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는 교과서에서 인간 생활의 기본 3요소라고 배웠다. 그래서 과거에 없어서 못 입고 못 먹을 때는 서로 나눴다. 하지만 옛말이다.

“누가 요새 옷이 없어서 못 입고 다녀요?”

작아서 못 입거나 안 입는 옷을 불우이웃 돕기에 보냈던 것이 불과 십 수 년 전 일인데, 이제는 봉사단체에서도 입던 옷은 받기를 거부한다. 서울의 한 단체 관계자는 “펑크 난 양말도 안 꿰매 신는 시대에 누가 남이 입다 버린 옷을 입겠어요? 노숙자들도 자기 스타일이 다 있기 때문에 남이 준 옷은 안 입어요”라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옷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일부는 수출되지만, 결국 쓰레기가 된다. 빈티지, 구제 옷 열풍이 불기도 했으나 진짜 값어치를 하는 건 그중에서도 명품 수입 의류 정도다. 그렇게 팔리는 옷은 버려지는 옷의 10%도 안 된다. 오랫동안 의류 원조를 받던 후진국에서도 “옷은 노 생큐(No, Thank you). 제발 그만 보내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일러스트=김영석

◇매일 쌓이는 옷 쓰레기산

집 근처 초록색 의류 수거함은 날마다 가득 찬다. 누군가가 버린 옷은 경기 고양, 광주 등 덤핑거리에 모인다. 그 양만 해도 하루 60톤 남짓. 옷은 산을 이뤄 사람 키의 몇 배 높이로 금세 쌓인다. 국내 의류 폐기물은 작년 기준 10만톤에 육박한다. 코로나 직전인 6만톤과 비교하면 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여기에 공장 등에서 버리는 폐섬유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연간 40만톤 수준이다.

덤핑거리로 모이는 의류 중엔 태그(tag)가 달린 새 옷도 상당하다. 오래 입어 해진 옷도 있지만, 샀다가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로 버려진 옷과, 의류 업체가 팔다 팔다 못 팔고 남은 옷도 이 종착점에 도착해 일종의 심판을 받는다. 솎아내는 과정을 거쳐 되팔 만한 것들은 구제, 빈티지 옷 가게로 가고, 상품 가치가 떨어지면 kg당 300원 안팎 정도에 인도, 말레이시아, 필리핀, 캄보디아 등에 팔리는 쪽으로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고양의 한 수출 업체에서만 한 달에 40피트(폭 2.4m, 길이 12m, 높이 2.9m) 컨테이너 50대 분량 의류가 해외로 나간다. 우리나라는 매년 30만톤 이상 중고 의류를 수출하는 세계 5위 헌옷 수출 대국이다. 그리고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선택받지 못한 옷은 결국 쓰레기가 된다.

경기 고양의 한 의류 수거 업체. 매일 엄청난 양의 헌 옷이 들어와 이런 산더미를 만든다. /유튜브

◇보안업체까지 써서 새 옷 버려

새 옷을 버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국내 패션 산업이 급성장했고, 자체 제작 의류 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어요. 소비자 수요에 맞게 빠르게 유행을 따라가야 하는 데다 일부 브랜드는 이미지 때문에 땡처리 등 할인 정책을 쓰지 않고 그냥 버리죠. 버리는 게 오히려 돈을 버는 거라고 생각해요.” 안 팔려서 싸게 팔면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준다는 얘기다.

유럽 명품 브랜드도 재고를 소각한다.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 등 초고가 명품은 재킷 한 장이 1000만원을 넘는데, 이월 상품 등을 싸게 파는 아웃렛 매장을 운영하지 않아왔다. 사실상 노세일. 업계에선 쉬쉬하지만 안 팔리는 옷은 태우거나 버렸다.

2018년 영국 버버리도 430억원 상당의 재고를 불태워 크게 논란이 됐다. 대표 상품인 트렌치코트로 따지면 2만 벌을 그냥 버린 것. 여기에 소각 비용은 따로 들어갔으니 처리 금액이 어마어마하다. 최근엔 엄청난 질타에 관행을 벗어나려고 기부나 재활용을 하기도 하지만, 이쪽 업계에선 ‘고급 이미지’와 ‘희소성’을 지키려 한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국내에서 온라인 쇼핑몰을 차려 한때 연매출 100억원대를 찍었던 방송인 김준희씨도 “쇼핑몰의 재고들을 처리하는 데만 약 3800만원의 쓰레기 비용이 나왔다”고 고백했다. 패션 업계에선 재고를 버렸다가 소문이 날까 무서워 웃돈을 주고 보안 업체에 제품 파쇄를 맡기기도 한다. “절대로 외부에 누설이 안 되게 1인 참관만 하고 그 장면도 영상으로 찍어 의뢰인 측에 보내줍니다. 아주 만족도가 높아요.”

◇버린 옷 되팔아 갑부 되는 아이러니

구제 옷 시장도 덩달아 커졌다. 누군가는 버린 옷 중에서 상품 가치가 있는 것을 찾아 되판다. “요새는 입을 만한 옷도 버리니까 흙 속에서 진주 찾기처럼 잘 골라내면 돈이 되는 거죠.”

한 업체는 전국을 돌며 헌 옷을 수거, 구제 옷 가게를 열었고 연 매출 20억원을 올렸다. Kg당 1만원. 재킷, 블라우스, 스커트 세 가지 정도를 1만원에 득템할 수 있는 가격. 상대적으로 땅값이 싼 수도권 외곽 지역에선 창고형 구제 빈티지 숍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구제 옷이 널린 유명한 서울 동묘, 홍대 등은 소문을 타면서 kg 단위로 파는 데는 없고 옷 한 장에 5000원, 1만원 수준”이라며 “경기도 쪽으로만 가도 옷을 무더기로 쌓아놓고 kg당 5000원에서 1만원에 파는 곳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옷, 재앙이 되다

문제는 환경오염이다. 옷은 천연섬유로 만들기도 하지만, 70% 이상이 합성섬유다.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등 플라스틱인 셈. 수백 년 동안 땅속에서 썩지도 않는다. 옷을 만들거나 폐기하는 데 드는 탄소 배출량이 세계 탄소 배출량의 10%에 이른다는 통계도 나왔다.

헌옷이 몰리는 아프리카 가나, 칠레 아타카마 사막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소들이 옷 무덤 속에서 합성섬유를 씹어 먹거나, 수년 전 사진과 영상으로 알려진 사막의 옷 쓰레기 산이 전혀 썩지 않고 더 커지고 있다. AFP통신은 “옷 무덤엔 헌 옷도 있지만 새 옷도 많다”며 “칠레로 수입되는 매년 6만톤의 옷 중 4만톤 가까이가 사막에 버려지고 해가 갈수록 그 면적은 더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제야 옷 쓰레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패션의 나라 프랑스도 칼을 빼들었다. 매년 70만톤의 의류 폐기물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의류 재고 폐기 금지법을 만들고 개인에게는 세탁소 등에서 옷을 수선해서 입고 정부에 영수증을 청구하면 최대 25유로(약 3만5000원)를 지원해준다. 국내에서도 국회에서 의류 재고를 관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전 세계 패션 업계도, 국민들도 반응이 미지근하다. 그런다고 옷을 안 사입겠냐고. 오늘도 어떤 패션 인플루언서는 “옷 무덤에 깔려 죽고 싶다”며 언박싱 영상을 찍어 올리며 소비를 부추긴다. “왜 옷장 문을 열면 입을 옷이 늘 없는 걸까요? 그러나 한 번만 더 생각해보세요. 당신이 사는 옷, 결국 환경에 무덤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