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 다니는 열정으로 공부를 했으면 하버드대를 갔지!”

어릴 적부터 부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동료들과 퇴근 후 한잔하고 싶은데 어디가 맛집인지 모르겠다고요? 친구, 연인과 주말을 알차게 놀고 싶은데 어디가 핫플인지 못 찾으시겠다고요? 놀고 먹는데는 만렙인 기자, 즉흥적인 ENTP이지만 놀러갈 때만큼은 엑셀로 계획표를 만드는 기자가, 직접 가보고 소개해드립니다.

(더 빠른 소식은 instagram : @hyenny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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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역사의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리처드 보나 /자라섬재즈페스티벌

“뿌뿌디답답 뿌뿌밥”

지난 9일 경기도 가평군에서 열린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아프리카의 스팅으로 불리는 카메룬 출신 재즈의 신 리차드 보나가 스캣(Scat·의미 없는 음절이나 의성어를 가지고 즉흥적으로 노래하는 방식)을 시작하자, 관객들이 따라서 화답을 합니다. 갑자기 쏟아진 비는 관객들을 기립시켰을 뿐, 한 명도 떠나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우비를 입은 관객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춥니다. 이것이 ‘재즈’입니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전경

가을을 대표하는 야외 음악 페스티벌,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이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개최됐습니다. 올해 20주년을 맞아 리처드 보나 뿐 아니라 이 시대를 대표하는 기타리스트 줄리안 라지, 집시 재즈 기타의 최고점에 있는 비렐리 라그렌, 오스카 피터슨의 마지막 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 등 세계적인 재즈 뮤지션들이 총출동했습니다. 청량한 가을 하늘 아래 돗자리를 펴고 앉아,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와인 한 잔을 마시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이 순간, 집에 있는 자 유죄!” 눈을 감았다 뜨면 지나갈 것 같은 찰나의 가을. 더욱 놓치고 싶지 않다고요.

/자라섬재즈페스티벌 관객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은 2004년 인재진(58) 총감독에 의해 시작됐습니다. 당시 재즈 관련 분야에서 공연 및 음반 기획자로 활동해 왔던 인 감독은 우연히 친구 대신 강연에 서게 됐다고 합니다. 평소 한국에서 재즈 페스티벌이 열려야 한다는 꿈을 갖고 있던 그는 강연에서 그 꿈을 말했고, 당시 자리에 있던 경기도 가평군 공무원이 인 감독에게 ‘가평에서 재즈페스티벌을 개최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그 제안에 가평으로 간 인 감독이 선택한 곳이 자라섬이었습니다.

해마다 가을이면 자라섬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인재진은 그런 관객들 앞에 서서 감사의 뜻을 표한다. 작년 페스티벌 무대에 장화를 신고 오른 인재진 총감독.

당시만 해도 자라섬은 지대가 낮아 비만 오면 물에 잠기는 황무지였습니다. 그러나 본 순간, 핀란드 포리 페스티벌이 연상됐다고 합니다. 그 때부터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은 시작됐습니다. 20년이 지난 현재, 인구 6만2000여명의 가평군은 한국, 아니 아시아에서 재즈를 대표하는 지역이 됐습니다. 아시아 페스티벌 중 유럽 재즈연합(이하 EJN)에 가입 승인을 받은 페스티벌은 자라섬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내년이라도! 준비물과 팁은?>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은 국내 뮤직 페스티벌 중 반입 제한 물품이 가장 적은 편에 속합니다. 포장 및 재사용 용기에 담긴 음식과 음료는 모두 반입이 됩니다. 여기에 돗자리, 그리고 꼭 다리 없는 캠핑 의자를 준비해주세요.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도 허리가 아픕니다. 허리를 기대고 다리만 뻗어도 정말 편해요. 쿠팡 등 인터넷 쇼핑몰에서 1만원대에 살 수 있습니다. 다리가 있는 캠핑 의자는 별도의 좌석 공간이 준비돼 있습니다. 반려동물과 동행도 가능합니다. 이 많은 짐을 들고 이동하기 때문에 캐리어(여행용 가방)를 들고 갈 것을 추천드립니다. 주차장에서 행사 현장까지가 꽤 멉니다. 캐리어는 높이 30cm가 넘지 않기 때문에 탁자로도 쓸 수 있습니다. 밤에는 꽤 춥기 때문에 패딩도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라섬 페스티벌은 티켓을 끊지 않아도 공짜로 볼 수 있는 공연들이 많습니다. 특히 올해는 킹스턴 루디스카, 주현미 재즈 프로젝트 등의 공연이 무료로 진행됐습니다. 세계적인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이 생애 최초로 솔로 무대, 세계 프리뮤직계의 3대 색소폰 연주자 강태환과 동그라미 트리오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으며 활동했던 일본 타악기 연주자 타카다 미도리의 듀오 무대 등은 1만원에 관람 가능했고요. 언제가도 가성비 최고, 만족도 최상의 재즈 페스티벌입니다.

◊신생 페스티벌에 힙합 전설들이 모였다...제1회 ‘원유니버스 페스티벌’

반면, 같은 주인 지난 7~8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서울숲 옛 삼표레미콘 부지에서 열린 ‘원유니버스 페스티벌’은 올해 처음 열린 힙합 페스티벌입니다. 신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국내 최초 내한으로 화제를 모은 미국 유명 래퍼 릴 우지 버트와 키드 커디, 일본 힙합 그룹 테리야키 보이즈, 레전드 힙합 크루 런 디엠씨의 디엠씨, 듀스의 이현도와 박재범 등 동양과 서양, 신과 구의 조합이 돋보이는 라인업을 자랑했습니다. 힙합 50주년을 기념해 디엠씨와 박재범이 합동 공연을 펼칠 때는 “여기가 한국이 맞나?” 싶더라고요.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릴 우지 버트 공연에서는 다들 ‘모시핏(moshpit·원을 만든 후 치고받으며 에너지를 발산하는 문화)’을 하며 즐겼습니다.

/이혜운 기자 원유니버스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릴 우지버트

이렇게 과감한 페스티벌을 개최한 사람은 여인택(34) 피치스그룹코리아 대표입니다. ‘아우어 베이커리’와 ‘나이스 웨더’ 등을 만든 ‘CNP 푸드’ 창립 멤버로 활동한 그는 자동차를 좋아해 1년에 7~8번 자동차를 커스터마이징했습니다. 그때 재미로 차량용 스티커를 만들었는데 사고 싶다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주위 반응이 좋았다고 합니다. 그때 그는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만들자’고 결심합니다.

한국의 21세기형 슈프림을 만드는 피치스 여인택 대표가 2021년 10월 7일 서울 성동구 피치스 도원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2018년 온라인을 기반으로 탄생한 피치스는 성수동에 오프라인 자동차 문화공간 ‘피치스 도원’을 엽니다. 눈에 띄는 분홍색 간판과 신기한 자동차 조형물 등으로 성수동의 핫플레이스가 된 곳입니다. 피치스가 화제가 되자, 롯데껌부터 꼬냑 브랜드 헤네시까지 많은 기업들이 그와 일하고 싶어했습니다. 여 대표는 “너무 다양한 사업을 많이 하고 있으니 그걸 우리 식대로 멋있게 보여주는 한 번의 날이 페스티벌이라고 생각했다”며 “음악과 자동차를 섞는 페스티벌이 잘 된다면 죽어가는 모터쇼를 살리거나, 포뮬러 1과 같은 쇼와 연동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지요.

/이혜운 기자 DMC와 박재범

이날 힙합 공연과 함께 화제가 된 것은 다채로운 퍼포먼스 카들과 카 스턴트쇼였습니다.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부웅” 소리와 함께 회전을 하며 스턴트를 하다 무대로 오르는 자동차를 보고 있으니, 피가 끓어 오르더라고요. 브랜드 첫 페스티벌 개최를 기념해 티켓 구매 고객 중 추첨을 통해 선정된 1명에게 증정된 선물은 무려 3억원 상당의 지바겐(메르세데스-AMG G63) 신차였습니다. 당첨자가 무대로 올라오는데 정말 부러웠습니다.

<내년이라도! 준비물과 관람팁은?>

원유니버스페스티벌은 음료와 음식 반입이 일체 금지돼 있습니다. 돗자리도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서 있을 수 만은 없겠지요. 인터넷 쇼핑몰에 파는 접이식 방석이 있습니다. 공연 사이 힘들어 앉고 싶은데 자리가 없을 때 유용하게 쓸 수 있습니다. 한 번 입장하면 나올 수 없기 때문에 밥은 먹고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1만2000원짜리 하이볼에는 헤네시 꼬냑을 듬뿍 넣어주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습니다. 서울 한복판인 만큼 밤에도 그리 춥지 않습니다. 특히, 공연 중에는 다들 서서 즐기기 때문에 땀이 나기도 합니다. 껴입는 대신 힙합 스타일로 마음껏 멋을 내길 바랍니다. 다들, 뮤지션보다 더 멋지게 하고 오거든요!

◊이번 주말에는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안타깝게도 이 두 페스티벌은 끝났지만, 오는 20일부터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이 열립니다. 올해 마지막 야외 페스티벌입니다. 윤하, 데이브레이크, 적재, 이승윤, 정준일 등 가을을 물들일 42팀의 아티스트가 등장한다고 하네요. 자라섬처럼 돗자리를 펴고 앉아 피크닉을 즐기며 볼 수도 있고, 무대 앞쪽에서는 스탠딩으로 즐길 수도 있습니다. 올 가을이 끝나기 전에, 이 계절을 마음껏 즐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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