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서는 첫눈이 올 때 훠궈를 먹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예닐곱 명의 친구가 모여서 말이다. 얼마 전 중국에 다녀온 사람으로부터 들었다. 머리에 맞은 눈을 털고 원탁에 앉아 훠궈를 먹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니 미소가 지어졌다. 이런 게 ‘미풍’이고 ‘양속’이 아닌가 싶어서.

베이징에 다녀온 그 사람은 중국에서 만난 사람들과 훠궈를 먹고 헤어졌다 한다. 원래는 공항에서 헤어지려고 했다가 비행기 시간이 남은 사람들끼리 밥을 먹게 되었다고. 공항 밥은 맛이 없으니 다시 밖으로 나가자는 한 사람의 주장에 공항 밖으로 나가 훠궈를 먹었다고 들었다. 차를 타고 꽤나 달려서 말이다. 비행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과는 공항에서 작별하고 남은 사람들끼리였다. 그들은 베이징으로부터 세 시간 거리인 허베이성의 어느 도시에서 일을 마치고 헤어지기 위해 같이 베이징으로 달려온 참이었다.

중국 베이징에서 첫눈 오는 날 먹는 훠궈.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한국에서 먹던 훠궈와 다르다고 했더니 이게 베이징 스타일이라고 했다고. 홍탕은 없이 백탕만 있었고, 사골 국물처럼 뿌연 백탕이 아니라 투명한 백탕이었다. 그리고 질이 좋고 세분화된 부위의 양고기가 나왔다. 가장 특기할 만한 점은 훠궈 냄비였다. 신선로와 비슷하게 생긴 동으로 된 냄비였는데 가운데가 마법사 모자처럼 불룩하게 솟아 있었다. 베이징 사람들은 모두 이 훠궈 냄비를 가지고 있다며, 식당에서도 파니 한국에 사 가라고 그에게 권했다 한다.

그 베이징 스타일 훠궈가 책에서만 보던 솬양러우 아닌가 싶었다. 만리장성 북쪽에 있는 양 목장에서 가져오는 양고기를 쓰는 맑은탕의 훠궈가 솬양러우라고 들었다. 훠궈라고 하면 훠궈의 대표 도시인 충칭의 훠궈가 떠올라야겠지만 내게는 어쩐지 솬양러우가 떠오르는 것이다. 신선로를 닮은 근사한 동 냄비에 나온다고 하니 솬양러우가 더 궁금해졌다. 나는 무슨 술과 먹었느냐고 물었다.

무슨 백주였냐는 질문이었다. 중국 음식에는 역시 백주고, 훠궈에는 당연히 백주가 빠질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 그리고 백주의 나라에 갔으니 얼마나 맛있는 백주를 먹었을지 궁금도 했고. 어딘가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뭘 먹고 마셨는지가 상당히 궁금한 사람이다. 내가 겪지 못한 상황에서 어떤 음식을 겪었는지 무척 궁금하다. 알지 못하면 잠을 못 잘 정도다. 약점을 스스로 누설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사실이 그렇다.

백주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울리는 음식과 먹으면 상성 작용이 놀랍지만 술만으로도 맛있는 게 백주라서. 50도가 넘는 도수라지만 알코올 냄새는 나지 않고 뭐라 말할 수 없이 감미로운 냄새가 마음을 흔드는 것이다. 백주만의 냄새는 맡기만 해도 눈이 감기고 목에 넘기면 화르륵 불타오르는 기분이 드는데, 목이 따갑지는 않고 부드럽게 마비되는 그 느낌… 하지만 머리는 맑아지고 목소리는 또랑또랑해져서 밤의 적요가 더 잘 느껴지는 그 기분… 이런 술은 백주밖에 없지 않나 싶다.

백주를 먹긴 했는데 좀 난감했다고 한다. 그가 백주를 시키자고 했더니 중국인 두 명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고. 백주를 마시기 전에 냄새를 맡고는 얼굴을 찌푸리고, 마시면서 또 얼굴을 찌푸렸다고 한다. 2000년 이후에 태어난 중국인의 반응이 좀 더 격렬(?)했다고 한다. 자기 친구들은 그런 거 안 마신다고, 그런 건 ‘고주(古酒)’라고.

베이징에 다녀온 그 사람은 충격을 받았다. 백주 사건(?) 전에도 두보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Z세대인 2000년대생 그녀에게 두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했더니 그런 건 ‘고시(古詩)’라는 말을 들은 후여서 더 그랬다. Z세대인 그녀는 문학에 문외한이 아니라 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학위 과정에 있는 문학을 직업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 더 그랬다고. 한국에서 두보를 좋아한다고 해 봤자 별 반응을 얻을 수 없기에 두보의 나라에 가서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했던 듯한데… 사정을 들어보니 딱하게 됐다.

아, 건륭제의 시대는 가 버린 건가 싶었다. 청나라의 6대 황제 건륭제는 미식가에 풍류를 아는 ‘문인’이었다. 만주족이지만 한족 음식과 남송 문화를 좋아했고, 문학을 사랑했고, 중국 문화의 정수라고 생각하는 데가 강남이라 생각해 강남에 자주 갔고, 강남 요리를 즐겨 먹었고, 그러다 보니 좋아하지 않던 해산물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 건륭제가 즐겨 읽던 시인 중에는 소동파 같은 강남 사람이 있었을 테고, 강남의 풍광과 문화가 궁금했을 테고, 미식가로도 유명한 소동파가 찬양하는 복어나 죽순을 먹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걸 ‘고시’라고, 또 ‘고주’라고 말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씁쓸해졌다. 옛날 글이자 옛날 술이라서 관심이 없고 마시지 않는다니. 나는 옛날 사람이라서 옛날 글을 읽고 옛날 술을 먹고 있나? 백주나 아와모리 같은 술에 ‘고주’라는 말이 쓰여 있으면 나는 참 좋았는데, 누군가에게는 그저 ‘고주’일 뿐인 것이다. ‘오래되어서 귀함’이라는 의미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오래된 옛날의 것. 묵직해서 중후한 게 아니라 무거워서 거추장스러운 것이라니.

들을 땐 안 그랬는데 글로 쓰고 보니 유난히 쓸쓸하다. 공항에서 누군가는 도쿄, 누군가는 푸젠성, 누군가는 마카오로 떠나고 남은 사람끼리 훠궈를 먹는 이야기는 꽤나 유쾌했는데. 첫눈이 올 때 친구들과 훠궈를 먹는다는 이야기를 해준 것도 베이징 사람들은 다 이런 동으로 된 훠궈 냄비를 가지고 있다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런 이야기도 했다. 훠궈를 함께 먹고 있으니 우리는 친구라고, 아직 첫눈이 오지 않으니 미리 당겨 먹는 거라고, 또 언젠가는 베이징에서 첫눈을 함께 맞으며 훠궈를 먹자고.

이런 이야기를 듣고 훠궈를 먹지 않을 수 있겠나, 내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솬양러우는 아니었지만 주말에 훠궈를 먹으러 갔다. 마라탕과 백탕, 토마토탕을 시킨 후 두부와 야채, 양고기를 담가 먹었다. 물론 백주도. 성에 차는 술은 아니었지만 상온의 백주를 훠궈와 먹으니 찌르르했다. 다녀와서는 먹은 것들을 복기하며 왜 대체 그것들을 넣지 않았는가 후회하고 있다. 오리 선지, 오리 창자, 말린 부레, 양상추, 동두부, 팡가시우스 메기살… 또 콜키지가 되는데 왜 백주를 가져가지 않은 건지도 후회 중. 잘못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첫눈이 올 때까지는 못 기다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