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 있는 '동화청과'의 모습. 농산물 시장도 이제는 양보다 질을 증시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김두규 교수 제공

행안부에서 ‘지방소멸대응기금 배분’을 위한 평가단으로 활동한 적이 있었다. 지방소멸위기 89개 지자체에 총 1조원을 배분하는 작업이었다. 지자체가 제출한 소멸대응 사업안을 평가하여 차등 지원했다. 행안부 이상민 장관의 주요 관심 사업이다. 지자체를 모두 살릴 수 없다면 ‘선택과 집중’을 취하겠다는 것이 장관과 정부 방침이다.

‘땅과 사람과 특산물’이라는 여건 분석을 통해 사업안을 작성할 것을 권장하였지만 지자체 사업안들은 비슷비슷했다. ‘기금 받아 건물 짓고 보자’는 사업안이 많았다. 건물들은 몇 년 후 잡초에 덮인다. 토목·건축업자들만 신난다. 공무원들이 스스로 작성하지 않고 외부 용역으로 제출된 사업안도 많다. 지자체들은 때[時], 즉 변화를 모른다. ‘기후변화(climate change)’도 모르고, 인구 감소도 무시한다. 시장·군수 4년 치적 쌓기 용도일 뿐이다.

“21세기 중반이면 한반도의 여름은 4.5개월, 겨울은 2.5개월로 계절에 변화가 올 것이다. 사과 생산은 소멸할 것이고, 고추 생산량은 89% 감소가 예상된다. 전반적으로 농업 생산량은 25% 줄어들 것이다. 명태·도루묵 등 한류성 어종 또한 감소한다.” 전문가 곽재식 숭실사이버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고추장을 특화사업으로 하는 지자체들(순창·영양 등)이 걱정해야 할 일이다. 기후변화는 주식시장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단 한 주도 주식이 없는 필자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은근히 신경 쓰인다. 상추 때문이다. 순창에서 상추 농사를 하느냐고? 그렇지 않다. 최근 기후변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폭염과 폭우이다. 폭염과 폭우에 취약한 것이 상추이다. 올여름도 예외가 아니었다. 상추 값은 3~4배 폭등하였다. 상추 값에 민감한 이유는 애주가인 필자가 ‘소주와 삼겹살’만 먹을 순 없기 때문이다. 상추가 있어야 비로소 온전한 ‘삼합’이 된다.

상추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채소와 과일 전반에 해당한다. 지난 9월과 10월,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을 찾아 취재했다. 전국의 농산·수산물이 모이는 최대 시장이다. 농수산물 시장에 대한 국내외 동향 및 미래 추세까지 파악하고 싶었다. 가락시장은 ‘풍수’에 민감하다. 기후와 강수에 따라 가격이 요동치기 때문이다.

가락시장 내 동화청과 한진규 전무의 설명이다. “소비 트렌드가 바뀌고 있습니다. 판매 총액을 기준으로 하면 과일로는 딸기·토마토·감귤·포도·사과가 5대 품목입니다. 채소류는 오이·상추·배추·고추·양파 순으로 출하됩니다.”

소비 품목의 변화뿐만이 아니다. 소비자들은 동일 품목에서도 양보다 질을 중시한다고 한다. 딸기는 경남 산청, 전남 담양, 충남 논산이 주산지이다. 지자체마다 자기네 딸기가 최고라고 자랑하지만, 이 가운데 하나는 ‘케이크 속에나 버무려지는 B급’이란다. 그 지자체의 딸기는 오래 못 간다.

“차례상·제사상에 필수품인 사과와 배도 명암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차례와 제사가 점점 없어지면서 수요가 줄어들겠지요. 배는 커야 상품성이 좋지만, 사과는 ‘한 입 사과’ ‘세척 사과’ 등 다양한 사이즈로 생산이 가능하기에 사과와 배의 운명도 달라질 겁니다.”

시장에 출하되는 것은 보기가 좋고 규격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성장 촉진제와 성장 억제제를 투여한다. 노지 재배는 옛날 일이고 비닐하우스 재배가 대세이다. 그 경우 과일·채소의 본래 맛이 나지 않는다. 심한 경우, 모양만 채소인 ‘풀’이 되고 만다. 모양만 채소인 ‘풀’을 시장에 출하할 것이냐, 진정한 ‘채소’를 출하할 것이냐는 지자체의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

한진규 전무의 결론이다. “바람[風]과 물[水]이 끊임없이 변화하듯 농산물 시장에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기후·인구·소비 변화에 적응할 특산물을 찾아내는 지자체는 결국 살아남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