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의 동탄신도시 전경. 2011년 동탄1신도시에 이어 동탄2신도시가 계속 조성되는 가운데 동탄신도시 인구는 40만명에 육박한다. 덕분에 화성시 인구도 조만간 10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뉴시스

‘후방주의’. 교통표지판에 적힌 안내문구인 듯하지만, 실은 남초 커뮤니티에서 야시시(?)한 사진에 붙어 있는 문구다. 공공장소나 아내, 애인이 옆에 있을 때 이 사진을 보면 곤란한 상황을 맞을 수 있으니, ‘뒤에 누가 있는지 잘 보고 클릭하라’는 뜻이다.

최근 이것을 대체한 말이 생겨났다. 바로 ‘동탄’. 몸매가 드러나는 섹시한 의상을 입은 여성의 사진에는 ‘동탄의 소개팅녀’, 해변에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여성의 사진에는 ‘동탄의 해변’,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여성이 ‘모여봐요 동물의 숲’ 게임을 즐기는 사진에는 ‘모여봐요 동탄의 숲’이라는 제목을 붙이는 식이다.

여기서 말하는 동탄은 바로 경기도 화성에 있는 동탄신도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젊고, 활기차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이 신도시는 어쩌다 야릇한 사진을 뜻하는 밈(meme)이 된 걸까.

◇‘동탄룩’‘퐁탄’‘동탄 들렸냐’… 밈의 중심이 된 동탄

동탄이 야릇함의 밈이 된 직접적인 계기는 바로 ‘동탄룩’ 때문. 동탄룩은 여성의 몸에 쫙 달라붙는 형태의 원피스를 뜻하는데, 원래는 ‘신도시 미시룩’이라 불렸다. 경기도 내 여러 신도시에 사는 젊은 전업 주부들이 남편이 출근한 뒤 이런 원피스를 입고 외출하는 모습이 화제가 됐던 것. 특히 30대 젊은 부부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동탄에서 이런 옷을 입은 젊은 유부녀들을 흔히 볼 수 있다는 말이 돌면서 다시 ‘동탄룩’으로 자리를 잡았다.

일러스트=송윤혜

심지어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도 이런 의상들을 판매하며 대놓고 ‘동탄룩’ ‘동탄미시룩’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동탄룩을 입은 의상 모델이나 여성들의 사진이 남초 커뮤니티에 퍼지면서 자연스레 동탄이 ‘섹시한’ ‘야릇한’을 대체하게 된것이다.

그럼 정말 동탄에는 ‘동탄룩’이 많은 걸까. 동탄 내에서도 말이 엇갈린다. 일부는 “동탄에 살지만 동탄룩을 입은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고 하지만 “00공원에 가면 동탄룩 입은 여성들이 널려 있다”는 목격담도 적지 않다. 한 유튜버가 진실(?)을 파헤치겠다며 직접 동탄을 찾아갔지만, 명성처럼 동탄룩을 입은 여성들이 몰려다니는 모습은 좀처럼 포착되지 않았고 ‘동탄룩을 입은 사람들을 꽤 봤다’는 목격담을 찾는 데 그쳤다.

동탄은 단순히 밈에서 끝나지 않는다. 젊은 세대가 몰린 커뮤니티에서 동탄은 핫한 조롱과 웃음 소재다.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동탄을 ‘퐁탄’으로 부르는데, 동탄에 유독 ‘퐁퐁남’이 많다는 뜻이다. 퐁퐁남은 외벌이를 하는데도 가정 내에서 경제권과 발언권 없이 아내를 대신해 육아와 집안일, 설거지까지 도맡아서 하는 남성을 뜻하는 말. 동시에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데도 가사나 육아에 전념하지 않고 개인의 여유만 추구하는 여성들을 공격하는 용어다.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동탄 들렸냐”는 말이 인기다. 최근 몇 년간 동탄 신도시의 아파트 및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자 일부 동탄 주민들이 “동탄이 곧 분당, 판교를 넘어설 것” “동탄이 곧 강남을 넘어 대한민국의 중심이 된다” 같은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타 지역 주민들이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에 등장하는 “너 사탄 들렸어?”라는 유명 대사를 패러디해 “너 동탄 들렸어?”로 조롱하기 시작한 것이 웃음을 자아내 유행으로 자리 잡은 것. 하지만 동탄 주민들도 “동탄 들린 거 인정한다. 하지만 동탄의 미래는 찬란한데 어쩔 거냐”며 맞대응(?)하는 중이다.

◇‘신도시’의 상징이 된 동탄의 미래는…

왜 하필 많은 신도시 중 동탄이 걸린 걸까. 전문가들은 “현재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젊은 도시이기 때문에 신도시 특유의 문화를 가장 상징하는 곳으로 꼽힌 것”이라고 추측했다. 삼성전자 화성사업장과 인접할 뿐만 아니라 외국계 반도체기업, 대기업 연구센터, 중견 바이오기업들이 동탄에 속속 모여들면서, 2011년 개발이 마무리된 동탄 1신도시와 현재 조성이 계속되고 있는 동탄 2신도시를 합치면 올해 기준으로 인구가 약 40만명에 육박했다.

고급 일자리가 풍족해지자 젊은 고소득 부부가 모여들면서 올해 기준 화성시는 인구 평균 연령이 38.4세로 전국에서 가장 젊은 도시인 동시에 인구 100만명 진입을 코앞에 둔 상태. 작년 초·중·고교생 전입 인구마저 서울 강남구를 제치고 전국 1위를 기록했을 정도다.

그래서일까. 동탄에서 신도시에 흔히 보이는 허세·과시·차별 문화가 유독 심하다는 말들이 나오기도 했다. 가령 ‘유부녀들이 남편의 직장에 따라 서로 등급을 매기고 차별·무시한다더라’ ‘젊은 사람들이 명품 등 과소비가 심하다’ ‘동탄 외 지역 사람들을 폄하하고, 동탄 부동산 가격을 올려치기하는 집단 이기주의가 심하다’는 식이다.

전문가들은 “동탄이 젊은 세대에게 욕망의 대상이자 혐오의 대상”이라고 분석했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은 “동탄에 대한 얘기들의 기저에는 결국 ‘남편은 좋은 직장에서 많은 돈을 벌고, 아내는 매력적인 성적 대상인 동시에 육아와 가사를 잘해내는’ 한국 사회의 이상적인 중산층 모델을 많은 사람이 갈구하지만, 동시에 그런 이상향은 현실에선 찾아보기 힘든 것에 대한 분노와 질시가 담겨 있다”고 했다. 대기업에 취업해 고소득을 벌고 자신의 아내로 ‘동탄룩’을 입는 매력적이고 가정적인 여성을 배우자로서 욕망하지만, 동시에 기대와 달리 동탄에 진입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 박탈감과 부동산 가격이나 허세 문화에 집착하고 가사·육아를 오롯이 전담해주지 않는 일부 여성에 대한 분노가 ‘동탄’ 밈을 통해 표출되고 있다는 것.

그럼 동탄 주민들의 소망대로 동탄은 정말 대한민국의 중심, 분당과 판교를 넘어선 이른바 ‘최상급지’로 거듭날 수 있을까. 부동산 전문가인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삼성전자가 인접해 있고 일자리가 많은 동탄이 베드타운 위주의 신도시와는 레벨이 다르다는 건 팩트”라면서도 “하지만 여전히 업무지구가 독자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데다 서울 강남과도 인접한 분당, 판교를 넘어설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GTX가 개통하더라도 자동차를 통한 접근성은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