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가 좋아하는 것들을 알려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더현대 서울’ 지하를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제품들이 ‘팝업스토어’로 열리고, 이를 구입하기 위해 백화점 오픈 전부터 줄을 서 있기 때문입니다.
공식적으로 더현대 서울은 팝업 매출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품목도 명품부터 주류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담당 팀들도 다릅니다. 그러나 최근 MZ세대 고객들을 대상으로 팝업스토어를 진행하는 유스팀에서 지난해 매출 순위를 공개했습니다. 1위는 어디일까요?
1위 ⌊ 제로베이스원 ⌊ 13억5000만원
2위 ⌊ 빵빵이 ⌊ 12억8000만원
3위 ⌊ 슬램덩크 ⌊ 9억8000만원
1위는 ‘제로베이스원’ 굿즈들을 살 수 있는 팝업스토어입니다. 13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일명, ‘제베원’으로 불리는 이들은 지난해 7월 ‘유스 인 더 셰이드’로 데뷔한 9인조 보이그룹입니다.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보이즈 플래닛’을 통해 선발됐습니다. 나이대는 17~26세. 가장 어린 멤버가 2007년생입니다. SM엔터테인먼트의 ‘라이즈’, KOZ의 ‘보이넥스트도어’, 플레디스의 ‘투어스’ 등과 함께 5세대 보이그룹으로 분류됩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이미 팬덤을 형성해서 인지 이들의 데뷔 앨범은 발매 하루 만에 약 124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단숨에 ‘밀리언셀러’에 올랐습니다. 데뷔 앨범으로 밀리언셀러 반열에 오른 건 역대 K팝 그룹 중 최초입니다. 지난해 11월 6일 발매된 미니 2집 ‘멜팅 포인트’ 역시 발매 하루 만에 약 145만 장을 돌파한 데 이어 첫 주 동안 총 213만 1352장이 팔렸습니다. 2개 앨범 연속 단 하루 만에 밀리언셀러에 직행하고, 더블 밀리언셀러에 올린 것 역시 K팝 그룹 중 최초입니다. 그래서인지 데뷔 6개월 만에 ‘2023 마마 어워즈’, ‘멜론뮤직어워드’ 등에서 신인상을 휩쓸고 있습니다.
2위는 빵빵이입니다. 빵빵이는 웹툰 스튜디오 박태준 만화회사와 작가 이주용이 운영하는 애니메이션 유튜브 전문 채널 ‘빵빵이의 일상’ 속 캐릭터입니다. 현재 구독자는 199만명입니다.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에 직설적인 말투. 실소를 유발하는 전개, 잘 만들어진 B급 병맛 유머에 10~20대가 열광합니다. ‘빵빵아! 옥지얌’ 등의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빵빵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이유를 분석하는 자체가 기성세대의 특징이라고 하더라고요.
국내 토종 웹툰 ‘빵빵이의 일상’은 올해 애니메이션 명가 일본 만화 시장에 진출합니다. 더그림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일본 지적재산(IP) 회사 소니 크리에이티브 프로덕츠와 마스터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고 하는데요. 소니 크리에이티브 프로덕츠는 굿즈 제작, 팝업스토어 오픈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일본 팬들에게 빵빵이를 소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3위는 ‘슬램덩크’입니다. 지난 1월 국내 개봉한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인기가 팝업스토어로 이어졌습니다. 영하 7도의 날씨에도 사람들은 캠핑 의자와 담요, 보조배터리를 챙겨들고 오픈런을 했다고 하는데요.
슬램덩크가 처음 연재된 것은 1990년입니다. 아직 국내는 일본 대중문화가 공식 개방되기 전이라 일본식 이름을 쓰면 안 돼 ‘강백호’, ‘서태웅’ 등으로 바꿔 들어왔습니다. 당시 슬램덩크의 추억을 가진 이들이 영화관으로 몰려와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누적 관객수는 480만명에 달했습니다. 1위를 차지한 제로베이스원 멤버들과 팬들의 부모님 세대가 아닐까 싶은데요.
◊더현대는 어떻게 힙해졌나
2021년 2월 ‘더현대서울’이 문을 열 때 의심의 눈초리가 많았습니다. 백화점은 주말 매출이 중요한데, 여의도는 대표적인 오피스 상권으로 주말이면 유동 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개점 2년 9개월 만에 연 매출 1조 원 달성에 성공한 비밀 병기는 지하 패션관과 팝업이 MZ세대를 끌어들였기 때문입니다.
MZ세대, 그리고 그들이 선호하는 브랜드 입장에서 백화점은 낡은 이미지입니다. 더 이상 그들에게는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것도, 백화점에 입점하는 것도, 부의 상징 혹은 가문의 영광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미지가 ‘올드’해보일까봐 입점 제안을 거절하는 브랜드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더현대는 ‘힙’(hip)한 문화를 찾는 MZ세대들의 발길을 백화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직접 뛰었습니다. ‘발’이 아닌 ‘손’과 ‘눈’을 사용했습니다. 패션 커뮤니티나 패션 온라인 플랫폼의 판매 랭킹을 살피며 MZ세대가 관심 갖는 브랜드를 조사했습니다. 특히 인스타그램의 팔로우 수가 최소 10만 이상이거나 팔로우 수 대비 ‘좋아요’ 수와 댓글이 많은 곳을 눈여겨봤다고 합니다. 영입 대상 브랜드는 다이렉트 메시지(DM)나 연락처를 수소문해 섭외했습니다. 더현대에서 팝업스토어를 연 한 연예기획사는 “백화점 중 더현대서울이 가장 먼저 연락와 제안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결과 개점 후 1년 6개월 동안 3508개 브랜드에서 500회 넘게 팝업스토어를 열어 10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습니다. 젊은 층이 가장 선호하는 백화점도 ‘더현대’입니다. 그 많은 팝업스토어 중 가장 높은 매출이 갓 데뷔한 보이그룹 ‘제로베이스원’이라는 점도 신선합니다.
그래서인지 더현대는 이 기세를 이어 “팝업스토어를 아이돌 컴백 창구로도 활용하고 싶다”고 합니다. 더현대 측은 “운영해보니 아이돌 가수가 등장하는 팝업스토어의 매출이 대체로 높은 편”이라며 “아이돌 가수가 컴백할 때 진행하는 쇼케이스나 앨범 홍보를 팝업스토어에서 진행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올해는 ‘미스터트롯’ 팝업스토어도 개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더현대에서 먼저 굿즈 팝업 제안을 했다고 하는데요. 온라인 쇼핑 시대, 그들이 백화점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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