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카세를 유행시킨 스시 집 중에서 특히 ‘미들(middle·중간)급’ 식당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외식업계에서 일하는 정동환(41·가명)씨는 자타가 인정하는 스시 마니아지만, 최근 서울에 있는 스시 집에 가본 적이 없다. “일본에 자주 가니까요. 코로나로 한동안 못 갔지만, 올해는 세 번이나 일본에 다녀왔어요.”

그가 지난 8월 도쿄 한 스시집에서 일행 1명과 함께 한 저녁 식사 영수증을 보여줬다. 1만6390엔(약 14만8000원)이라고 찍혀 있었다. “1인당 7만4000원, 넉넉잡아도 8만원이죠. 이 돈이면 국내에서 ‘미들급’ 스시 집 점심 오마카세 가격이에요. 만족도는 더 높았고요. 이러니 서울에서 스시 오마카세를 먹겠어요?”

◇족발·튀김·커피 별의별 오마카세

국내 외식 시장을 견인해 온 오마카세 열풍이 주춤하는 모습이다. 오마카세를 유행시킨 스시 집 중에서 특히 ‘미들급’ 식당들이 줄줄이 폐업하고 있다. 코로나 기간 눌렸던 해외여행이 ‘봉인 해제’되고 환율 때문에 일본 관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벌어진 현상으로 풀이된다.

오마카세는 ‘맡기다’라는 뜻의 일본어 마카세루(まかせる)에서 온 말이다. 요리사가 손님의 취향, 먹지 못하는 재료 등을 파악해 그날 들어온 식재료에 맞춰 내는 게 본뜻이다. 스시 오마카세가 인기를 끌자 한우는 물론 삼겹살, 족발, 튀김, 커피, 디저트까지 별의별 오마카세가 등장했다. 한우구이를 코스로 내면 ‘우(牛)마카세’, 삼겹살·목살 같은 돼지고기를 이용하면 ‘돈(豚)마카세’라 부르는 식이다.

실상은 ‘코스’나 ‘세트 메뉴’로 팔던 음식을 그대로 내면서 오마카세로 이름만 바꾼 식당이 적지 않다. 한 레스토랑 컨설턴트는 “단품 여럿을 묶어 할인해 주는 세트 메뉴와 달리, 오마카세는 가격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너도나도 오마카세를 내세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정한 오마카세가 아닌 마케팅’이라 비난 받는 이유다. 한국 오마카세 열풍을 보도한 일본 매체는 “오마카세를 먹고 소셜미디어(SNS)에 사진과 영상을 업로드해 타인에게 자랑하는 것까지가 세트”라며 “오마카세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사치의 상징”이라고 했다.

그래픽=송윤혜

◇일본 여행 급증하자 경쟁력 급락

코로나 기간 보복 소비로 인기를 끌던 오마카세는 코로나가 끝나면서 인기가 급랭하고 있다. 오마카세를 처음 국내에 소개한 스시 집 중에서 문 닫는 곳이 적지 않다. 특히 미들급으로 분류되는 중간 가격대 스시 집이 여럿 폐업했다. 국내 최대 규모 맛집 앱 ‘식신’을 운영하는 안병익 대표는 “오마카세 조회 수와 검색 수가 낮아졌다”며 “서울 논현동 ‘스시타츠’, 신사동 ‘스시키레이’, 청담동 ‘시라키’ 등 문 닫은 오마카세 스시 집 대부분이 미들급”이라고 했다.

오마카세 스시집은 3등급으로 나눈다. ‘엔트리(entry)급’은 점심 5만원·저녁 10만원 이상인 곳을 말한다. ‘로(low)급’ ‘라이트(light)급이라고도 부른다. ‘미들(middle)급’은 점심 8만원·저녁 15만원 이상 지불해야 스시 오마카세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이다. ‘하이엔드(high-end)급’은 점심 10만원·저녁 20만원 이상 쓸 각오를 해야 한다.

미들급 스시 집의 몰락은 코로나 해제와 이에 따른 해외여행, 특히 일본 여행 급증과 맞물린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312만9000명으로, 일본을 찾은 외국인 중 압도적 1위(29.2%)를 기록했다. 일본정부관광국(JINTO)은 올해 1~4월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206만77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25배로 폭증했다고 발표했다. 1분기 방일 한국인들이 소비한 금액은 1999억엔(약 1조9800억원)에 달하며 1인당 12만4913엔(약 124만원)을 쓴 셈이다.

한 외식업체 대표는 “오마카세가 돈이 된다니까 급하게 오픈한 미들급 스시 집이 많았다”고 했다. “오로지 돈벌이 때문에 시작했는데, 코로나가 끝나고 일본이 열린 거예요. 미들급 스시 오마카세는 일본 본토와 비교해 가격 경쟁력이 없어요. 그러니 손님이 확 줄고 매출이 떨어졌죠. 계산기 두드려보니 폐점하는 게 낫겠다 싶었던 거죠.” 안 대표는 “엔트리급과 하이엔드급에는 별 영향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