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영석

산타클로스가 한국에 왔다. 눈썰매 대신 항공기를 타고 지난 11일 인천국제공항에 내렸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방한한 이 남성은 핀란드 당국에서 ‘공식 인증’을 받은 산타클로스다. 개인 정보는 기밀에 부쳐지지만, 벌써 40년 넘게 핀란드 국영 항공사 핀에어를 이용한다고 한다. 핀란드 북부 로바니에미시(市)에 거주하는데, 거기 조성된 ‘산타 마을’에서 고용, 아니 활동하는 여러 요정과 함께 전 세계 동심을 자극한다.

이맘때를 기다린 건 애들뿐만이 아니다. 산타들(?)에게도 대목이기 때문이다. 산타 마을에서 파견된 공식 산타는 12일 구세군 요청으로 중소기업유통센터가 주최한 성탄절 행사에 참석했고, 14일 롯데백화점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도 선물 자루를 들고 존재감을 과시했으며, 16일 경북 봉화군 ‘한겨울 분천 산타 마을’ 등의 여러 한철 이벤트를 위해 국내에서 한 달 내내 비즈니스를 이어간다. 새해 강원도 산천어 축제에도 참석할 예정이라 한다. 행사 관계자는 “계약 조건에 신상 비공개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핀란드에서 온 공식 산타?

핀란드 항공기를 타고 최근 한국을 방문한 핀란드 공인 산타클로스. 핀에어가 '산타 특별 항공기'로 운영된지는 올해로 40주년이 됐다. /핀에어

크리스마스 관련 행사마다 ‘공식 산타’ 방문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공식 산타라니, 언제부터 산타가 핀란드산(産)이 됐나. 3세기 튀르키예 지방 파타라에서 태어난 산타의 원형, 성(聖) 니콜라스의 신화는 오랜 세월 스페인·네덜란드·독일 등지로 떠돌았다. 최근 발간된 책 ‘크리스마스는 왜’에 따르면 산타가 한곳에 정착한 건 1869년 무렵. 북극이었다. 우편 서비스 발달로 아이들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를 위해 합의된 가장 신비로운 주소지였다는 것. 그러다 그린란드, 미국 뉴욕주 노스폴(North pole·북극), 알래스카주 노스폴 등이 관광산업 경쟁에 뛰어들었다. 핀란드가 치고 나갔다. 1985년 산타 마을을 조성하고 1991년 영국 BBC 등에 대대적으로 소개되면서 우세를 잡은 것이다.

편지는 쏟아지고 있다. 강원도 화천에는 ‘산타클로스 우체국 대한민국 본점’이 있다. ‘겨울 도시’를 표방하고자 화천군이 핀란드 측과 2017년 독점 계약을 체결했다. 화천에 당도한 어린이들의 소망 편지는 올해만 1만통이 넘는다. 산타 우체국 관계자는 “산타 마을에 한국어 번역을 도와주는 요정이 있다”며 “개별 주소로 영어로 된 답장이 가고 뒷면에 별지로 한글 번역본을 첨부한다”고 말했다. 시간 관계상 10월까지 접수된 편지만 산타에게 전달된다. 등기우편이 아니라 일자를 보장할 수 없으나 보통 12월 넷째 주 전후로 도착한다. 우편 비용은 화천군이 부담한다.

◇“산타 없다” 가르치는 신세대 부모

일러스트=김영석

알면서 속아주는 미덕, 그러나 흔들리고 있다. Z세대 중심의 ‘반(反) 산타족’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거짓으로 환상을 심어주고 이것이 탄로 났을 때 받게 될 정서적 충격을 더는 용납해선 안 된다는 주장. 지난해 소셜 미디어 틱톡에서 유행한 영상 챌린지가 바로 ‘#SantaIsntReal’(산타는 진짜가 아냐)이었다. “모든 걸 꿰뚫어보는 존재가 감시한다는 생각은 아이들에게 트라우마를 야기합니다.” 뉴욕포스트 등 외신이 잇따라 보도할 정도로 사회적 논쟁을 야기했다. 전통 파괴에 대한 염려. 2018년 영국 엑서터대 심리학과 크리스 보일 교수팀은 영국 성인 1200명을 설문조사했는데, 34%가 여전히 산타를 믿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은 ‘산타에 대한 믿음이 아이의 선행을 유도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니 희망의 훼손은 위험할 수 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종교 축제에서 한 가톨릭 주교가 “산타는 없고 그의 빨간 옷은 코카콜라가 홍보용으로 만든 것”이라고 발언하자 이에 격분한 부모들이 항의하면서 소속 교구가 공개 사과한 2021년의 해프닝처럼. “아이들의 상상력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산타클로스는 나눔과 관대함의 중요성을 전달하는 이미지입니다.” 소련의 북극 핵실험으로 냉전이 극도로 고조되던 1961년, 미국 미시간주의 여덟 살 소녀가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산타가 죽을까 걱정돼요. 북극 폭격을 막아주세요.” 케네디도서관·박물관이 공개한 편지에서, 그해 10월 28일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이렇게 답했다. “걱정할 필요 없단다. 어제 산타와 통화했는데 괜찮다고 하더구나. 이번 성탄절에도 선물을 나눠주러 갈 거야.”

◇이게 산타지… 깜짝 선물 대작전

'몰래 산타 대작전'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 지난주 산타 학교에 모인 사람들이 환호하고 있다. /한국청소년재단

착한 아이는 꼭 선물을 받아야 한다. 크리스마스만큼은 가정 형편을 잊을 수 있어야 한다. 한국청소년재단이 ‘몰래 산타 대작전’을 진행하는 이유다. 취약 계층 아동 1004명의 집을 찾아 선물과 온기를 전달하는 행사. 2006년 시작해 올해 열여덟 번째다. 선물 후원금 2만원을 내고 지원한 산타가 올해만 900명에 달해 역대 최다다. 재단 관계자는 “미리 보호자와 연락해 아이가 원하는 선물 등을 조사한다”며 “선물만 두고 가는 게 아니라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각 가정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지난 9~10일에는 예비 산타를 위한 ‘산타 학교’가 서울 서대문청소년센터에서 열렸다. 전국에서 모인 700여 산타가 율동과 대사 등을 배우는 자리였다. 아동별 사연을 숙지해 대화 도중 자칫 상처가 될 만한 이야기는 피해야 한다는 등의 수칙도 익혔다. 가장 중요한 건 발성. 산타에게 연상되는 특유의 너털웃음, 푸근한 목소리를 위해서다. “애들 로망을 깨뜨리면 안 되잖아요.” 올해로 네 번째 산타 변신에 나선 고지원(25)씨는 “성탄절을 즐기기 어려운 환경에 놓인 보호자 중에는 고맙다며 손잡고 우는 분도 있다”면서 “산타가 왔다고 박수 치고 환호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큰 감동을 받는다”고 말했다.

◇우주방위사령부, 지금 산타 어딨나요?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 북미 항공우주방위사령부 관계자들이 모니터를 확인하며 산타클로스의 실시간 위치를 전화로 안내하고 있다. /NORAD

순전히 숫자만 놓고 보면 산타클로스가 하룻밤 만에 전 지구를 돌려면 시속 818만300㎞, 초속 2272㎞로 날아다녀야 한다. 안전 운전이 걱정될 만하다. 북미 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는 산타의 위치를 (가상으로) 실시간 알려주는 ‘산타 위치 추적 서비스’를 매년 12월 24일 제공한다. 대변인실에 따르면 “루돌프 코에 불이 들어오면 적외선 감지기로 파악한다”고 한다. 콜센터(영어)로도 안내하고, 홈페이지에는 최근 한국어 버전이 추가됐다.

군사 조직이 왜 이런 일을 하는가. 1955년 미국 시어스백화점이 “새로 개설한 ‘산타 직통 전화’로 크리스마스에 받고 싶은 걸 말하면 선물로 주겠다”는 내용의 이색 광고를 내보냈는데, 그만 오타가 나고 말았다. 북미 항공우주방위사령부 전화번호가 실린 것이다. 당시 당직 근무를 서던 해리 슈프 공군 대령은 빗발치는 아이들의 전화를 받게 됐고, 곧 그들이 매우 진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임기응변으로 산타의 이동 경로를 상세히 설명했다. 그때부터였다. 전화 문의만 매년 10만 건. 현재 120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이 서비스를 돕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간절히 기다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