거예요. 윤석열 후보가 유일한 대안이었고 국민이 불러낸 격이니까요. 그 부름에 순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떤 사람입니까.
“역대 대통령들은 양당 중 하나에서 성장해 나왔어요. 윤 대통령은 그런 경우가 아니라 ‘빚’이 없습니다. 보수니 진보니 해본 적도 없어요. 정치적 득실에 별로 얽매이지 않아요. 손해를 좀 보더라도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밀고 갑니다. 대통령은 좌우(左右)에 충성하지 않는 분이에요. 좌우를 따지기 전에 먼저 국민 행복과 국익을 생각합니다. 저같이 정치를 오래 한 사람이 볼 때는 굉장히 새로워요.”
◇행선지는 정해놓고 경로 가지고 싸워라
대통령들은 취임할 때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하지만 선서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을 키워준 정치 세력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양당은 상대를 나쁘게 하고 ‘우리는 저들과 다르다’는 식으로 존립 근거를 마련합니다.”
-적대적 공존이라고 하지요.
“요즘 보면 적대적 공존을 넘어섰습니다. 적대적 상생이죠.”
-위원장은 왼쪽에 있다가 오른쪽으로 망명한 정치인 아닙니까.
“망명? 저는 어색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민주당 대표 시절에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양당이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이쪽 당 비대위원장 하던 분이 다음 선거에선 저쪽 당 비대위원장을 하지 않습니까? 크게 보면 둘 다 중도 우파에 해당한다고 정치학자들은 말합니다.”
-관점과 정책에서 차이가 있지 않나요?
“결정적 차이를 찾자면 지지하는 지역 기반이 다르고 북한에 대한 생각이 다릅니다. 나머지 것은 어떤 분야에 100억원을 쓰자는데 50억원만 넣자고 하다가 70억원에서 타협하는 식이에요. 저는 양당이 너무 다른 사람들이라고 강조하는 게 우리 정치를 어렵게 만드는 일 중 하나라고 봅니다.”
-쉽게 설명해주신다면.
“자연식품 간판을 건 장사꾼과 건강식품 간판을 건 장사꾼이 서로 손가락질하면서 다투지만 내용은 비슷비슷한 물건을 팔고 있는 셈이에요. 지금 민주당이 제가 있던 민주당과는 달라졌지만 이렇게까지 싸울 일은 아닙니다.”
-과거의 민주당은 어땠나요.
“제가 대표가 된 2013년 기자회견 때 ‘북한 인권법을 발의해 처리하겠다’고 선언하고 의총에서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과반이 동조해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어요.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 하나도 실천을 안 했습니다. 탈북민인 태영호 의원에겐 국회에서 ‘쓰레기’라는 조롱까지 했지요.”
-위원장은 오른쪽 사람들에게는 왼쪽에 서 있는 것 같고 왼쪽 사람들에겐 오른쪽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저는 탈당을 여러 번 했고 제3 지대에서 창당도 시도하다 거듭 실패했습니다. ‘정당 분쇄기’ ‘창당 전문가’ ‘탈당 기록 보유자’ 소리도 들었지요(웃음). 하지만 이제 다당제가 우리 정치 발전의 다음 단계라는 데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잖아요.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세상은 사실 수많은 이상주의자의 좌절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라는 문장을 제가 좋아해요. 답이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겪은 좌절들이 헛되지만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여야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면.
“대선 때만 해도 후보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싸우고만 있어요. 박정희 대통령이 무리해서 경부고속도로를 깐 것이 산업화를 성공시켰다고 하잖아요. 김대중 대통령은 IMF 위기 상황에서도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을 깔았어요. 지금 또 한번 중요한 결단을 하고 속도를 내지 않으면 뒤처지게 됩니다. 여야 모두 우리나라가 가야 할 큰 목표는 정해놓고, 그 행선지까지 가는 경로를 두고 경쟁해야 해요.”
-통합위 1주년 보고회에서 대통령이 정율성 공원 사업을 비판하며 ‘새는 좌우의 날개가 다 필요하지만 날아가는 방향은 같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게 논쟁 대상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어요. ‘보수든 진보든 나라를 위해 하는 얘기는 다 존중합니다. 민주당에도 좋은 사람 있다는 거 저도 압니다. 그런데 종북은 아니잖아요!’ 걸핏하면 미사일 쏴서 우리 국민을 겁박하고 2500만 북한 주민을 노예화하는 체제를 추앙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지지 정당 없음’이 말하는 것
대통령은 ‘철 지난 이념 가지고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보수도 진보도 아니고 헌법주의자예요. 취임 선서는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로 시작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도 “헌법을 수호할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였어요. 윤 대통령은 헌법을 최상위에 놓고 정치를 합니다. 우리 헌법은 좌우가 잘 균형 잡혀 있다고 해요. 인권, 자유, 연대, 법치 등이 다 헌법이 제시하는 가치입니다.”
-’철 지난 이념’이란 무엇인가요.
“여의도에서 말하는 ‘나는 보수야’ ‘나는 진보야’를 모두 겨냥한 것입니다. 대통령은 실사구시, 실용주의를 말한 적이 있어요.”
-그 실용주의는 어떤 정치인가요.
“보수·진보라는 틀을 넘어 넓은 선택지에서 합당한 길을 고르는 것입니다. 중간쯤에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기회를 노리는 정치가 절대 아니에요. 최근에 대통령과 중요한 7~8명이 같이 식사했습니다. 대통령이 ‘재벌 카르텔을 깨서 사회적 약자를 돕자는 제가 진보 아닙니까?’라고 해서 다들 웃었어요.”
-농담처럼 들린 건가요?
“그런 분위기가 있었지만 저는 그게 진심이라는 걸 알았어요. 대통령이 생각하는 건 보수냐 진보냐가 아닙니다. 판단 기준은 국민 행복과 국익이에요. 거기에 맞는다면 과감하게 선택해 밀고 나갑니다.”
-바깥에서 바라보는 민주당은 어떤가요.
“더 잘돼야 하는데 안타깝죠. 나라 발전에 전혀 도움 안 되는 것들을 가지고 너무 격하게 다투고 있습니다. 일본 후쿠시마 방류에 대한 장외투쟁은 국민들이 별로 동조하지도 않는데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여론조사를 하면 ‘지지 정당 없음’이 매우 높게 나옵니다.
“‘지지 정당 없음’이 이렇게 큰 선거는 그동안 없었어요. 우리 정치의 현실입니다. 극단적인 양당은 다 싫다는 뜻이겠지요. 거꾸로 생각하면 우리 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라는 요구입니다.”
-총선을 앞두고 중도층 공략을 잘 못 한다는 시각이 있는데.
“여당의 승리가 절실해요. 지금 의석으로는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 윤 대통령이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만한 의석을 확보해야 합니다. 못 하면 나라도 국민도 손해가 클 것 같아요.”
-윤석열 캠프에서 새시대준비위원장을 맡았을 때 ‘중원(中原)을 향해 몽골 기병처럼 진격하겠다’고 했지요?
“대선이나 총선이나 마찬가지예요. 고정 지지층은 따로 있으니 중간 지대에서 얼마나 표를 가져올 수 있느냐가 승패를 가를 겁니다.”
김한길 위원장은 2018년 폐암 4기 투병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기적적으로 완치됐다. “폐 한쪽을 절제했고 신약으로 효과를 봤습니다. 부작용도 있었지만 저는 운이 좋았어요. 전에는 몸에 좋은 음식을 찾아 먹었다면 요즘엔 몸에 안 좋은 것을 피합니다(웃음). 수영으로 건강을 유지해요.”
-폐암 투병 후 달라진 것도 있습니까.
“체중이 20kg 빠졌다가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축구로 말하면 ‘추가 시간’이 주어진 겁니다. 그런데 적당히 때우는 시간이 아니잖아요. 남은 힘을 전부 쏟아부어야죠. (선거도 투병도 사모님 덕을 봤으니 일방적인 관계 아니냐고 묻자) 너무 잔인한 질문이군요. 그런데 사실입니다. 아내를 만나지 못했다면 정말 난처할 뻔했어요.”
-20대인 아들 둘이 있다고 들었는데 세대 차이도 느끼나요.
“대학 시절 읽은 책에 이런 대목이 있었어요. ‘세대 차이라는 건 부모가 축음기라고 부르던 물건을 우리는 전축이라고 부르는 정도의 차이야.’ 지금은 오디오라 하고 기능도 더해졌지만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는데 이름만 달라진 것이죠. 20대와 70대도 인간으로서 열 중에 아홉은 공유하고 다른 건 기껏해야 하나 정도라고 봅니다.”
-국민 통합에 대해 어떤 생각을 자주 하는지요.
“해외여행 가면 특이한 것을 봤다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저는 다른 이유로 놀라곤 합니다. 여기도 우리랑 비슷한 삶을 사는구나, 하는 거예요.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우리는 사실 다 비슷비슷한 사람들입니다. 비슷비슷한 일로 싸우고 화내고 비슷비슷한 방식으로 화해하며 살잖아요. 그런데도 서로가 상당히 다른 사람인 듯 전제하고 화합하지 못하며 반목하는 게 아닌가….”
추석 연휴에는 흩어져 있던 사람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오랜만에 만날 것이다. 김 위원장은 “국민 통합에는 국민 각자가 분담해야 할 책임도 있다”면서 당부했다. “가족에게, 이웃에게, 세상에 우리가 조금씩 더 너그러워집시다. 마음이라도 조금씩 더 넉넉해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