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하루 앞둔 지난달 28일, 성묘를 하러 부산의 한 공원묘원을 찾은 최모(70)씨 가족은 입구에서 ‘플라스틱 조화(造花) 반입을 제한한다’는 안내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시 공무원과 묘원 관계자들이 “앞으론 생화로 헌화하라”며 성묘객들에게 국화를 몇 송이씩 무료로 나눠줬다. 그러나 최씨는 온라인몰에서 미리 주문해 간 작약 조화 다발만 화병에 꽂아 뒀다. 그는 “내년 설에나 다시 올 텐데, 며칠 지나면 시드는 생화를 어떻게 두고 가느냐”고 했다.
일부 공설·민간 공원묘원과 납골당이 성묘·추모용 조화를 퇴출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환경 보호와 국내 화훼 농가 살리기가 우선인지, 성묘객 편의가 우선인지가 쟁점이다.
지난해 경남 김해시는 전국 최초로 공원묘원 내 플라스틱 조화 반입 금지책을 실시했다. 관내 묘원 4개소 4만7000여 기의 묘지에서 플라스틱 조화를 1년 만에 모두 퇴출시켰다. 이런 조치는 경남 전체와 부산, 전북·전남 등 다른 지자체로 확산 중이다. 국회에는 조화를 일회용품에 포함시켜 모든 공원묘지에서 사용을 제한하는 ‘자원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 등 관련 법안 2건이 발의돼 있다. 국가보훈부도 국립묘지에서 플라스틱 조화를 근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해시와 한국화훼자조금협회 등에 따르면, 전국 산소를 뒤덮은 형형색색 조화는 자연환경과 인체에 해로운 ‘예쁜 쓰레기’다. 합성섬유와 플라스틱, 비닐, 철심으로 만들어져 재활용이 어렵고, 소각하거나 매립할 땐 대기와 토양, 해양을 오염시킨다. 3개월 이상 야외에서 풍화되면 미세 플라스틱 먼지를 발생시킨다고 한다.
조화 퇴출엔 화훼업계 등 이해단체의 입김도 강력히 작용하고 있다. 시중에 유통되는 조화는 대부분 중국산이다. 매년 2000t 이상 수입된다. 싸고 오래가는 중국산 조화는 국내 화훼 농가의 주적(主敵)이나 다름없다.
국내 화훼업계는 에너지 요금을 비롯한 생산비 증가, 외국산 저가 꽃 수입 확대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에선 꽃을 일상적으로 즐기기보다 가끔 있는 경조사를 기념하려고 사는 경우가 많다. 봄 입학·졸업 시즌과 어버이날 등을 지나면 여름부터 겨울까지는 꽃 비수기다. 딱 이때 들어 있는 추석과 설 성묘철 꽃 시장마저 조화가 밀고 들어오자 대립 구도는 분명해졌다. 조화 성묘를 가장 먼저 금지한 김해시는 국내 최대 화훼농가 밀집지다.
성묘객 입장은 어떨까. 서울에 사는 60대 주부 이모씨는 이번 추석에 충북 묘원에 있는 시부모 묘소에 1만원어치 하늘색 수국과 주황 장미 조화를 양쪽 돌화병에 가득 꽂아 놓고 왔다. 그는 “1년에 잘해야 서너 번 성묘 가는데 생화를 어떻게 놓느냐”며 “화병이 비거나 시든 꽃이 들어 있으면 산소가 버려진 느낌이 들어 마음이 안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40대 직장인 김모씨도 “다른 산소의 조화가 너무 화려해서, 생화는 몇 배나 비싼데도 막상 꽂아두니 우리 묘소만 초라해보이더라”며 “묘원 앞 꽃집들은 아예 생화를 팔지도 않는다”고 했다.
반면 30대 여성 양모씨는 “키워주신 할아버지가 최근 돌아가셔서 이번 첫 성묘 때 5만원 주고 산 국화 다발을 오아시스에 꽂아뒀다. 친척들도 ‘역시 향기 나는 생화가 최고’라며 센스 있다고 칭찬했다”면서 “다음엔 더 오래 가는 말린 꽃이나 프리저브드 플라워(preserved flower·생화를 특수 보존 처리해 수년간 유지 가능한 가공화)를 둘까 한다”고 말했다.
관리하는 쪽도 의견이 갈린다. 수도권의 묘원이나 납골당 등에선 “생화는 관리인이 곧 뽑아내야 하고, 말린 꽃에도 벌레가 생길 수 있다”며 조화 반입만 허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화 역시 3~6개월 지나면 색이 바래고 비바람에 나뒹구는 데다, 성묘철마다 쓰레기를 양산해 골칫거리다.
미국·유럽 등 생화 소비가 일상화된 나라들에서도 묘소엔 조화를 놓아두는 경우가 꽤 있다. 조화가 환경을 오염시키는 플라스틱 쓰레기인지, 사랑하는 사람이 잠든 곳에 자주 가지 못하는 죄책감을 덜어주는 위안의 장치인지, 섣불리 재단하기 힘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