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수(가운데)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창업자가 지난 16일 일본 후쿠오카돔에서 콘서트를 앞둔 한국 보이그룹 ‘세븐틴’과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세븐틴 멤버 13명 중 에스쿱스와 정한은 수술과 재활로 활동을 멈춘 상태라 11명만 모였다.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땅을 보고 계속 올랐지 정상까지/ 많은 시련은 보란 듯이~.”

일본 후쿠오카돔에서 지난 16일 열린 한국 보이그룹 ‘세븐틴’의 콘서트장. 4만명 앞에서 그들은 데뷔 9년 만에 ‘아시안 뮤직 어워드(MAMA)’에서 대상을 안겨준 곡 ‘손오공’으로 무대를 시작했다. 직접 만든 자전적인 노래다. 이날 공연은 도쿄 등 일본 5개 도시 돔 투어의 마지막이었다. 12회 공연에 51만5000명이 몰렸다. 미국·독일 등 세계 66개 국가 1500개 영화관에서 생중계했다. 일본 ‘세븐틴 더 시티’ 행사에는 30개 기업이 참여했다.

올해 ‘세븐틴’은 최고의 해를 보냈다. K팝 그룹 최초로 유네스코 연설과 공연을 했다. 미니 11집 앨범은 일주일 만에 509만장을 판매해 K팝 사상 처음으로 ‘초동 500만장’ 기록을 세웠다. ‘방탄소년단(337만장)’의 기록을 뛰어넘은 것이다. 유닛(그룹 내 팀) ‘부석순’은 지난 14일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AAA)’에서 대상을 받았다. 한 해에 완전체와 유닛이 모두 대상을 받은 유일한 그룹이다.

지난달 14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진행된 세븐틴의 ‘유네스코 청년 포럼’ 스페셜 세션.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제작자 한성수(52) 플레디스 창업자는 ‘세븐틴의 아버지’로 불린다. 국립무용단 소속 무용수였던 그는 대중음악이 하고 싶어 서른 살에 인생의 항로를 바꿨다. 한국콘텐츠진흥원장 공로패, MMA 베스트 프로듀서상 등을 받았지만, 업계에서 그를 가장 부러워하는 건 중국인·미국인이 포함된 13명의 다국적 그룹이 전원 재계약에 성공했다는 점. 9년 동안 큰 사건 사고 없이 활동했다는 것이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만난 그를 붙잡고 물었다. 멤버들을 어떻게 관리하셨나요? “제가 어떻게 관리를 하나요? 믿고 맡기고 기다렸을 뿐이지요.”

◇9년 만에 첫 정상

“여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시작부터 손가락질 많이 받았어요. 모두가 너희는 절대 안 될 거라고, 사람 너무 많아서 안 된다고.”

지난달 2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MAMA’에서 멤버 우지(이지훈)가 울먹이며 말했다. 데뷔 당시 “13명은 너무 많다” “멤버 평균 나이가 17세로 어려서 불화가 심할 것이다” “그들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라는 지적이 있었다. 첫 앨범 판매량은 1400장, 첫 단독 공연 관객은 800명이었다.

-대부분 실패를 예상했어요.

“당시 저희는 작은 회사였습니다. ‘저 팀 되겠어?’라는 분위기가 만연했어요. 데뷔한 해 MAMA에서 공연한 적이 있습니다. 다 같이 이코노미석 타고 가서 공연만 하고 돌아왔지요. ‘다음번에는 꼭 상을 받자’ 다짐했는데, 9년 만에 대상을 받았습니다. 제가 제작한 가수 중 첫 대상이었고요.”

일본 후쿠오카돔 ‘세븐틴’ 콘서트 현장의 한성수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창업자. 국립무용단 무용수 출신으로 서른 살에 대중음악을 시작한 그는 손담비, 애프터스쿨, 세븐틴 등을 키워냈다.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다인원 그룹을 한 이유라면.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는 팀을 해보고 싶었어요. 시작은 대구에서 캐스팅한 ‘에스쿱스(최승철)’였습니다. 그다음엔 우지였죠. 그가 오디션에서 제이슨 므라즈의 노래를 기타 치며 부른 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멤버들이 모여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어요. 연습생이란 불확실한 상태입니다. 마지막까지 누가 데뷔할지 모르는,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됩니다. 그래서 월말 평가는 늘 경쟁이 치열해요. 그런데 어느 날 멤버들이 ‘저희가 협업해서 무대를 만들어 봐도 될까요?’ 묻더라고요. 바로 ‘해보라’고 했습니다. 두 그룹으로 나눠 함께 무대를 꾸미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을 모두 데뷔시켜도 되겠다’ 싶었어요.”

아이돌 업계에는 ‘마의 7년’이라는 말이 있다. 재계약 시즌이 돌아오는 7년 차에 그룹이 해체되거나 쪼개지는 일이 많다는 뜻이다. 2021년 ‘세븐틴’의 재계약은 다국적 아이돌 그룹이 멤버 변동 없이 진행한 첫 사례다.

-’7년 차 징크스’를 벗어났습니다.

“재계약은 아티스트와 회사의 신뢰 문제예요. 오랜 시간 아티스트와 회사가 정서적인 관계를 형성했기에 가능했습니다. 멤버들이 ‘팀 퍼스트’, 인화(人和)라 가능했지요. 평소 좀 치고받긴 해도(웃음), 같이 가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각자 하고 싶은 음악이 다를 텐데요.

“‘세븐틴’은 만장일치 문화가 있습니다. 13명의 이견 조율이 안 되면, 아무리 급해도 일을 진행하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싸우기도 하고, 몇 개월씩 걸리기도 하지만, 저는 기다립니다. 총괄 리더인 에스쿱스가 잘 이끌어줘요. 세븐틴은 곡을 직접 만드는 ‘싱어송라이터 그룹’입니다. 앨범 기획 단계부터 오랫동안 멤버와 멤버, 멤버와 회사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맞춰가지요.”

-’자체 제작돌’은 많지 않은데.

“연습생 시절, 우지가 맥북으로 작곡을 했다며 갖고 왔습니다. 점으로 톱라인(멜로디)만 찍은 형태였어요. 맥북도 멤버 원우 아버지가 사준 거였는데, 곡이 괜찮았습니다. 그때부터 작업물을 갖고 오면 피드백을 주는 형태로 훈련을 했습니다. 본인들 음악을 하니, 더 열심히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방송가에서 ‘세븐틴’은 특이한 그룹이다. 멤버들이 직접 PD를 찾아가 “예능에 출연하고 싶다”고 부탁한다. 이렇게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 출연했고, 다음 달 5일부터는 나영석 PD와 촬영한 ‘나나투어’도 방영된다.

-아이돌이 발로 뛰어 섭외라니, 다른 회사들이 부러워할 것 같습니다.

“뭐든지 ‘적극적으로 하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어요. ‘열정’과 ‘도전 정신’도 있고요. 세븐틴은 스케줄이 끝나면 연습실에 모여 연습하고, 피드백을 주고받고 퇴근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힘든 기색이 없었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선물 같은 팀이다. 이들로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건 내 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돌 업계의 과도한 스케줄과 다이어트는 비판의 대상입니다만.

“억지로 시켜서 했다면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9년 차에 이 정도 명성을 가진 아티스트면 시킨다고 하지도 않습니다. 능력 있는 멤버들을 뽑았고, 하고자 하는 이들이 남았어요. 분위기에 적응 못 했던 연습생들은 자연스럽게 나갔습니다. 다이어트는 시키지 않았고, 본인들이 화면을 모니터링하며 열심히 운동합니다. 전 오히려 ‘먹고 싶은 거라도 실컷 먹어라’였습니다. 13명을 연습생 때부터, 먹이고 재우려면 정말 많은 돈이 듭니다. 처음에는 1인분에 2500원 하는 삼겹살집을 데려갔습니다. 고기가 익기도 전에 먹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서 고기 뷔페집을 데리고 갔습니다. 지금 그 집은 폐점했습니다(웃음).”

세븐틴은 구성이 독특하다. 그룹 안에 4~5명씩 힙합팀·보컬팀·퍼포먼스팀으로 나뉘어 있다. 팀마다 리더, 그 위에 총괄 리더를 두는 시스템이다.

-기업 경영 방식과 비슷한데요.

“멤버들이 스스로 책임감을 갖길 원했습니다. 서로에게 선생님이 되는 방식을. 대신 저는 말을 아낍니다. 대표의 말은 그냥 하는 말이라도 잔소리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고 싶어도 참지요. 하하.”

-멤버를 뽑을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시하나요?

“품성. 멤버끼리 잘 어울릴 수 있는지, 한 명이 특출하기보다 좋은 팀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대화해보고, 행동도 관찰하고, 스태프들에게 물어봅니다. 기본적으로 연습생 생활은 고되고 스태프들과 끊임없이 부딪힙니다. 그 속에서 ‘참 괜찮다’는 멤버들을 모아요.”

◇첫 정산금을 기부하는 품성

지난달 14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청년포럼. 그룹 ‘세븐틴’이 K팝 가수 최초로 무대에 올랐다. 세계에서 온 청년 1220명 앞에서 멤버 민규가 말했다.

“세븐틴은 데뷔 다음 해 첫 정산을 받았습니다. 멤버 중 한 명이 ‘적은 금액이라도 좋은 일에 쓰면 어떨까?’ 제안했어요. 저희는 멤버들의 이름을 딴 염소를 탄자니아 아이들에게 기부했습니다. 염소는 그들의 생계를 유지해주는 소득원입니다.”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세븐틴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첫 정산금으로 기부라니, 진짜 스스로 했나요?

“전 기부하고 나서 알았습니다. 탄자니아 아이들이 염소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더라고요. 첫 정산금은 정말 적었습니다. (3000만원보다?) 훨씬 적었지요. 13명이니깐, 나눠야 하잖아요.”

-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을까요?

“청소년기에는 좋은 집단에 있으면, 분위기에 물든다고 하잖아요. 지금도 데뷔일이면 아동 기관에 기부하고 있고요. 지난 11일에는 에스쿱스가 유기 동물 보호소에 5000만원을 기부했습니다. 2022년부터는 유네스코와 ‘고잉투게더’라고 아프리카 말라위 아이들을 위한 배움터를 만드는 등 교육 환경을 조성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어요. 그 인연으로 이번에 유네스코 연설도 하게 됐습니다.”

◇서른 살에 매니저로 다시 시작하다

한성수는 원래 무용수였다. 어릴 때부터 음악과 예술에 재능이 있었고, 중앙대 무용과를 졸업했다. 국립무용단에 입단했고, 20대 대부분을 해외 공연으로 보냈다.

-앞날이 탄탄한 ‘엘리트 무용수’였습니다.

2003년 일본에서 방영된 가수 보아의 다큐멘터리 속 한성수 매니저. /인터넷 캡쳐

“그렇게 보였을 수 있지만, 언젠가부터 무용이 천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수예술을 했기 때문에 대중예술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당시 H.O.T 가 데뷔하고, 시장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SM엔터테인먼트 등에 매니저 입사지원서를 냈습니다.”

-그때가 몇 살이었나요?

“서른 살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매니저는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에요. 밥도 거의 못 먹고 잠도 거의 못 잡니다. 그래도 너무 하고 싶어서 SM을 두 달 동안 30번 이상 찾아갔습니다.

-거절당할 때 기분은요?

“쉽지 않았습니다. 사옥 앞에 차를 대놓고, 수없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비서실 전화번호를 알게 됐습니다. 살짝 거짓말을 해 이수만 선생님과의 약속을 잡았습니다. ‘오후 1시 15분까지 사무실로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 순간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회의실에서 선생님이 김영민 사장과 회의 중이었어요. 모르는 사람이 들어오니깐 ‘누구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이 일이 너무 하고 싶어 왔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쪽 일 잘 알아요? 인터넷은 잘해요?’라고 물었습니다. 전 솔직하게 ‘잘 모릅니다. 그래도 진짜 이 일을 배워보고 싶습니다. 월급 안 주셔도 되니깐, 다니게만 해주십시오’라고 답했습니다. 용기가 가상했는지 ‘좋아요. 해봅시다’ 해서 시작했어요.”

-진짜 월급을 안 받았나요?

“첫 월급 65만원 받았습니다.”

-국립무용단과 비교하면?

“첫 월급이 200만원인가 그랬습니다. 별정직 공무원이라 공무원 대우를 받고, 연금도 나옵니다. 현실적인 생각을 했다면, 불가능한 이직이었습니다.”

-첫 업무는 뭐였나요.

“그룹 ‘플라이 투 더 스카이’ 뮤직비디오 찍는데 옆에서 모니터링용으로 6mm 카메라를 들고 촬영했습니다. 2박 3일 동안 몇 시간씩 서 있었지요. 그땐 선배들이 앉지도 못하게 했습니다(웃음). 몇 개월 묵묵히 일했더니, 보아 매니저를 맡게 됐지요.”

-보아 매니저 일은 어땠습니까.

“연습생 때부터 함께했는데 정말 재능이 남다른 가수였습니다. 보아 빠르게 성장하는 걸 보면서, 저도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

-보통은 가수가 제작자나 스태프 덕분에 성장했다고 하지 않나요?

“전 아티스트 덕분에 성장했습니다.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달라요. 보아가 일본 활동을 한 덕분에 일본 시장도 빨리 접했습니다. 이쪽 업계에서 ‘내가 우수한 능력을 갖고 있기에, 누구를 끌어줄 수 있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2018년 플레디스 일본 지사를 만들었는데요.

“당시 한국에서 아이돌 그룹이 데뷔하면 일본 레코드 회사들이 계약하자고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계약하면, 저희 조건이 좋을 수 없어요. 국내 기반을 다질 때까지 3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플레디스 재팬’을 만들었지요. 지사장 겸 지사원으로 1명뿐인 회사였지만(웃음). 한국에서 제작해 유통만 일본에서 하는 형태였어요. ‘어차피 작은 회사, 우리끼리 어때? 음악이 좋으면 사랑해주겠지’라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기회를 놓칠 수도 있지 않나요.

“당시 일본 진출을 서두르다가 힘들어진 가수가 많았습니다. 해외 시장이란 모호해요. ‘가기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요청이 와도 누르다가, 장고 끝에 ‘이젠 됐다’ 싶을 때 나갔습니다.”

◇하이브 합병 시너지, ‘군백기’는 없다

SM에서 경력을 쌓은 한성수 창업자는 2010년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연습생은 손담비와 ‘애프터스쿨’의 가희 둘뿐이었다.

-손담비가 2집 ‘미쳤어’부터 히트했는데요.

“’미쳤어’의 의자춤은 술 마시다 떠오른 안무입니다. 처음에 담비씨한테 안무를 알려줬더니, ‘어떻게 그 춤이 가능하느냐’고 묻더라고요. 직접 의자를 갖고 시범을 보여줬지요(웃음).”

손담비의 의자춤 /조선일보 DB

손담비, ‘애프터스쿨’에 이어 ‘뉴이스트’, ‘세븐틴’까지 성공시키며 탄탄대로를 걷던 플레디스는 2020년 당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와 합병을 선언한다. 연예계 ‘빅딜’. 하이브가 지금의 제국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일본 진출을 미룰 정도로 독립성을 강조했는데, 하이브와 합병했습니다.

“2019년 하이브와 먼저 합병한 쏘스뮤직 소성진 대표가 SM에서 보아 매니저할 때 제 후배였습니다. 소 대표는 SM에서 JYP로 이직하면서 방시혁 의장과도 친했는데요. 어느 날 소 대표가 ‘방 의장이 저를 보고 싶어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만났는데, 되게 매력 있었어요. 사명감도 있고, 꿈도 크고, 호기로웠습니다. ‘진짜 음악’을 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때 방 의장이 ‘같이 합시다’ 했습니다. 당시 빅히트 외에도 많은 인수 제안이 있었지만, 우리 아티스트들을 글로벌로 성장시켜줄 수 있는 회사라고 생각해 받아들였습니다.”

일본 후쿠오카돔에서 열린 세븐틴 콘서트 현장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인수 합병은 성공적이라고 보나요?

“시너지가 잘 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립 운영을 유지하면서, 플랫폼 협력이 잘 됩니다. K팝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산업을 이끄는 ‘리더 컴퍼니’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획사’를 넘어서 ‘콘텐츠 회사’가 필요한 시기랄까요. 플레디스 경영에 가장 큰 분기점이 된 순간도, 세븐틴이 가장 큰 성장세를 이룬 것도 올해입니다. 하이브의 인프라로 많은 사업적 결과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최근 방시혁 의장은 ‘K팝 위기론’을 던졌는데요.

“10년 전 누구도, K팝이 이렇게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차트 1위를 하고, 세븐틴이 한 해에 앨범을 1600만장을 팔고, 세계 투어를 하고. 성장과 위기는 늘 함께 옵니다. 경각심을 위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건 건강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아티스트, 스태프들은 진짜 열심히 합니다. 제가 쉬라고 할 정도입니다. 이들이 K팝 시장을 이끈다면 계속 성장하지 않을까요?”

-방탄소년단처럼 멤버들의 군 입대도 곧 시작될 텐데요.

“세븐틴은 일부 멤버들이 군에 입대하더라도 활동을 끊임없이 이어나갈 것입니다. ‘군백기’가 없는 팀입니다. 다인원의 장점이기도 하고요.”

신인 그룹 '투어스' 무빙 포스터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요.

“세븐틴 이후 9년 만에 신인 그룹이 나옵니다. 내년 1월 데뷔 예정이고, 팀명은 ‘TWS(투어스·TWENTY FOUR SEVEN WITH US)’. 모든 순간을 함께하고 싶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세븐틴 후배 그룹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부끄럽지 않은 팀이 돼야 했으니까요. 잠재력 있는 아티스트들이 모일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실력·비주얼·성격 등에서 기대감을 충족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획사 대표란 어떤 자리인가요.

“욕먹는 자리입니다(웃음). 리스크가 큰 사업이고요. 어떠한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내색하지 않는 게 필요합니다. 아티스트는 각자가 가진 개성과 영혼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가진 본연의 것을 끌어낼 수 있도록 가장 어울리는 길을 찾아주는 것이 제 일이라 생각해요. 유행은 시시각각 변하고, 음악 산업은 경쟁이 늘 치열하지만, 대체 불가능한 아티스트들은 언제나 사랑받습니다.”

‘플레디스’란 아티스트들이 모여 밤하늘의 은하를 만든다는 뜻이다. 한성수 창업자는 “그렇게 ‘오래, 함께, 높이’ 가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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