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문제가 돌아왔다. 3년 만이다. 이번에도 큰 싸움이 벌어질 기세다. 싸움보다는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으면 안 될까? 우리에겐 의사가 얼마나 필요한가?
우선 의사 숫자부터 따져 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의사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OECD 최하위권이다. 참고로 일본은 우리와 같은 2.6명이다. 이러니 의료 서비스 공급도 부족한 걸까?
OECD 통계에는 국민 1인당 진료 횟수도 나온다. 한국이 압도적 1위다. 우리 국민은 2021년 평균 15.7회 의사를 만났다. 2위가 일본인데, 11.1회다. 의사 숫자는 최하위권인데, 의사 만나기가 쉬운 것은 의사들이 격무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한국 의사들의 1인당 진료 횟수는 OECD 최고로, 1인당 평균 6113회. 2위인 일본은 4288회다.
흥미롭게도 의사가 많은 나라에선 오히려 의료 접근성이 낮다. OECD 국가 중 의사가 가장 많은 나라는 그리스(6.3명)인데, 국민 1인당 연간 진료 횟수는 2.7회에 불과하다. 둘째로 의사가 많은 나라는 포르투갈(5.6명)인데, 진료 횟수는 3.5회다. 이러다 보니 의사는 많지만 의사 1인당 진료 횟수는 적다. 그리스의 의사 1인당 진료 횟수는 OECD 꼴찌로 연간 428회, 포르투갈은 끝에서 4등인 618회다.
의사 숫자와 의료 접근성이 반비례하는 것은 국가별 의료 시스템 차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국민 건강에 직결되는 의료 서비스들이 ‘급여 부문’으로 분류돼 그 가격이 ‘수가’라는 이름으로 고정돼 있다. 가격은 정부가 결정한다. 대신, 의사들의 고용, 소득, 경영 리스크에 대한 책임은 의사들 몫이다. 다른 OECD 회원국들의 경우 의료 분야에 대한 정부의 관여가 더욱 직접적이다. 의사들의 고용, 소득, 경영 리스크 완화를 정부가 직접 책임져 급여 부문에 종사하는 의사는 사실상 공무원이 된다. 이런 차이를 알면 왜 그리스와 포르투갈에서는 의사가 많은데도 병원 가기가 힘든지, 반대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의사가 적은데도 병원 가기가 쉬운지 이해할 수 있다.
근로시간과 월급이 정해진 시스템하에서는 의사가 진료 횟수를 늘릴 이유가 없다. 어차피 정해진 시간 일하고 받는 돈은 똑같으니 최대한 천천히 진료하는 것이 의료사고 가능성과 근무 강도를 낮추는 방법이다.
반면 가격만 고정됐을 뿐, 고용, 소득, 경영 리스크가 의사 개인 책임인 시스템에서는 의사들이 필사적으로 진료 횟수를 늘리고자 한다. 그래야 소득이 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들은 향후 의료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분야 혹은 의료사고 리스크가 낮은 분야를 선호한다. 경영 리스크에 대한 책임이 의사 개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의사 부족 대란이 일어난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외과 등은 모두 예외 없이 인구 격감으로 인한 의료 수요 감소가 예상되거나 의료 사고로 인한 사법 리스크가 높은 분야이다.
가격 고정 아래 경영 리스크는 의사 개인이 책임지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의료 공급 시스템은 의사들 간 경쟁을 유도해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대량 공급하는 성과를 이루어 왔다. OECD 통계를 보면 “자기 거주 지역에서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만족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이 2022년 OECD 평균치가 66.8%인데 한국은 78%(9위), 일본은 76%(11위)다.
이런 시스템하에서는 경쟁의 결과로 의사들의 수입이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다른 나라에 비해 과도하다 판단하기 어렵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서 병원에 고용된 일반의 연봉은 근로자 평균 급여 대비 2.1배로 통계가 입수된 18국 중 12위이다. 개업한 일반의의 연봉은 평균 급여 대비 3배로 통계가 입수된 13국 중 6위이다. 전문의의 경우, 이 수치가 4.4배(봉직의) 및 6.8배(개업의)로 높은 편이긴 하나, 이는 국가가 방어해 주지 않는 리스크 부분이 반영된 수치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개업 전문의의 경우, 벨기에(5.8배), 독일(5.64배), 프랑스(5.1배) 등 다른 나라들 역시 근로자 평균 급여 대비 의사 수입이 높다.
국가 간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의료 대란의 주범이 의사 부족이라기보다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세계에서 의사가 가장 많다는 나라들에서는 막상 의사 만나기가 힘들다. ‘의사가 얼마나 필요하냐’는 질문은 처음부터 잘못된 질문인 것이다.
경영 리스크를 의사가 책임지는 시스템에서 의사들은 수요가 많고 리스크는 적은 분야로 가려고 하게 된다. 뒤집어 말하자면 필수 진료 과목에서 가격을 올려주고, 의사들이 느끼는 리스크를 완화해 준다면 의료 서비스 공급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가격 고정 시스템에서 의사 증원은 필연적으로 총의료비 증가를 불러온다. 고정된 가격에 공급만 늘어나면 총비용은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비용은 결국 오롯이 국민이 부담할 수밖에 없다.
질문을 고쳐 다시 해본다. 필수 진료 과목 의사 공급을 늘리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필수 진료 과목 의사들의 소득을 올려주고 위험을 낮춰줘야 한다. 조건만 잘 갖춰주면 우리 의사들은 아픈 환자들을 구하려고 나설 것이다. 그들을 한번 믿어봐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