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버스로 세 시간쯤 달렸으려나. 강원 정선군 고한사북 공영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중년 남자가 불쑥 말을 걸었다. “강원랜드죠? 택시 같이 탑시다.” 내 행색이 카지노에서 횡재를 꿈꾸는 사람처럼 보인 모양이다. “저 강원랜드 아닙니다.”
고한, 사북 지역은 60년 전 석탄을 매개로 형성된 탄광 마을이다. 1950년대 초까지는 주민 수백 명이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고 한다. 1960년대 초 정부가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사북에 동원탄좌가, 고한에 삼척탄좌가 설립됐다. 탄광과 석탄이 우리 경제를 이끄는 기관차 역할을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정선은 이제 내국인 카지노, 강원랜드로 더 유명하다.
사북역으로 향했다. 여객 열차가 12회 정차할 때 화물 열차가 22회 섰다던 호황은 끝난 지 오래다. 열차 시각표는 단출했다. 하루에 상행 6편, 하행 6편이 멈추는 역사에는 더 이상 탄가루가 날리지 않았다. 플랫폼에는 과거를 박제하듯 갱도 열차가 전시돼 있었다. 요즘 사북역 이용객이 누구인지는 포스터로 가늠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도박, 지금 멈추세요!’
올해는 광부 파독 60주년이다. 1963년 광부 제1진은 광산촌에서 짧은 실습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독일에서 한 달 봉급 600마르크면 한국에서 쌀 10가마를 살 수 있었다. 국민소득 80~90달러의 세계 최빈국이 무엇을 종잣돈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뤘는지, 3만달러 시대에 풍요 속 위기는 무엇인지 사북역이 어질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직장인들은 걸핏하면 “죽겠다”고 넋두리를 한다. 광부들에게는 그것이 실존이었다. 지하 막장이라는 일터는 살기 위해 들어가지만 주검이 돼 나올 수도 있는 장소였다. 파독 광부들은 갱도 안에서 ‘슈템펠’이라는 쇠기둥을 세우면서 전진했다고 한다. 안전하게 작업하지 않으면 와르르 무너지기 때문에 슈템펠은 ‘목숨 기둥’과 같았다.
한국의 광산에서는 쇠기둥이 아니라 목재 기둥으로 낙반을 막는다. 1년 전 경북 봉화 광산 붕괴 사고 때 221시간 만에 구조된 광부 박정하씨는 “버팀목을 잘라 땔감으로 썼다”며 “기적이라고 하는데 ‘반드시 구하러 온다’는 믿음으로 버텼다”고 했다. 사북역에서 청량리행 무궁화호 열차를 기다리다 중얼거렸다. 내 ‘목숨 기둥’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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