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이라는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사회가 뭐라도 도와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상진(67) 성남시장이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경기도 성남시는 출산율 높이기 정책의 일환으로 올해 20~30대 미혼 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커플 매칭 행사 ‘솔로몬의 선택’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지난 7~11월 다섯 차례 행사에 80~100명씩 총 460명이 참가, 총 99쌍(198명)의 커플이 나와 매칭률 43%를 기록했다.
해외 언론들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미국 유력지 뉴욕타임스가 8월 ‘솔로몬의 선택’을 1면에 실었고, 싱가포르 최대 신문 스트레이츠 타임스, 영국 로이터 통신, 캐나다 야후뉴스 등이 한국 지방정부가 연애와 결혼에 개입해야 하는, 소위 ‘중세 유럽 흑사병 수준’이라는 세계 최악의 저출산 실태를 조명했다.
신 시장은 “올해 출발이 좋아 내년엔 ‘솔로몬의 선택’을 확대 실시할 생각”이라며 “마음 같아선 한 번에 500명씩 모아 놓고 짝을 찾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건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삶의 행복인데, 그 전제가 무너져 이런 사업까지 해야 하고 외신에 나온다는 건 사실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의사이자 노동운동가 출신에 4선(選) 국회의원을 지낸 초로의 지방자치단체장이 하트 모양 풍선을 들고 ‘성남 공식 중매쟁이’로 나선 사연은, 마냥 웃으며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MZ도 결혼에 진지하더라
-‘솔로몬의 선택’에 신청자가 많이 몰렸다면서요.
“처음엔 ‘관(官)에서 단체 미팅 하는데 MZ 세대가 오겠냐’며 걱정이 많았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그렇지 않았어요. 7월에 첫 행사 신청을 받아보니 경쟁률이 12대1에 달했어요. 5회 행사 후 결산해 보니 참가자 460명 모집에 2571명이 몰려 평균 경쟁률이 6대1이더군요. 남성 신청자가 여성의 두 배였고요. 추첨을 해야 했어요.”
-참가비가 없어 가벼운 마음으로 온 걸까요?
“사설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해 결혼이 성사되면 몇 백만~몇 천만원 들잖아요. 연애와 결혼에 대한 장벽이 더 높게 느껴지겠죠. 제가 ‘솔로몬의 선택’ 현장에 매번 가봤는데, 놀다 간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온 젊은이는 없어 보였어요. 옷차림과 표정 보면 알지요. 남성 참가자들에게 ‘원하면 간단한 메이크업을 해주겠다’고 했더니, 10명 중 7명이 받더군요.”
-관리를 시청이 다 했습니까.
“시 공무원들이 학력·직업과 미혼 여부 등을 일일이 검증했습니다. 이벤트 진행은 외부 업체에 맡겨서 와인 시음에 MBTI별 미팅 하고, 맥줏집도 가고… 한 번에 5시간 이상 이벤트를 했는데도 다들 ‘시간이 너무 짧다’고 아쉬워하더군요. 현장에서 커플 매칭이 안 됐어도 참가자들끼리 친해져 따로 모이고 한대요. 거기서라도 잘되면 좋겠어요. 저희가 후속 실태를 파악 중인데, 내년엔 결혼하는 커플도 나올 것 같아요.”
-가장 효과 좋은 이벤트는 뭐였나요?
“야외 소풍요. 10월에 한 번 관내를 벗어나 제부도에 가서 바다 보고 조개 구우며 행사를 했는데, 그때 현장 분위기도 참 좋고 매칭률도 53%로 가장 높게 나왔습니다. 내년 봄엔 야외에서 같이 운동하고 땀 흘리면서 짝을 찾게 해주고 싶어요.”
-인생 선배로서 청춘 남녀에게 ‘짝 잘 찾는 팁’을 준다면요.
“본능대로 하는 게 제일 좋죠. 인생관만 맞으면 너무 조건 따지지 말고 본능이 이끄는 대로 가면 거의 실패가 없어요. 제가 운동권 하다 서울의대에서 잘리고 성남에서 노동운동을, 아내는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 할 때 만났어요. 처음 만난 순간 ‘결혼해야겠다’는 느낌이 왔는데 평생 잘 살고 있어요.”
◇저출산? 결혼 문턱부터 낮추자
앞서 일부 지자체가 커플 매칭 행사를 연 경우가 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성남시에서 대박을 친 것은 수도권에 인접해 기업과 젊은 인구가 몰린 덕이 크다. 서울시와 부산시도 비슷한 행사를 기획했다가 ‘저출산과 직접 관련 없는 시대착오적 전시 행정’이란 비판에 좌초됐는데, 성남시의 성공을 보고 재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솔로몬의 선택’ 노하우를 배워가려는 지자체들 문의가 쇄도한다고 한다.
-이 사업에 착안한 계기가 있나요.
“저도 결혼 적령기인 두 딸이 있어요. 서른셋, 서른 살이에요. 둘 다 결혼 생각은 있다는데, 공부하고 일하느라 바빠 사람을 만날 시간도 기회도 없대요. 맞선 자리는 부담스럽다 하고… 아내가 딸들을 결혼정보회사에 가입시키려 했는데, 자연스러운 만남이 아니라 제가 반대했어요. 제 자식 같은 시민들 다 비슷한 처지 아닐까 싶어 지자체가 나서보기로 했습니다.”
-요즘 결혼을 해도 아이는 낳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한국 문화에선 결혼을 하지 않고는 아이 낳기가 힘들어요. 2022년 기준 인구 1000명당 3.7쌍만 결혼을 해요. 10년 전엔 6.5쌍이었어요. 그 결과 한국 합계출산율 0.78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1.58명)의 절반밖에 안 되는 꼴찌 국가가 됐어요. 성남시도 지난 10년간 혼인 건수 45.3%, 출생아 수는 43.9% 감소해 반 토막이 났어요. 결혼 건수부터 늘리는 게 저출산 대책의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저출산 정책에 아무리 재원을 투입해도 상황은 악화되는데요.
“제가 2005~2020년 4선 의원을 하는 동안 국회 보건복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정권별로 저출산이 어떻게 다뤄지는지 지켜봤어요. 그런데 어느 정부에서든 이 문제는 ‘해결의 주체’가 없더군요. 확실한 주무 부처도 컨트롤타워도 없이 책임 소재가 산재돼 있어요. 정책을 써서 바로 효과가 나지 않다 보니 임팩트 있는 정책도 안 나오고 실패해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어요. 신혼부부 주택 공급 해봤자 몇 채나 되나요? 무작정 예산 늘리고 조직만 만들 뿐, 선택과 집중을 못하니 실효가 없는 겁니다.”
-저출산의 여러 원인 중 최대 난제는 무엇이라 봅니까.
“저성장, 집값 폭등, 사교육비 부담, 긴 근로시간과 성차별 등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지요. 가장 힘든 부분이 인식의 문제라고 봐요. ‘결혼은 선택, 아이를 키우는 건 부담 혹은 재앙’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순식간에 너무 크게 퍼졌어요. 20~30대 나이에 가정을 이루는 데 필요한 충분 조건이 다 갖춰지지 않은 건 사실 당연한 거예요. 인류가 경제·사회적 환경이 완벽하게 마련된 상태에서 후손을 퍼뜨린 경우가 있나요?”
-그런 이야기 하면 ‘꼰대’란 말 들을 것 같은데요.
“불편한 진실이지만 말하지 않을 수 없어요. 어쨌든 공동체를 유지하려면 꼰대들이 젊은이들을 더 이해하고 도와주려 노력해야죠. 생산 가능 인구가 줄고 사회가 고령화되면 의료와 복지, 일자리 등 공공 서비스 수요가 증가해 재정 부담이 폭등할 겁니다.”
◇‘아수라’의 도시를 핑크빛으로
-‘솔로몬의 선택’ 외에 성남시가 내세울 저출산 정책이 있습니까.
“유치원·초등학교에서부터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인식 개선 교육을 해보려고 해요. 1980~90년대 초반까지 산아제한 한다고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키우자’ ‘셋째는 부끄럽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같은 포스터를 국민학교 교실에까지 붙였단 말이에요. 그때 공포심을 가진 아이들이 커서 지금 출산 파업을 하잖아요. 여성들 사이에 ‘결혼하면 손해’란 피해 의식도 크고요. 이젠 학교에 ‘결혼은 필수이고 출산은 축복이며 형제는 꼭 있어야 한다’고 써붙이고, 가정의 가치, 남녀의 가사 분담, 아이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풍조를 어릴 때부터 교육해야 해요.”
성남시는 이재명 시장 시절 대장동·백현동 개발사업 특혜와 성남FC 불법 후원 의혹으로 수사가 이어지고, 이어 은수미 시장이 뇌물 수수로 복역하는 등 각종 스캔들로 얼룩졌다. 시와 법조계, 기업, 조폭의 유착을 그린 영화 ‘아수라’의 모델이 성남시라는 말도 나왔다. 민주당 세가 강했던 성남시에선 지난해 12년 만에 처음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 소속 신 시장이 당선됐다. 신 시장은 ‘조국흑서’를 쓴 김경율 회계사 등을 투입해 ‘시정정상화특위’까지 꾸렸다.
-공약한 시정 정상화는 잘 돼갑니까.
“취임 1년이 넘었는데 간신히 자리 잡는 중입니다. 전임자 관련 압수수색이 이어지고, 아직 공직 사회도 정리가 안 됐어요. 성남시가 잘하든 못하든 관심이 워낙 많아 부담이 큽니다. 국회의원 할 때보다 몇 배는 힘들어요.”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는 시민운동을 같이 했던 사이지요?
“1990년대 초 성남 YMCA 이사진으로 만나 ‘성남시민모임’을 같이 운영했어요. 매일 만나다시피했지요. 그런데 지향점이나 방식이 너무 달라서 멀어졌어요. 시민운동 한다는 사람이 시장이나 고위 공무원하고 술 먹고 다니더라고요. ‘이변, 그러면 되나?’ 하니 ‘술자리에서 몰래 녹음해 약점 잡으러 만난다’고 하더라고요. 시민단체 숙원 사업이 성사될 만하면 ‘시장이 숟가락 얹게 생겼다. 그럼 우리에게 돌아오는 게 없다’며 판을 깨버리고요. 원래 가치와 명분에 헌신하기보다는 본인 유불리만 따지는 타입이죠. 요즘 그가 하는 모습을 보면 전 하나도 놀랍지가 않아요.(웃음)”
-지자체 운영에서 중요한 게 뭡니까.
“요즘 정치판이 막말과 혐오, 팬덤 정치로 오염됐습니다. 제가 몸담았던 여의도를 보면 무서울 정도예요. 다만 지자체는 이념과 구호가 덜 중요해요. 현장에 기반한 구체적인 정책은 살아남죠. 민생 하나하나를 개선하는 데 집중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