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 다니는 열정으로 공부를 했으면 하버드대를 갔지!”

어릴 적부터 부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동료들과 퇴근 후 한잔하고 싶은데 어디가 맛집인지 모르겠다고요? 친구, 연인과 주말을 알차게 놀고 싶은데 어디가 핫플인지 못 찾으시겠다고요? 놀고 먹는데는 만렙인 기자, 즉흥적인 ENTP이지만 놀러갈 때만큼은 엑셀로 계획표를 만드는 기자가, 직접 가보고 소개해드립니다.

(더 빠른 소식은 instagram : @hyenny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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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마종기 시인(가운데)과 가수 루시드폴(오른쪽)

지난 23일 오후 7시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 무대 위에 의자 두 개가 놓이고, 한 의자에는 A4용지 다발이, 한 의자에는 기타가 놓입니다. 무대 위로 오른 이는 가수 루시드폴과 시인 마종기. 두 사람이 의자에 앉자, 마 시인 머리 위로 조명이 켜집니다. 그때부터 그는 시를 낭독합니다.

“바다의 별같이 화려할 수는 없겠지만/ 준비 없이 고통받기 두려워 한 발 물러서면서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모순.” –천사의 탄식-

마 시인의 시 낭독이 끝나자, 가수 루시드폴이 기타를 치며 노래로 응답합니다.

“저 깊은 바다처럼/ 우리, 사랑할 수 있다면/ 멀어지는 것들은 많아질 테지.” – 바다처럼 그렇게 -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서 존경과 사랑이 느껴집니다. 나이도, 사는 곳도, 고향도 다른 두 사람의 우정은 업계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마 시인은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연대 의대를 졸업했습니다. 군의관 시절 김수영 시인으로부터 ‘문단에 섞이지 말고 문학에 의학을 잘 접목시켜 보라’는 조언을 받고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군사 정권의 심한 고문과 수감 생활 후 대한민국을 떠나 미국 오하이오주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의대 교수로 지내며 시를 써왔습니다.

가수 루시드폴은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스웨덴 왕립공대에서 석사를, 스위스 로잔 공대에서 박사를 받았습니다. 현재는 제주도에서 감귤과 레몬을 재배하며 액체 비료도 개발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 다 범상치는 않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루시드폴

두 사람의 인연의 시작은 21년 전, 루시드폴이 처음 유럽에 갔을 때였습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도착한 첫날 밤, 불현듯 적적해진 그는 가져온 책들 중 한 권을 펼쳤습니다. 과거 팬에게 선물 받았던 마 시인의 시집이었습니다. 그는 책을 열자마자 깊은 위로를 느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그는 마 시인의 모든 시집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출판사에서 두 사람을 연결해줬다고 하네요.

이렇게 그들은 만났지만, 한 명은 미국, 한 명은 제주, 두 사람의 우정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 때부터 둘은 서로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이 둘이 주고 받은 편지는 두 번에 걸쳐 ‘아주, 사적인 긴 만남’,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이라는 서간집으로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인연을 이어오던 두 사람이 이날 대학로에서 8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루시드폴은 “마 선생님이 8년 전보다 더 젊여지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문학과 음악과 미술의 만남

이 자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2016년부터 열고 있는 ‘문학주간’이라는 행사입니다.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매년 가을 일주일간 축제를 여는 것인데요. ‘책 축제라니!’ 낯설 수도 있지만, 이 두 분의 만남처럼 재미있는 행사들이 많더라고요. 올해는 5명의 MZ세대 기획위원들이 “문인들의 축제가 아닌 모두의 축제가 되도록 하자”는 생각으로 문학과 음악과 미술이 어우러지는 행사를 만들었기 때문인데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왼쪽부터) 가수 생각의 여름, 평론가 강지희, 시인 유희경 기획위원

‘소리- 채집’이라는 주제를 정한 기획위원 강지희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재 문학의 소비 방식이 다양해졌어요. 낭독회도 많아지고, 오디오북도 많아졌죠. 어색할 수 있지만, 사실 문학의 기원은 다 음성 언어에요. 구술 언어에서 출발을 했거든요. 문화 이전의 소리 채집, 그 때로 돌아가보자고 생각했죠.”

몇 가지 재미있는 행사들을 소개해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오는 26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열리는 폐막공연 ‘숲이 꾸는 꿈’을 주목해주세요.

/김초엽 인스타그램 소설가 김초엽
/조정치 인스타그램 음악인 조정치

SF 작가 김초엽과 싱어송라이터 조정치, 미술작가 권혜원이 함께하는 공연입니다. 김초엽 작가의 소설 ‘오래된 협약’을 가지고, 조정치가 앰비언트(공간 음악)을 만들어 기타 연주를 하고, 권혜연 작가가 시각으로 형상화해서 보여준다고 하네요. 소설의 주제는 ‘인간이 행성의 존재를 위해 어디까지 억제할 수 있는가’인데요. 새로운 차원의 소설 낭독회, 아니 완벽하게 진화한 종합 예술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초엽 작가는 자신의 소설이 음악화되는 건 처음이라고 하네요.

기획위원인 유희경 시인은 “이번 행사는 마종기와 루시드폴이 서로 존경하고, 김초엽과 조정치, 권혜연이 서로 팬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행사”라면서 “루시드폴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이번 기회로 마종기 시인의 시도 좋아했으면 좋겠고, 김초엽의 소설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조정치의 음악과 권혜연의 작품도 좋아하게 됐으면 좋겠다. 장르간 활발하게 교류하고, 외연을 확장해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오는 25일 오후 5시부터 예술가의 집 2층 라운지에서 열리는 ‘내 소설의 테마곡’은 소설가 최진영과 김화진의 ‘노동요’를 알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들은 소설을 쓸 때마다 어울리는 음악을 들으며 쓰는데, 그 곡들을 공개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날 오후 7시부터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열리는 ‘소설을 들어보살 – 장면들의 OST’에서는 그룹 ‘눈뜨고코베인’의 출신인 연리목이 김멜라 작가의 소설을 듣고 즉석에서 작곡을 하는 시도를 하는데요. 소설의 OST화라니! 이건 음악인 생각의 여름(본명 박종현) 기획 작품이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없었던 시도입니다.

이런 유명인들이 만나 새로운 시도를 하다니, 티켓이 비쌀 것 같다고요? 전부 무료입니다! 네이버에서 ‘문학주간’을 검색하시면, 티켓을 구입할 수 있어요. 아직 자리들이 남아있는 행사들이 있다고 하니 마음에 드는 행사를 찾아 티켓팅에 도전해보시지요!

◊기획위원들이 뽑은 대학로 맛집은?

오랜만에 대학로에 오신 김에 다녀오실 맛집은 기획위원들이 추천해드립니다.

유희경 시인은 먼저 막걸리집 ‘두두’를 추천했는데요. ‘두두’는 오규환 시인의 시집 제목이라고 해요. 1955년에 만들어진 중국집으로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들의 아지트인 ‘금문’도 훌륭하다고 하고요. 밥먹고 배가 부르면 ‘낙산 공원’을 산책하는 코스도 추천했습니다. 공원 일대에 전경 좋은 카페가 많다고 해요.

강지희 평론가는 대학로의 가장 오래된 터줏대감이지요? 시인 김지하와 천상병, 소설가 이청준 등이 단골이었던 ‘학림다방’을 추천했고요. 아직도 젊은이들로 붐비고 있다고 하네요. 대학로 오면 안 먹을 수 없는 ‘혜화 칼국수’도 변치 않은 맛으로 아직 인기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위트 앤 시니컬’이라는 시집 서점도 추천했는데요. 쌀쌀해지는 가을, 소박하지만 포근한 곳이더라고요.

전 대학로를 정말 오랜만에 갔는데요. 제가 “여기서 공연보고 저기서 밥먹었는데”라고 말하니 유희경 시인이 말했습니다.

“대학로는 모두의 추억을 소환하는 공간”이라고. 지금 대학로로 추억을 찾으러 가보시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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