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농성동에 있는 ‘가매일식’ 오너 셰프 안유성(52)씨가 지난달 ‘대한민국 조리 명장’에 선정됐다. ‘맛의 고장’이라 불리는 광주는 물론 전라도 전체 조리 분야에서 첫 명장이 탄생한 것이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는 대한민국명장은 1986년부터 37년 동안 22분야 696명이 선정됐으며, 이 중 조리 분야에서는 올해 뽑힌 안 셰프까지 15명에 불과하다.
30년 넘게 초밥에 매진해온 안 셰프는 ‘대통령의 초밥 요리사’로도 불린다. 김대중 전 대통령부터 노무현, 문재인, 윤석열 등 광주에 온 대통령 대부분이 그의 식당을 찾았다. 지난 17일 광주 가매일식에서 만난 안 셰프는 “김대중 대통령이 즐기시던 홍어로 초밥을 쥐어 드리기도 했다”며 “홍어, 꼬막, 산낙지 등 호남 지역 특산물을 활용해 일본에서 시작된 초밥을 한식으로 재해석하려 한다”고 말했다.
◇DJ는 능성어 초밥, 윤 대통령은 한우 초밥
-대통령의 초밥집으로 유명하다.
“역대 대통령들께서 광주에 오면 거의 다 들러 식사해 그렇게 소문 난 것 같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는 광주 오실 때마다 가게에 들르셨다. 문재인 대통령도 여러번 다녀가셨고, 윤석열 대통령도 몇 차례 찾으셨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뒤, 서울로 돌아가는 KTX 열차 안에서 드신 주먹밥 도시락도 내가 만들었다. 광주 주먹밥에는 ‘나눔 공동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5·18 당시 시민들이 주먹밥을 시민군에게 나눠줬다.”
-대통령들의 입맛은 어떤가.
“김 대통령은 참돔, 광어 같은 흰살 생선 초밥을 선호하셨는데, 전남 고흥에서 나오는 능성어로 만든 초밥을 특히 맛있게 드셨다. 홍어를 좋아하셔서 하루는 홍어로 초밥을 쥐어 드렸더니 ‘이런 것도 있냐’며 신기해하셨다. 노 대통령은 서민적 식성으로 식사류를 드셨다. 문 대통령은 바닷가 출신이라선지 해산물을 두루 좋아하셨다. 초밥과 생대구탕을 드셨다. 윤 대통령은 육류를 선호하셔서 한우 초밥을 만들어 드렸다.”
-홍어는 삭혀서 묵은지, 돼지고기와 삼합으로 먹는 생선 아닌가.
“흑산도 등 홍어가 잡히는 섬에 사는 분들은 원래 삭히지 않고 먹는다. 김 대통령도 신안 하의도 출신이다. 옛날 전라도 부잣집들도 그렇게 먹었다. 삭히지 않은 홍어는 잡내가 없는 게 광어보다 깨끗하고 담백하다. 요즘 광주에서도 ‘안 삭힌 홍어’가 유행이다. 김 대통령께는 홍어 볼살로 만든 초밥을 냈다. 홍어는 뼈(연골)가 많아서 전부 초밥에 쓸 수는 없고, 볼살 등 뼈 없고 부드러운 부위로 만들 수 있다.”
-맛의 고장 광주·전라도에 조리 명장이 없었다니, 의외다.
“전라도뿐 아니라 한강 이남으론 처음일 거다. 명장은 기술만 뛰어나다고 되는 게 아니다. 15년 이상 종사한 기술자로서 해당 직종의 숙련 기술 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산업화·현대화 실적이 있는지, 사회봉사활동 여부 등을 3차에 걸쳐 서류와 현장 검증을 통해 까다롭게 검증한다. 그런 다음 청와대(용산)에서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런 조건을 두루 갖춘 요리사가 그동안 서울 이외 지역에는 거의 없었던 듯하다. 나도 5번 도전해 실패하고 올해 6수 만에 선정됐다.”
-어떻게 조리 명장에 뽑혔나.
“‘물김치를 이용한 김치식초 제조법’과 ‘다시마 첨가 식초 제조법’, ‘짱뚱어 애(간)를 이용한 매운탕 양념’ 등으로 박사 학위와 특허 2건, 디자인 등록 13건을 보유하고 있다. 조리기능장·조리산업기사 시험 준비서 등 책도 몇 종 펴냈다. 장애인과 소외 계층을 위한 자원봉사 활동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요리사를 꿈꾸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로 지도, 요리 기술 지도도 하고 있다.”
-짱뚱어 애 매운탕 양념이라니?
“짱뚱어는 전라도 갯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선이다. 작고 볼품없지만 매운탕을 끓이면 구수한 감칠맛이 기가 막힌다. 연구해보니 감칠맛의 근원이 장뚱어의 애였다. 애를 활용해 맛있는 매운탕을 쉽게 끓일 수 있도록 양념장 형태로 개발했다.”
◇이병철 회장이 강조한 ‘요리사의 자세’
안유성 셰프는 요리를 일찍 시작했다. 열아홉 살이던 1990년 상경해 서울 강남 관세청사거리 ‘다도일식’에 취직했다. 요리는 하나도 몰랐는데 아는 분이 있어서 들어갈 수 있었다. 거기서 잠시 있다가 압구정동 ‘유끼’로 옮겼다. 신라호텔 일식당에서 근무하며 고(故) 이병철 회장을 모셨던 김영주 조리장이 주방을 책임지고 있었다. 안 셰프는 김영주 조리장을 자신의 일식 스승으로 꼽는다.
-어머니가 고향 나주에서 한식당과 나주곰탕집을 운영했는데 일식을 배운 이유는.
“당시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이후 지방에도 외국인이 찾아오기 시작했지만, 일식 등 외국 음식점이 없었다. 일식을 배워서 어머니 한식당 건물 2층에 일식당을 열면 괜찮겠다고 부모님과 큰형님이 판단하셨다.”
-요리사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던 건 아니었나 보다.
“어려서부터 음식을 많이 좋아하긴 했다. 요리도 좋아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약주를 즐기셨는데, ‘라면 하나 끓여다오’ 하시면 덜렁 라면만 끓이지 않고 냉장고를 뒤져 오징어, 미나리 등 있는 재료를 썰어 넣어서 해드렸다. 맛있으셨는지 어머니 대신 나한테 끓이라고 계속 시키셨다(웃음). 어머니를 따라 젓갈 구하러 토굴도 가보고 소금 사러 염전도 갔다. 돌아보면 조기교육이었다.”
-여러 일식당에서 일했지만 유독 김영주 조리장을 스승으로 꼽는 이유라면.
“초밥 쥐는 법을 비롯해 일식 조리법부터 도쿄 쓰키지(築地·일본 최대 수산 시장)로 데리고 다니며 참치 등 각종 생선과 필요한 물품 구입하는 법까지, 일식의 기본을 그분에게 배웠다. 기술적인 부분뿐 아니라 요리사로서 자세, 정신까지 알려주신 게 기억에 남는다.”
-요리사의 자세로 뭘 가장 강조했나.
“김 조리장은 초밥 1개당 밥 양이 점심에는 320알, 저녁엔 280알이 되도록 샤리(밥)를 쥐었다. 점심 손님은 초밥만 먹지만, 저녁 손님은 대개 술을 곁들여 안주로 먹기 때문에 너무 배부르지 않도록 양을 줄인 것이다. 여성 손님에게 나갈 초밥은 250알로 했다. 손님이 왼손잡이면 초밥을 손님 왼쪽에 놓았고, 식사하는 페이스에 맞춰 초밥 나오는 속도를 조절했다. 손님을 늘 관찰하면서 작은 디테일까지 섬세하게 만족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런 요리사의 자세는 이병철 회장을 모시며 체득했다고 했다.”
-이병철 회장과의 일화도 자주 들려줬다고.
“실은 초밥을 점심과 저녁에 다른 크기로 만들게 된 게 이 회장 덕분이었다. 이 회장이 보통 한 끼에 초밥 8점을 드셨는데, 어느 날 저녁 6점밖에 먹지 않았다고 한다. 이상하게 여긴 이 회장 비서들이 초밥을 풀어서 밥알을 세어보니 평균 320알이었다고 한다. 이후로 점심에는 320알, 저녁에는 280알로 맞췄고, 손으로 쥐기만 해도 바로 밥 양을 맞출 수 있도록 연습했다고 했다.”
-그런 연습을 본인도 했나.
“손 감각을 기르기 위해 점심과 저녁 사이 쉬는 시간에 연습했다. 멀쩡한 밥을 가지고 하면 욕먹으니까 전날 남아 굳은 밥을 물에 풀어서 사용했다. 꾸준히 연습하니 자동으로 밥알 개수가 맞춰지더라. 지금도 오차는 다섯 알 이내로 일정하다.”
-우메보시(매실장아찌)며 어란, 단무지 등을 직접 만들게 된 것도 이 회장 지시 때문이라고.
“신라호텔 요리사들에게 ‘지금은 일본에서 식자재를 사지만 나중에는 직접 만들 수 있게 기술을 배우라’며 연수를 많이 보내줬다 한다. 김 조리장도 내게 똑같이 해줬다. 덕분에 남도의 식재료를 이용해 ‘남도 초밥’을 만들 수 있었다.”
◇홍어·산낙지·개불로 창조하는 ‘남도 초밥’
서울의 여러 일류 일식당에서 수련한 안 셰프는 2002년 광주 농성동 허름한 골목에 ‘가매일식’을 차렸다. 20여 년간 쉬는 날 없이 일하며 가매일식을 광주 대표 일식집으로 키웠다. 이후 평양냉면 전문점 ‘광주옥1947′, ‘장수나주곰탕’ 등을 잇달아 내면서 맛집 골목을 형성했다.
-광주옥1947은 2018년 남북정상회담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평양 옥류관 냉면을 대접했다. 정상회담 전까지 하루 평균 50그릇 팔리더니 회담 이후로 500~600그릇으로 매출이 폭발했다.”
-오랫동안 ‘냉면 불모지’였던 전라도에 냉면집 열 생각은 어떻게 했나.
“서울에서 평양냉면이 유행하는 걸 보고 ‘언젠가는 전라도에서도 되지 않을까’ 싶어 2017년 열었다. 어머니가 강원도 철원, 지금은 북한에 속한 지역 출신이다. 어렸을 때 고향에서 겨울이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냉면 틀에다 메밀 반죽 넣고 국수를 뽑아 찬 국물에 말아 먹던 이야기를 종종 하셨기 때문에 냉면이 낯설지 않았다.”
-상호에 1947이 붙은 까닭은.
“해방 이후 월남한 평안도 사람들에 의해 전국적으로 평양냉면이 확산됐다. 광주에도 1947년 ‘광주관’ 등 여러 냉면집이 지금의 금남로인 옛 광주역 앞에 자리 잡았지만, 6·25 이후 반공 분위기 속에서 사라졌다. 이북 식당을 운영하면 간첩으로 의심받아 고초를 겪었다고 들었다.”
-대통령 외 유명인 단골도 많은가.
“유재석씨와 친하다. 최민식, 안성기, 정보석씨도 자주 온다. 미국 뮤지션 케니 지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스시광인데 하루 두 끼를 우리 가게에서 먹었다. 광주에 공연하러 왔다가 우리 가게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똑같이 해달라’며 저녁에 다시 왔다.”
-홍어 같은 토속 식재료를 이용한 초밥 연구를 많이 하나.
“산낙지, 갑오징어, 꼬막, 새조개, 개불도 초밥 재료로 훌륭하다. 특히 강진 마량에서 나오는 개불은 질기지 않고 사각사각 씹히면서 보들보들 부드럽다. 담양 죽순도 좋고.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식재료만 가지고도 맛있는 초밥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일본에서 시작한 음식이지만 우리만의 ‘남도 초밥’으로 발전시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