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老人)은 늙은 사람을 일컫는다. 늙었다는 것,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친근감을 강조한 ‘아버님’ ‘어머님’ ‘선생님’ ‘실버’ 등의 여러 호칭이 쓰인다. 그러나 거부감이 적지 않다. 어찌 됐건 나이 많은 사람 취급이 기분 나쁘다는 것. 영어도 이질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노인복지법에서 ‘노인’을 ‘시니어’(senior)로 바꾸자는 개정안이 발의되자 한글 단체의 거센 항의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공공 기관 민원실 등에서는 그냥 이름 뒤에 ‘씨(氏)’를 붙이는 사무적 호칭을 택하는 경우도 많다. 딱딱하긴 해도 불필요한 불만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내년부터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한국 사람 다섯 명 중 한 명은 노인이라는 얘기다. 대체 뭐라 불러야 할까?
◇나이 대신 경력 강조… 老 대신 路?
그러자 ‘선배 시민’이 등장했다. 지난달 경기도의회는 65세 이상 도민을 ‘선배 시민’으로 명시한 조례를 공포했다. 노인 대체 명칭이 지방자치 조례에 명시된 첫 사례다. 나이가 아니라 경험을 강조한 것이다. 65세 미만은 ‘후배 시민’으로 정의했다. 도의회 측은 “고령 사회 진입에 따라 노인들이 선배 시민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 참여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발의 이유를 밝혔다.
1998년 한국사회복지협의회 공모로 선정된 ‘어르신’은 가장 흔한 대용어였다. 이 또한 반발에 부딪히는 형국이다. 65세 이상 경로 우대 승객이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할 때마다 “어르신 건강하세요”라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오도록 하자 항의가 이어진 것이다. “늙었다고 망신 주는 거냐.” 결국 한 달도 안 돼 안내 음성에서 ‘어르신’은 빠졌다. 지난 10월 기독교 단체 하이패밀리가 성인 17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82%의 몰표를 받은 노인 대체 호칭은 ‘장청년(長靑年)’이었다. 하이패밀리 측은 ‘노년’의 ‘老’(늙을 로)를 ‘路’(길 로)로 바꿔보자는 제안도 내놨다. 젊은이들의 ‘길’이 되는 세대라는 의미다.
◇젊은 노인 늘어… 연령 상향 요구↑
사회 연령과 신체 나이의 불균형 때문이다. 젊은 노인, 이른바 ‘욜드’의 등장과 함께 문제는 불거졌다. 65~75세 인구를 칭하는 ‘Young Old’ 세대의 줄인 말.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2020년부터 “욜드 세대의 서곡이 울리는 해가 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이들은 지난해 국내 패션 업계가 시장 확장을 위한 새 타깃으로 내세울 정도로 멋에 민감하고 역동적인 세대다.
노인 연령 상향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다. ‘65세=노인’은 1950년대 유엔(UN)이 고령 지표 산출을 위해 채택한 낡은 공식이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지난해 노인 기준 연령을 높이자고 제안했다. 2025년부터 10년마다 한 살씩 올리자는 점진적 상향안(案)이다. 올해 초 노인 기준 연령을 만 70세로 올리는 방안에 대한 한국갤럽 설문 조사(1002명)에 따르면, 찬성 60%, 반대 34%로 나타났다. 2015년 조사에서 찬성 46%, 반대 47%로 팽팽했던 것과 대비된다.
◇‘부담’ 돼버린 노인… 혐오 표현 늘어
한국 사회에서 ‘65세 이상’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생산 가능 인구에서 탈락한, 부양의 대상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세대 간 유대가 약해지면서 과거와 같은 ‘어른’으로서의 존재감도 희미해졌다. 65세 이상 대중교통 무임 승차 논란은 그 대표적 예다. 대구시는 올해부터 버스 무임 승차 연령을 75세부터 한 살씩 내리고, 도시철도는 65세부터 매년 한 살씩 올려 2028년부터 70세 이상으로 일괄 통일하기로 했다.
‘연금충’(蟲), ‘틀딱충’ 등의 노인 혐오 표현도 만연해지는 추세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은 이 같은 사회 분위기가 일부 반영된 것으로 알려진 차기작 ‘노인 죽이기 클럽’ 제작을 예고한 바 있다. 정순둘(한국노년학회장) 이화여대 교수는 “노인 호칭 갈등은 단순히 문화적 차원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위해 경제·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많은 숙제를 암시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