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보이는 다리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배경에 있는 다리예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아레초 기차역에서 차로 10분 달리면 나오는 ‘부리아노 다리’. 아르노강 위에서 746년을 버텨온 이 다리를 가리키며 아레초 사람이 말했다. 그냥 지나갔으면 전혀 몰랐을 것 같은 평범한 시골 마을의 오래된 다리다.
그림에서 여인의 오른 어깨 뒤쪽으로 작게 그려진 아치 4개짜리 돌다리는 모델이 누구인가만큼이나 미스터리였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을 종합하면 모델은 이탈리아 귀족 게라르디니 가문의 리사 델 조콘도다. 그의 남편이 다빈치에게 초상화를 부탁했다는 것이다. 다리에 대해서는 최근 이탈리아 역사학자 실바노 빈체티가 “아치의 개수와 다리 옆 나무의 위치, 그 아래로 비친 강물까지 비슷하다”며 ‘부리아노 다리’라고 주장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순간 모나리자의 그림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모르고 지나쳤으면 평범해 보였을 풍경, 그 안에 이야기를 담아 주는 건 문화다. 르네상스의 탄생지인 이탈리아 토스카나는 문화의 정수를 간직한 지방. 토스카나의 3대 도시 아레초, 시에나, 피렌체에 다녀왔다.
◇미켈란젤로가 태어난 ‘아레초’
아레초는 르네상스 3대 거장 중 한 명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태어난 곳이다. 부리아노 다리에서 차로 50분 정도 이동하면 나오는 ‘카프레제 미켈란젤로’다.
이 도시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고개 넘듯이 운전하면 도착하는 산 위의 도시다. 과거 토스카나 지방의 도시들은 전쟁을 피해 이렇게 산 위에 성을 짓는 방식으로 형성됐다고 한다. 그 산속 마을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미켈란젤로의 생가가 있다. 돌을 쌓아 만든 그의 집은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 중이다. 정원에 아무렇게나 자라난 잡초, 그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조각들. ‘그 비싼 작품들을 이렇게 방치해 놓다니’라며 다시 보니 미켈란젤로를 존경하는 제자들이 만든 작품들이다. 박물관 안에 있는 ‘피에타’ 등 복제품이 많았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것을 후회할 필요는 없다. 미켈란젤로의 복제품이 가득한 성당에서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박물관에는 미켈란젤로가 사용했다는 침대, 직접 쓴 편지 등이 전시돼 있다. 동네의 신비로운 분위기와 어우러져 그 시절로 돌아가게 만든다. 이곳에서 잠이 든다면 꿈에 미켈란젤로가 나올 것만 같다.
미켈란젤로의 아버지인 루도비코는 이 마을의 권위자였다. 나름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미켈란젤로는 어릴 때 어머니가 아프자 유모의 집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때 유모의 남편이 석수장이였다. 그 영향이었는지 미켈란젤로는 “어렸을 때 조각용 끌과 망치를 갖고 노는 게 가장 즐거웠다”고 했다.
당시 아레초에서 예술가의 위치는 그리 높지 않았다. 아버지의 반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그 결과 우리가 아는 거장이 된다. 이 도시의 이름도 1913년 ‘카프레제 미켈란젤로’로 명명된다. 참고로, 도시 이름인 카프레제와 토마토와 모차렐라 치즈로 만든 카프레제는 무관하다. 샐러드 카프레제는 카프리 섬에서 탄생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배경
아레초 중심가로 향했다. 기차역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하는 곳이다.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둘러싼 넓은 광장 ‘피아자 그란데’.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주인공 가족이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던 장소다. 1940년대 유대인인 귀도와 이탈리아인 도라, 그들의 아들인 조슈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기 전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 곳이다.
광장을 중심으로 옆 골목으로 내려오면 초록색 간판의 ‘CARTOLIBRERIA’가 있다. 영화 속에서는 귀도의 서점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잡화점이다. 기차역 쪽으로 내려오면 ‘Caffe Dei Costanti’라는 간판이 나온다. 영화 속에서 ‘유대인과 개 출입 금지’라고 붙어 있던 곳이다. 현재 이 카페는 폐점해 간판만 남아 있다.
광장 옆 아케이드는 귀도가 도라에게 사랑의 승낙을 얻는, 마법의 열쇠가 떨어지는 곳이다. 아레초 출신의 유명 건축가 조르조 바사리가 지은 건물이다. 아케이드 옆으로 가면 그의 조각상도 있다.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아 토스카나 곳곳에 건축을 남긴 그의 대표작 중 하나가 피렌체에 있는 ‘우피치 미술관’이다. 아레초에는 천재가 태어나게 하는 기운이 있는 것일까.
광장 북서쪽으로 나와 걷다 보면 나오는 ‘아레초 대성당’은 폭우가 쏟아지는 날, 귀도가 도라를 위해 레드카펫을 깔아준 곳이다. 당장이라도 귀도가 “본 조르노, 공주님”을 외칠 것만 같다.
◇007 촬영한 중세의 도시 ‘시에나’
이번에는 차를 타고 서쪽으로 가보자. 굳건한 성벽만 봐도 중세 기사들이 말을 타고 달려올 것 같은 도시 ‘시에나’다.
시에나 관광은 중심가 ‘캄포 광장’에서 시작한다. 첩보 영화 ‘007 퀸텀 오브 솔러스’의 시작 부분에 나오는 장소다. 영화에 등장한 경마 대회는 매년 7월 2일부터 8월 16일 사이에 열리는 ‘팔리오 축제’다. 14세기부터 600년 동안 이어진 축제로 시에나 권역에 포함된 17개 콘트라데(區) 가운데 10개 팀이 출전한다. 중세 시대 기사처럼 옷을 입고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은 놓치기 아까운 광경이다.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광장을 볼 때 다른 작품이 떠오를 것이다. 아만다 사이프리드 주연의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 줄리엣이라는 이름처럼 영화의 시작은 베로나이지만, 50년 전 줄리엣에게 편지를 쓴 클레어와 당시의 사랑 로렌초를 찾으러 떠나는 도시가 바로 시에나다. 그 여행에 동행한 소피는 할머니의 손자 찰리와 함께 시에나 시내를 관광한다. 캄포 광장을 걷고, 시에나 대성당 동쪽 산 조반니 세례당 앞에서 서로의 얼굴에 아이스크림을 묻히는 장난을 치다 사랑의 감정이 싹튼다. 가만히만 있어도 사랑에 빠진다는 시에나에는 약혼녀를 절대 혼자 보내면 안 된다.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피렌체’
토스카나를 여행하는데 피렌체를 빠뜨릴 수는 없다. 세 도시 중 가장 번영했던 도시다. 피렌체를 대표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라겠지만, 그중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를 빼놓을 수는 없다.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여자 베아트리체다.
피렌체 중심가에는 ‘단테의 집’이 박물관으로 있다. 그가 살았던 집을 복원한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가상체험 안경을 끼고 1300년대의 피렌체 풍경을 볼 수 있다. 당시의 풍광 속 단테의 집. 몰락한 귀족 가문이지만, 그리 가난하진 않았다는 기록을 뒷받침해주는 듯하다. 그러나 단테의 집에서 걸어서 1분 거리에 있는 베아트리체의 집에 도착하면 입이 떡 벌어진다. 현재는 호텔 겸 레스토랑으로 사용하는 ‘팔라초 포르티나리 살비아티’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으리으리한 궁전이다. 피렌체에서도 유명했던 부유하고 저명한 은행가 겸 병원장의 딸이었고, 또 다른 은행가 바르디 가문과 결혼한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가 살았던 곳이다. 단테는 어릴 적 우연히 마주친 베아트리체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고 하지만, 정작 두 사람은 제대로 말을 나눠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두 집을 비교해보기만 해도 느낄 수 있다. 이들이 정말 사랑했다고 해도 이뤄질 수는 없었으리라.
단테의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 있다. ‘피렌체의 두오모’로 유명한 곳이다. ‘시에나 대성당’에 자극받아 건설됐지만, 우리에게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대성당이다. 2001년 개봉해 사랑받은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피렌체의 두오모’는 연인들을 위한 성지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장소. 지금도 많은 연인이 그들을 따라 걸어서 두오모의 꼭대기에 오른다.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입장이 불가능할 정도다. 사랑을 이루기 위해 그 높은 계단을 오르고 싶어 줄을 선 많은 연인을 보며 단테는 부러워했을까?
참고로 단테는 젬마 도나티와 결혼해 네 자녀를 낳았다. 자신과 결혼하고도 베아트리체에 대해 수많은 연애 시를 써대는 남편을 보고 젬마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이뤄지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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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 다니는 열정으로 공부를 했으면 하버드대를 갔지!”
어릴 적부터 부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동료들과 퇴근 후 한잔하고 싶은데 어디가 맛집인지 모르겠다고요? 친구, 연인과 주말을 알차게 놀고 싶은데 어디가 핫플인지 못 찾으시겠다고요? 놀고 먹는데는 만렙인 기자, 즉흥적인 ENTP이지만 놀러갈 때만큼은 엑셀로 계획표를 만드는 기자가, 직접 가보고 소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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