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일본 천황가(天皇家)가 무령왕릉 참배 후 충남 공주시에 기증한 향로와 침향이 20년 되도록 행방불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보다 3년 전 당시 아키히토 천황은 “천황가가 외가 쪽으로 무령왕 후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언제 사라졌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공주시는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고 “분실 기증품을 찾는 노력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라고만 했다.

2004년 충남 공주 무령왕릉을 방문한 일본 천황가 아사카 토모히코씨(오른쪽). 아사카씨는 당시 일본 아키히토 천황이 "무령왕은 내 외가쪽 조상"이라고 밝힌 지 3년 만에 무령왕릉을 참배하고 제사용품을 기증했다. 그 기증품이 지금 실종상태다. /공주시

사건의 시작

2004년 8월 3일 당시 일본 아키히토 천황 5촌 당숙인 아사카 도모히코(朝香誠彦)씨가 공주 무령왕릉을 방문했다. 황족으로서 비공식 방문이었다.

수행원을 포함해 3명인 방문단은 무령왕릉 내부로 들어가 무령왕에게 제사를 지냈다. 일반인 출입 통제 구역인 왕릉 내부가 이들을 위해 개방됐다. 아사카씨 일행은 향로에 향불을 태워 올리고 과자를 제물로 올린 뒤 일본 황실 예법에 따라 3배를 올렸다. 향로와 향과 과자는 이들이 일본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향로는 자기 재질이고 향은 침향나무를 말린 침향목(沈香木)으로 일본 황실에서 수백년 소장해 온 향으로 알려졌다.

제사를 마친 후 아사카씨는 “박물관이나 무령왕릉 등에 전시해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해달라”며 향로와 침향목을 공주시에 기증하고 “귀국 후 천황에게 방문 결과를 상세히 보고하겠다”고 말했다(2004년 8월 5일 ‘한겨레’, 6일 ‘조선일보’ 등). 공주시는 기증받은 향로와 침향목을 무령왕릉 전시관 유리 케이스 속에 전시했다.

공주시가 밝히는 전말

그런데 그 제수품이 어느 날 감쪽같이 증발해버렸다. 공주시는 향로와 향이 언제 사라졌는지, 도난인지 분실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은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실종 과정에 대한 공주시 문화재과 해명이다.

“솔직히 실종 사실을 나중에 알았어요. 전시 개편 과정에서 관리 소홀로 없어졌던 것 같습니다. 전시 목록에도 올리지 않았고 기록도 없고 사진도 없습니다. 무령왕릉 전시관 전시 개편 과정에서 사무실에 둔 것 같은데 그 과정에서 없어진 것 같아요. 전시관이 모형들을 전시하는 공간이라서 딱히 수장고도 없어요. 전시품이 진품이면 체계적으로 목록화해서 관리를 하지만 그러지 않는 면이 좀 있어요. 일본 기증품도 모형물인 줄 알고 같이 교체되면서 없어지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2019년 7월 16일 공주시 홈페이지 ‘열린시장실: 시장에게 바란다’ 게시판에는 ‘일본 천황가에서 공주시에 기증한 물품은 찾으셨나요?’라는 제목으로 민원이 올라왔다.

‘일본인들에게 그들의 뿌리가 우리에게 있다는 증거이자 역사적인 사건이기도 한 이 행사에서 공주시에 전달한 향로와 침향목이 꽤 오래전에 사라졌다고 합니다. (중략) 당시 공주시 관계자들은 어디 있는지 모른다며 다들 혼날 일만 걱정하듯 쉬쉬하더군요.’

민원 제기 8일 뒤인 7월 24일 공주시 문화재과는 ‘2011년 무령왕릉 모형관 전시 개선 사업 도중 분실된 것으로 추정한다’며 ‘분실 경위와 소재 파악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했음에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답글을 달았다. 일본 천황가 방문과 제사, 제기 기증 사실은 기록도 목록도 사진도 없이 오로지 신문 기사로만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고, 행방은 미궁에 빠졌다는 뜻이다.

충남 공주 무령왕릉 모형관 내부. 일본 기록에 따르면 무령왕은 8세기 일본 간무천황 어머니인 다카노노 니가사의 조상이다. /박종인 기자

무령왕과 日천황가의 혈연

무령왕은 501년부터 523년까지 백제를 다스린 왕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름은 사마(斯摩)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무령왕은 461년 개로왕이 동생 곤지와 함께 일본에 파견한 왕비가 규슈 가카라시마에서 낳은 아들이다(’일본서기’ 461년 6월 1일). 당시 백제와 왜는 왕족 간 교류를 통해 외교 관계를 맺고 있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무령왕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역시 일본 사서인 ‘속일본기’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간무(桓武) 천황(737~806) 어머니인 황태후 다카노노니가사(高野新笠)는 백제 무령왕 아들 순타 태자 후손이다. 백제의 먼 조상인 도모왕(都慕王·고구려 동명성왕)은 하백(河伯)의 딸이 태양의 정기에 감응해서 태어난 사람인데, 황태후는 곧 그 후손이다.’(‘속일본기’ 789년 12월 28일)

2001년 12월 23일 당시 아키히토 일본 천황은 68세 기념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간무천왕 생모가 무령왕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쓰여 있어 한국과 인연을 느낀다. 무령왕 시기에 오경박사가 대대로 초청됐다. 무령왕 아들 성왕은 일본에 불교를 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근대 일본 천황이 처음으로 백제와 일본 황실의 관계를 인정한 발언이었다.

이 발언에 따라 3년 뒤 천황 5촌 당숙 아사카 도모히코씨가 무령왕릉에 참배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660년 백제 멸망 이후 1300년 만이었다. 공주시청 홈페이지에 민원을 제기한 사람은 이렇게 썼다. ‘이 물품들이 공주시의 관광과 역사성을 증명하는 데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 알고는 계시는지요?’ 공주시는 기자와 통화에서 “경찰에 수사 의뢰는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