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레 미제라블'. 2005년 BBC 조사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누르고 영국인이 사랑하는 뮤지컬 1위로 뽑혔다.

부산에서 뮤지컬 ‘레 미제라블’을 보았다. ‘캣츠’부터 ‘오페라의 유령’을 지나 ‘레 미제라블’까지 뮤지컬 빅3가 올해 모두 부산을 찍고 상경한다. 경로 자체가 역사적이다. 서울에서 길게 흥행하고 이 항구도시로 내려오던 시대는 끝났다. 부산은 대구 못지않게 잠재력이 큰 뮤지컬 시장. 바다와 다양한 밤문화가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레 미제라블’은 서곡부터 휘몰아치는 격랑이다. 막이 열리면 ‘죄수 24601’ 장 발장이 노를 젓는 강제 노역을 하고 있다. 그는 가석방되지만 자유롭지 않다. 보살펴준 신부(神父)의 은식기들을 훔쳐 달아났다가 체포된 장 발장은 자신을 구하려고 거짓말을 하는 신부를 보면서 감화된다. 그는 ‘독백‘을 부르며 가석방 딱지를 찢어버린다. “장 발장은 이젠 없어/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네….”

음악은 말로 담을 수 없는 것, 그렇다고 침묵할 수도 없는 어떤 것을 표현한다. 원작 소설을 쓴 작가 빅토르 위고(1802~1885)의 말이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은 반복이라는 패턴으로 그것을 구현한다. 팡틴이 코제트를 향해 부르는 “내게로~”의 멜로디는 나중에 에포닌의 ‘나 홀로~’, 장 발장의 ‘여기에~’에서 다시 듣게 된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저서 ‘불가능이라는 유혹’에서 “(프랑스 혁명기가 배경인) ’레 미제라블’에 담긴 세상은 크고도 섬세하며 작가는 신학자처럼 보인다”고 썼다. 극한의 불행과 사랑, 좌절과 꿈 뒤에 신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출간 당시 “반(反)사회적이고 위험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현실이 황폐할수록 사람들은 문학이 그려낸 아름답고 이상적인, 그래서 불가능한 세계에 끌린다.

픽션이 인간의 삶에서 사라지지 않는 까닭은 뭘까. 진화생물학자들은 “진화는 무지막지한 실용주의자”라는 말로 그 수수께끼를 설명한다. 세상은 음모·책략·제휴·인과관계 등 이야기로 가득하며 그것을 탐지하는 게 생존에 유리하다. 인류는 불 주변에 모여 이야기를 시작했고, 그림자를 보며 연극이라는 놀이를 발명했다. 이야기는 사람들을 결속하는 사회적 접착제 역할도 한다.

빅토르 위고는 ‘레 미제라블’ 서문에 이렇게 썼다. “지상에 무지와 가난이 존재하는 한 이와 같은 성격의 책은 무용지물일 수 없을 것이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은 19일까지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공연한다. 오는 30일부터는 서울 블루스퀘어에서 ‘나는 꿈을 꾸었네’ ‘브링 힘 홈’ 등 명곡들을 다시 들을 수 있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 한국어 공연.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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