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 한 마리에서 나온 565kg짜리 고깃덩이 앞에 서니 막막했다. 발골과 정형 작업 끝에 2시간 만에 39부위로 분리했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작업장에 들어서자 거대한 고깃덩이가 천장 레일에 매달려 있었다. 그제 도축한 울릉도 칡소라고 했다. 광평미트 고용재 대표의 말이다. “칡소는 칡덩굴처럼 얼룩덜룩한 무늬가 특징인 토종 한우입니다. 어제 가져와 예랭실에서 24시간 섭씨 5도로 냉(冷)을 입혔죠. 그래야 육질이 단단해져 작업하기 딱 좋거든요.”

고 대표가 소 몸통을 휙 돌렸다. 몸통 안쪽, 등뼈와 목뼈를 따라 길쭉한 고기가 붙어 있었다. “이걸 ‘긴목근’이라고 해요. 일부를 제비추리로 씁니다. 그럼 어디까지가 제비추리냐? 맨 밑에서부터 일곱째까지가 목뼈, 여덟째부터가 등뼈입니다. 7번과 8번 뼈 사이에 칼로 금을 그어주세요. 금 위로만 제비추리입니다. 등뼈와 갈비뼈 사이 안쪽에 있어 운동량이 적으니 연하죠. 금 아래는 목심입니다. 제비추리와 붙어 있지만, 목뼈 바깥쪽에 있어서 운동을 많이 해 질겨요.”

고 대표가 “제비추리를 잘라보라”고 했다. 발골칼은 날 길이가 12㎝로, 과도보다 약간 컸다. 손잡이를 꽉 쥐고 올록볼록한 등뼈 모양을 따라 칼을 움직였다. 칼날이 생각보다 잘 나가지 않았다. 고기가 예상외로 쉬 잘리지 않을뿐더러, 뼈에 칼날이 걸리면 마치 붙잡기라도 한 듯 칼이 움직이질 않았다.

“어허! 칼을 최대한 가볍게 잡고, 칼끝은 최대한 얕게 넣으셔야죠. 그래야 칼이 잘 나가요.” 그의 말대로 가볍게 쥐어봤다. 놀랍게도 고기가 훨씬 쉽게 잘렸다. 칼날이 뼈에 닿았을 때도 유연하게 돌려 피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힘 빼기’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자꾸만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발골은 최대한 힘을 빼야 돼요. 세상일이 다 그렇잖아요.”

고용재 광평미트 대표는 손에서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가볍게 칼을 쥐고 발골 작업을 했다./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한국인의 최애 육류 소고기

소고기 특히 한우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육류다. 연간 소고기 소비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3년 처음 10㎏을 넘었고 2021년 13.9㎏, 2022년 14.9㎏으로 2년 연속 1㎏씩 늘었다. 당연히 명절 선물로도 인기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올 추석을 앞두고 진행한 선물 세트 선호도 조사에서 소고기는 21.4%로 1위를 기록했다.

소고기를 어떻게 발골·정형하는지 체험해보고 싶어 인천 금곡동 광평미트를 찾았다. 광평미트는 서울 서초동에 있는 한우 전문 레스토랑 ‘한우 다이닝 울릉’이 세운 육가공 전문 업체. 지난 9일 찾아간 작업장은 한우 다이닝 울릉 매장에서 낼 고기와 추석 선물 세트를 구성할 한우를 작업하느라 바빴다. “소를 잡아서 바로 먹으면 맛이 없어요. 고기 단백질은 감칠맛이 없어요. 단백질이 분해돼 아미노산으로 변해야 비로소 감칠맛이 생기죠. 그러려면 숙성이 필수입니다. 소는 덩치가 커서 충분히 숙성되려면 3주쯤 걸려요. 추석 즈음 먹을 소고기를 지금 작업하는 이유죠.”

작업장은 서늘하다 못해 추웠다. 벽에 붙은 온도계로는 섭씨 10.6도였다. 소고기의 안정성과 선도를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정부는 발골·정형 작업장 온도를 15도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레일에 걸린 고깃덩이는 4개. 소를 도축하면 발골 작업하기 편하도록 목부터 꼬리까지 반으로 갈라 ‘이분도체’를 만든다. 다시 마지막 갈비를 기준으로 앞다리와 뒷다리로 반씩 분리하면 ‘사분도체’가 된다. 앞다리가 붙은 사분도체를 ‘전사분체’, 뒷다리 쪽을 ‘후사분체’라 부른다.

소 몸통에서 등심과 목심을 떼어내는 모습./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이날 들어온 칡소는 거세한 수소였다. “살았을 때 무게가 850㎏이었는데 도체(도살한 가축에게서 가죽·머리·발·내장·피를 떼어낸 나머지 몸뚱이)는 565㎏이 나왔어요. 한우 거세소는 대개 850㎏, 암소는 650㎏이죠. 수소는 거의 100% 거세합니다. 제일 큰 이유는 노린내 때문이죠. 또 거세를 하면 수소가 ‘암소화’하면서 살이 잘 붙고 마블링(지방도)도 좋아져요. 조선 시대 내시들이 재물에 집착했던 까닭이 성적(性的)으로 막혀서 받는 스트레스를 대신 풀기 위해서였다는데, 그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어요.”

발골과 정형에 필요한 도구는 기본적으로 발골칼과 정형칼 두 자루와 업계에서 ‘야스리’라 흔히 부르는 봉줄이 전부였다. 커다란 소 한 마리를 고작 칼 두 자루와 봉줄 하나로 발골한다니 믿기지 않았지만, 역설적으로 칼과 봉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발골칼은 날 끝부분을, 정형칼은 날 전체를 숫돌로 연마한다. 거친 숫돌로 각을 잡고, 중간 숫돌로 날을 세운 뒤 마무리 숫돌로 예리함을 더한다. 봉줄은 작업 중 칼이 미끄러지고 빗나가는 느낌이 들 때, 칼날에 묻은 지방 막을 벗겨내는 데 사용한다. 숫돌에 연마한 칼날에 묻은 미세한 쇠 찌꺼기를 제거할 때도 쓴다.

◇대분할 10부위·소분할 39부위

소고기는 등심·목심·앞다리·우둔·양지·사태·갈비 등 10개로 대분할한다. 대분할 부위는 다시 안심살·윗등심살·채끝살·꾸리살·홍두깨살·보섭살 등 39개로 소분할된다.

안심살은 남녀노소에게 사랑받는 부위다. 고기 결이 곱고 육질이 부드러워 마블링이 없어도 맛있기 때문에 입맛과 상관 없이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다. 안심살은 뼈를 사이에 두고 채끝살과 맞붙어 있다. 안심살은 허리등뼈 끝자락 아래 안쪽에, 채끝살은 허리등뼈 끝자락 위에 있다. 소를 몰 때 휘두르는 채찍 끝이 닿는 부분이라 이름 붙여졌다. 고기 결이 부드러우면서 마블링이 좋아 최고의 스테이크 부위 중 하나로 꼽힌다. 뼈에서 떼내면 각각 안심살과 채끝살이 되지만, 뼈에 붙은 채로 90도로 썰면 안심살과 채끝살이 뼈 양쪽에 붙은 T본 스테이크가 된다.

소 허리등뼈에서 안심에 이어 채끝을 분리하는 모습./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살치살과 새우살도 마블링 좋고 육즙이 풍부하며 육질도 부드러워 누구나 좋아한다. 살치살은 윗등심살 앞부분에 붙은 삼각형 근육을 따로 떼어 정형한 것이다. 새우살은 공식적으로 인정된 부위는 아니지만, 최고급 구이용 부위로 통한다. 등심살을 동그랗게 감싼 부위를 분리해 정형한다. 등이 굽은 새우처럼 생겼다고 붙은 이름이다. 마블링이 풍부하고 감칠맛이 뛰어나면서 부드럽다.

한우 선물 세트는 안심·채끝·등심 등 구이용 부위와 불고기용 목심으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값비싼 구이용 부위만으로 구성하면 선물 세트 단가가 너무 높아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생고기 구이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특수 부위로 구성되는 선물 세트가 늘어났다. 안창살과 토시살이 대표적 특수 부위로 꼽힌다.

안창살은 갈비 안쪽에 가로로 붙은 횡격막을 분리해 정형한 것이다. 신발 안창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고 대표는 “안창살은 현재 가장 비싼 부위”라며 “소 한 마리당 6㎏도 나오지 않는 데다, 지방이 많아 정형하고 나면 수율이 매우 낮기 때문”이라고 했다. 토시살은 제1등뼈와 제1허리뼈 사이 붙어 있는 근육으로 안창살과 함께 소 내장을 붙드는 역할을 한다. 팔에 끼는 토시처럼 생겼다. 긴 힘줄을 중심으로 굵고 거친 근섬유 다발이 좌우로 빗살무늬를 이룬다. 쫄깃한 식감과 진한 육향 때문에 호불호가 강하게 갈린다는 게 안창살과 토시살의 공통점이다.

그래픽=송윤혜

◇발골도 AI가 하게 될까

칡소 한 마리에게서 나온 565㎏짜리 고깃덩이는 2시간 뒤 39부위로 분리됐고, 진공 포장돼 숙성실로 들어갔다. 발골 작업을 시작할 때 ‘춥지 않을까’란 걱정은 기우였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고, 손에 힘을 빼지 못한 탓에 한참 동안 손가락이 펴지질 않았다. 병뚜껑을 돌려서 열 수 없을 정도로 손목이 아파서 이후 일주일간 매일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다.

고 대표는 “나도 처음에는 고생했지만, 차츰 칼이 들어가고 나가는 길이 보이더라”라고 했다. “살과 살 사이에 공간이 있어요. 그 공간으로 칼이 들어가야 돼요. 보이지 않아도 칼끝의 감으로 가는 거예요.” 그의 이야기에 ‘장자(莊子)’에 나오는 전설의 푸주한 포정(庖丁)이 떠올랐다. 포정은 “소를 잡은 지 19년이 됐지만 칼날이 방금 숫돌에 간 것과 같다”며 “뼈마디에는 틈새가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다. 두께 없는 것을 틈새에 넣으니, 널찍하여 칼날을 움직이는 데도 여유가 있다”고 했다.

포정의 뒤는 조만간 인공지능(AI)이 잇게 될지도 모른다. “일할 사람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예요. 배우려는 사람도 없고요. AI가 카메라로 학습해서 발골하는 시스템이 해외에는 벌써 등장했더라고요. 소마다 크기, 무게, 구조가 달라 힘들겠지만요.”

고용재 대표는 “눈으로 볼 수 없어도 칼끝의 감으로 발골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칡소는 칡덩굴처럼 얼룩덜룩한 무늬가 특징인 토종 한우 품종이다./조선일보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