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 다니는 열정으로 공부를 했으면 하버드대를 갔지!”

어릴 적부터 부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동료들과 퇴근 후 한잔하고 싶은데 어디가 맛집인지 모르겠다고요? 친구, 연인과 주말을 알차게 놀고 싶은데 어디가 핫플인지 못 찾으시겠다고요? 놀고 먹는데는 만렙인 기자, 즉흥적인 ENTP이지만 놀러갈 때만큼은 엑셀로 계획표를 만드는 기자가, 직접 가보고 소개해드립니다.

(더 빠른 소식은 instagram : @hyenny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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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운 기자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린 제임스 서클링(가운데)의 '그레이트 와인 오브 더 월드'

지난 4일 오후 4시 30분 서울 중구 서울신라호텔. 조용하던 로비가 인파로 가득 찼습니다. 행사를 준비하는 다이너스티 홀에서는 호주 출신의 유명한 DJ 서란 시드의 음악이 나오고 있습니다. 4년 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 서울에서도 본 듯한 장면입니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제임스 서클링이 주최하는 ‘제2회 그레이트 와인 오브 더 월드 서울’입니다. 행사 시작은 5시 30분부터였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오픈런을 하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4년 전 첫 행사에서 많은 인파를 경험했던 와인 애호가라면 당연한 판단이겠지요.

◇4년 만에 돌아온 최대 와인 축제

/이혜운 기자 그레이트 와인 오브 더 월드 서울

이 행사는 전 세계 유명 와인을 한 자리에서 모두 시음할 수 있는 행사입니다. 2012년 홍콩에서 시작해 대륙을 돌며 열리는 행사로 한국에서는 2019년부터 열렸습니다. 1년 동안 2만 병 이상의 와인을 시음한 제임스 서클링이 92점 이상을 준 와이너리만 참가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멈췄다가 4년 만에 다시 열린 이 행사는 1500장의 티켓이 오픈하자 마자 이틀 사이에 매진됐다고 합니다. 올해 행사에는 120개 와이너리에서 200여종의 와인을 들고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이혜운 기자 스페인 와인의 자존심 핑구스 와인메이커(오른쪽)

이 행사는 와린이(와인+어린이)와 와잘알(와인 잘 아는 사람)을 모두 만족하게 하기로 유명합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와린이라면 다양한 고급 와인들을 맛보며 자신의 취향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티켓 한 장만 사면 프랑스 샴페인 앙리 지로로 목을 축이고 스페인 와인의 자존심 핑구스,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 명가 루이 라뚜르, 이탈리아 슈퍼투스칸 오르넬라이아 등을 마음껏 마실 수 있습니다. 발 빠른 사람들 덕분에 이미 이 와이너리들 앞에는 긴 줄이 섰더라고요.

와잘알(와인 잘 아는 사람)이라면 와이너리 대표들과 직접 이야기를 할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평소 와인에 대해 궁금했던 것도 물어보고요. 와인에 대한 견해도 주고받고요. 운이 좋으면 와이너리에 초대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탈리아 슈퍼 투스칸 오레노와 오르마를 가진 와이너리 테누타 세테 퐁티는 안토니오 모레티 대표의 장남인 알베르토 모레티가 직접 참가했습니다. 부스에서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사진 찍느라 바쁘더라고요. G20 정상회담 만찬 와인으로 쓰인 ‘온다’, ‘바소’ 등을 만든, 미국 와인의 심장 나파 밸리에서 한국 와인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이희상 다나 에스테이트 회장도 첫 회에 이어 올해도 직접 와인 애호가들을 맞이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와인의 메이커가 한국인이라니 너무 뿌듯하더라고요.

/이혜운 기자 이탈리아 슈퍼 투스칸 오레노와 오르마를 가진 와이너리 테누타 세테 퐁티 안토니오 모레티 대표의 장남인 알베르토 모레티(왼쪽)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날 최고의 스타는 제임스 서클링입니다. 그와 셀카를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와인 애호가들을 보고 있으니 그가 왜 ‘와인업계 락스타’로 불리는지 알겠더라고요. 4년 만에 찾은 한국에서 환대를 받은 그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는 “전 세계에서 한국의 와인 애호가들이 가장 젊고 열정적입니다. 한국이 지금 가장 핫한 와인 시장입니다. 5년 이내에 서울은 가장 세계적인 와인 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임스 서클링에게 한국은 처가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홍콩 디아지오 고급 와인부문 대표를 역임한 한국인 마리 김과 2013년 결혼했기 때문이다. 와인으로 만난 두 사람은 전 세계를 다니며 와인을 시음하고, 미식을 즐기지만, 김치볶음밥으로 아침을 먹고 설렁탕으로 해장을 할 만큼 한식을 좋아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아내가 만든 요리”라며 애처가 면모를 내뿜더라고요.

/마리 김 서클링 인스타그램 제임스 서클링과 마리 서클링 부부

제임스 서클링은 195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할리우드 배우들을 고객으로 뒀던 변호사였는데요. 엄청난 와인 애호가였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이어 변호사가 되기 위해 로스쿨을 준비하던 그에게 와인 평론가를 권한 것도 아버지였는데요. 하지만 그의 제2의 고향은 이탈리아로 불립니다. 마케팅이 부족해 프랑스 와인에 비해 존재감이 약했던 이탈리아 와인을 제임스 서클링이 직접 와이너리들을 방문하고 시음하며 기틀을 마련하고 전 세계 대중에게 알렸기 때문이지요. 지금도 이탈리아 토스카나 아레초에는 그가 처음 이탈리아에 왔을 때 살던 집이 그대로 있습니다. 유럽 내 와이너리 대표들에게는 사랑방 같은 곳이지요.

/이혜운 기자 이탈리아 토스카나 아레초에 있는 제임스 서클링의 사무실

그런 그가 오는 11월 6일에는 아시아 최초로 ‘그레이트 와인 오브 이태리’를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엽니다. 유명한 키안티 클라시코와 브루넬로, 멋진 슈퍼 투스칸, 바르바레스코, 아마론 등 다양한 최고 평점을 받은 와인들을 맛볼 수 있다고 하네요. 이번에도 80개 와이너리 생산자들이 200여개의 와인을 들고 방문한다고 합니다. 겨울을 앞둔 늦가을에는 진하고 남성적인 이탈리아 와인이 제격이지요.

◇제임스 서클링이 선택한 맛집은?

제임스 서클링의 팬분들을 위해 그가 한국에서 찾은 맛집과 와인바도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혜운 기자 뒤풀이 장소는 '태백산맥'

먼저, 이날 행사 뒤풀이장소는 서울 중구 신당동에 있는 고깃집 ‘태백산맥’이었습니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모두 파는 집입니다. 마블링 좋은 한우를 먼저 먹고 양념 돼지목살을 주문해 냉면과 함께 먹으니 환상적이더라고요. 제임스 서클링은 이날 가져간 “2020년산 프랑스 보르도 와인이 한우 구이와 잘 어울린다”고 말했습니다.

행사 전날, 방한한 와인메이커들과 프리 파티를 한 곳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새빛섬 와인바 ‘무드 서울’입니다. 물 위에 떠서 와인을 마시며 보는 한강의 석양이란! 와인 메이커들이 한강의 아름다움을 만끽하셨으면 좋겠더라고요.

/이혜운 기자 스패출라 바이 해비치

제임스 서클링은 지난 5월에도 행사 준비차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당시 프라이빗 디너를 한 첫 번째 장소는 ‘스패출러 바이 해비치’ 입니다. 해비치 호텔에서 운영하는 음식연구소 느낌의 레스토랑으로 중식, 프랑스식, 태국식 등 몇 달에 한 번씩 컨셉을 바꿔 다양한 음식을 내놓는 것이 특징입니다. 오픈 주방으로 돼 있어 음식을 만드는 것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음식에 편견이 없는 그는 당시 방한에서 서울 송파구에 있는 국내 유일 비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포리스트 키친’도 방문했었습니다. 감각적인 플레이팅과 담백한 맛으로 육식주의자들도 만족하게 하는 레스토랑으로 유명하지요. 제임스 서클링은 “와인 리스트도 훌륭하다”고 칭찬하더라고요.

/이혜운 기자 와규 비프 카르파치오

그가 처남인 김태성 닥터뉴욕치과 원장 가족과 함께 패밀리 디너를 가진 곳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비스트로 스파크’입니다. 2010년 TV프로그램 ‘아웃백 잇 셰프’ 우승자로 다니엘 헤니와 함께 서호주를 다니며 촬영한 예능 다큐로 인지도를 높인 박성우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지요. 직관적인 맛의 와규 비프 카르파치오 등이 유명합니다. 박 셰프는 개인전을 두 번이나 연 작가로도 알려졌는데요. 이날 디너 후 제임스는 박 셰프의 작품도 한 점 구입했다고 하더라고요. 제임스 서클링이 선택한 이탈리아 음식과 그림을 함께 찾아보는 맛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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