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대망의 결승전! 시간은 충분해요. 아… 여기서 터져버리네요.”

두 남자가 마주 선다. 질겅질겅 쉼 없이 저작근을 씰룩이며. 그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혓바닥을 내밀더니 훅, 바람을 분다. 안면을 덮으며 부풀어 오르는 풍선껌. 흥분해 침까지 튀겨가며 기록을 비교하는 해설진. 1분간 횟수 무제한, 초고속 카메라로 실시간 측정해 가장 큰 지름의 풍선껌을 부는 자가 우승을 차지한다. 껌을 놀이의 복판에 끌어들인 국내 유일 구강 스포츠. 위 대결이 연출된 2015년 대회까지 네 번 연속 개최됐던 ‘풍선껌 크게 불기 챔피언십’이 오는 25일 다시 열린다. 8년 만이다.

◇쪼그라든 껌… 제발 좀 씹어주세요

2014년 열린 ‘풍선껌 크게 불기 챔피언십’에서 한 참가자가 풍선껌에 혼신을 불어넣고 있다. /스위트TV

이 대회는 국내 껌 시장의 80%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롯데웰푸드가 주최한다. 예전엔 신제품 껌 홍보 일환이었다면, 지금은 더 절박한 사정이 있다. 남녀노소 더 넓은 세대의 껌 사랑, 그 부활의 염원이 담겼기 때문이다. “껌 씹기가 생소한 어린 소비자”를 포함한 국적 불문 8세 이상의 시민 모두에게 문호를 개방한 까닭도 그것이다. 총상금도 2000만원으로 상향했고, 우승자에게는 1000만원을 지급한다.

껌은 꾸준히 쪼그라들었다. 스마트폰 등 심심풀이 놀잇감이 늘었고, 입냄새 잡는 대체품은 다양해졌으며, 오래 씹으면 턱이 발달해 미용상 좋지 않다는 인식 등의 여러 이유가 작용했다. 코로나로 마스크 쓰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수요는 더 급감했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7년 2831억원이던 국내 껌 시장 규모는 지난해 1589억원까지 떨어졌다. 미국 대형 식품회사 몬델리즈가 지난달 미국·캐나다·유럽 시장에서 껌 사업 매각 소식을 발표한 것은 껌의 위기가 세계적 현상임을 드러낸다.

◇젤리의 역습, 재밌어야 살아남는다

그래픽=송윤혜

반면 젤리는 무섭게 성장했다. 육회 젤리, 삼겹살 젤리 등 독특한 형태와 질감을 앞세워 젊은 세대 중심의 ‘펀슈머’(재미를 추구하는 소비자)를 자극하며 껌의 지위를 대체한 것이다. 지난 3월 일본 과자회사 메이지가 26년 역사의 ‘기시리슈’(XYLISH)를 단종한 뒤 이 껌을 젤리로 바꿔 출시한 것은 그 단적인 사례다. GS리테일에 따르면, 지난해 편의점 젤리 판매 매출 비율은 껌의 4배 수준. 세계적 젤리 회사 하리보가 지난 3월 하리보코리아를 설립하는 등 외래종의 국내 진격도 가속화되고 있다.

껌은 이제 ‘씹는 재미’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과자 회사 오리온이 올해 초 씹기 전까지 무슨 맛인지 알 수 없는 풍선껌 ‘수수께끼 와우’를 한정 출시하고, 롯데웰푸드가 씹을수록 색이 달라지는 풍선껌 ‘컬러 체인징 왓따 청포도’를 내놓은 것도 그 일환이다. ‘가무코토켄큐쇼’(씹는 연구실)를 운영하고 있는 일본롯데 측은 지난 2월 자사 껌을 씹으면 스마트폰으로 본인의 저작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앱을 출시했다. 1분 동안 60회 씹은 전용 껌을 측정용 종이에 올리면 껌에 가해진 압력과 침 분비량 등에 따른 색소 변화가 일어나는데, 사진을 찍어 앱에 전송하면 10점 만점으로 수치화해 알려주는 것이다. “씹는 것은 뇌, 마음, 신체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야외 활동 늘자 반등… 기세몰이 시작

코로나가 끝나며 상황은 조금 나아졌다. 마스크를 벗고 대면 활동이 많아지자 껌도 바빠진 것이다. 야외 활동이 늘면서 장거리 운전자를 위한 ‘졸음 퇴치용 껌’도 매출 증가를 견인했다. 롯데 껌의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은 약 860억원. 전년 대비 28% 성장세다. 야구 및 골프 선수들에게 개인 맞춤형 껌을 제공해 집중력 상승이라는 기능성을 어필하거나, 치과 단체와 함께 의료 취약 지역 봉사에 참여하는 등 사회 공헌 활동으로 ‘불량함’의 인식을 개선하려는 업계의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올해 ‘풍선껌 크게 불기 챔피언십’은 껌의 재흥행 가능성을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참가 신청은 17일 마감됐다. 껌은 얼마나 부풀어 오를 것인가. 대회 최고 기록은 33.5㎝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