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생폼사’란 노래는 들어봤어도 ‘용생용사’라고? 그렇다. 용 때문에 살고, 용 때문에 죽는 용생용사의 해 되시겠다. 부산 광안리 새해맞이 ‘용 드론 쇼’가 통신 장애에 따른 일정 변경으로 한바탕 소동을 치른 것을 시작으로, 전국 지자체·기관마다 용 여행지와 용 관련 마을 알리기 경주를 펼치고 있다.
올해 특히 띠 여행지가 화제가 되는 이유에 대해 민속학자들은 “용이 십이지 중 유일하게 상상의 동물이자 상서로운 기운을 갖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풍수 전문가들 역시 “청룡 기운의 여행지를 찾아다니면 운수 대통할 것이라는 기대 심리의 반영”이라는 설명이다.
갑진년 뜨는 혹은 띄우는 용 여행지를 들여다봤다. 올 연말까지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이른바 ‘전국 용 여행지 자랑’ 완결편. 가는 곳마다 재미있는 용의 전설은 덤이다. 믿거나 말거나.
◇'해룡’ ‘호국룡’ 전설의 바다 삼척
삼척시가 새해 여행지로 추천한 곳은 ‘수로부인헌화공원’ ‘초곡용굴촛대바위길’ ‘용문바위’ ‘해가사의 터’ 등. 한 도시에서 최소 4개의 ‘용 코스 투어’가 완성된다. 수로부인헌화공원은 임원항 인근 ‘남화산 해맞이 공원’을 말한다. 삼국유사 ‘수로부인조’ 속 강릉 태수 순정공의 아내 수로 부인 설화를 테마로 했다. 수로 부인은 고전시가 ‘헌화가’와 ‘해가사’ 속 주인공. 해발 135m 남화산 정상부에 떡하니, 어찌 보면 조금 생뚱맞게 용에 올라탄 수로 부인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남화산은 ‘헌화가’의 배경으로 추측되는 곳. 두 시가의 배경 설화를 들어보면 달리 보인다.
절세가인 수로 부인이 해룡(海龍)에게 납치당했다가 노인을 비롯한 백성이 노래를 부르니 바다에서 해룡을 타고 다시 떠올랐다는 ‘해가사’ 속 설화의 한 장면을 재현해 놓았다. 천연 석재를 깎아 만든 높이 10.6m, 무게 500t인 조형물은 2014년에 세워진 것인데 청룡의 해를 맞아 주목받고 있다. 조형물을 시작으로 일대는 설화 속 등장인물 조각상이나 십이지 조형물 등으로 꾸며 놓았다. 맑은 날이면 울릉도까지 보인다는 전망대를 두루 돌아 하산하는 길, 소박한 어촌 정취를 간직한 임원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용 조형물보단 전망이 한 수 위다. 매표(성인 3000원) 후 엘리베이터를 타면 50여 m 지점까지 접근이 가능하다. 이후 나무 계단 산책로를 따라 20여 분 걸어 올라가면 공원에 닿기에 남녀노소 부담 없이 찾는다.
‘해가사’ 설화로 이어지는 곳은 증산해변가 ‘해가사의 터’다. 문헌상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삼척해수욕장의 와우산 끝쯤으로 추정해 해변에 임해정 등을 재현해 놓았다. 지나치기 쉬운 위치다. 여의주인 ‘드래곤볼’이 볼거리. 높이 1.67m, 지름 1.3m, 무게 4t의 커다란 구 형태의 조각은 자연석에 회화를 그려 넣은 작품인데, 누구나 직접 돌려볼 수 있도록 설치했다. 조각상 아래엔 ‘작품을 돌려 용을 탄 수로 부인 그림이 나오면 소원 성취할 수 있고, 헌화가 그림이 나오면 연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해가사 그림이 나오면 마음속에 깊이 간직했던 사랑이나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을 수 있다’고 쓰여 있다. 안 돌려보면 괜히 손해 보는 기분이다.
해가사의 터는 애국가에 등장하는 동해 ‘추암촛대바위’의 또 다른 전망대다. 삼척엔 같은 이름의 촛대바위가 있다. 해가사의 터와 수로부인헌화공원 사이에 있는 ‘초곡용굴촛대바위길’은 512m의 해안탐방로. 한 늙은 어부가 바다에 떠다니는 죽은 구렁이를 지금의 용굴 자리에 묻어주고 제사를 지내줬더니 용으로 변신해 승천했고, 어부는 이후 큰 부자가 됐다는 전설의 ‘초곡용굴’이 있는 곳이다. 촛대바위, 출렁다리(56m) 등이 해안탐방로 걷는 재미를 더한다. 다만 용굴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전망대 탐방로가 일부 구간 낙석의 위험이 있어 당분간 먼발치에서 감상해야 한다.
다음 코스는 ‘용문바위’다. 지난 연말 밀양의 ‘영남루’와 함께 국보로 승격한 ‘죽서루’ 옆 용문바위는 호국룡(護國龍) 신라 문무왕 이야기가 전해진다. 유언처럼 죽어서 용이 돼 동해바다를 지키던 문무왕이 삼척의 오십천을 통해 지금의 죽서루 부근에서 노닐다가 다시 오십천으로 빠져나가다 커다란 바위에 가로 막혀 큰 구멍(용문)을 냈다는 흔적이 용문바위라는 ‘설’이다. 실제로 커다란 바위 가운데 용의 몸통만 한 구멍이 나 있다. 전설에 더해 ‘죽서루 선사 암각화’까지 있어 용문바위는 아름다움과 장수, 다복의 기원처로 소문났다. 유명세인지 용문바위 구멍 안쪽은 닳고 닳아 다듬은 듯 반들반들하다.
◇‘용 여행 코스’ 7번 국도
이를 시작으로 호국룡 문무왕 전설은 7번 국도 따라 경주와 울산까지 이어진다. 경주의 ‘대왕암’은 문무대왕의 수중릉인 ‘문무대왕릉’, 울산 ‘대왕암’은 문무왕비인 자의왕후의 수중릉이라 전해진다. 경주 봉길리 해변에서 200m 떨어진 문무대왕릉은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이 몸소 용이 돼 침입해 들어오는 왜구를 막겠다며 동해에 묻어 달라고 한 유언에 따라 장례를 치른 곳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터와 탑만 남은 ‘감은사지’, 용을 보았다는 ‘이견대’까지 호국룡 문무왕의 서사가 유적과 함께 밀도 있게 펼쳐진다.
울산의 대왕암은 ‘대왕암공원’으로 조성해 놓았다. 1906년 설치된 울기항로표지소인 ‘울기등대’가 있어 울기공원으로 불렸던 곳. 문무왕의 비 자의왕후 역시 문무왕을 따라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겠다 해 바위섬 아래 묻혔다고 전해진다. 대왕암공원 4개의 둘레길 중 전설바위길이 이야기와 연관된다. 출렁다리, 용굴, 할미바위, 탕건암, 용추수로, 대왕교를 거쳐 대왕암에 이르는 코스다.
황룡연이라 불리는 울산 태화강 ‘용금소’나 ‘무룡산’도 용의 해 주목받는 여행지들이니 간 김에 들러볼 만하다. 특히 용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태화강 용금소 인근엔 용금소와 태화강 국가정원을 내려다볼 수 있는 스카이워크 건립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 울산광역시 측에 따르면 “올 봄에 착공해 연말에 완공 예정”이라고 했다. 7번 국도 따라 포항엔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했다는 ‘구룡포’ 바다, ‘구룡소’ 등이, 부산에 이르면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한 ‘용 여행지’ 중 한 곳인 ‘해동용궁사’가 기다린다.
◇용 마을 여행은 전남?
7번 국도 ‘용 여행’은 시작에 불과할 뿐. 용 관련 지명은 전국 1261개(국토지리정보원 자료 ‘우리 국토 곳곳에 담겨 있는 십이지 동물 띠 지명 이야기’)에 이른다. 각 지자체나 기관에선 새해 용 관련 지명이나 명소 알리기가 한창이다. 한국관광공사 새해 ‘용(龍)기뿜뿜 새해 여행지’ 5선에 이어 서울관광재단 추천 ‘용의 기운을 받을 수 있는 서울 명소 5선’엔 일출·일몰 명소인 ‘용마산’ ‘용왕산’ ‘용양봉저정’과 함께 나들이 명소로 용산의 ‘용리단길’, 관악구 ‘샤로수길’까지 올랐다. 하지만 정작 용 관련 지명 왕좌는 따로 있다.
전남도는 “전국 1261개 용 관련 지명 중 전남에만 310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알렸다. 용 머리를 닮았다는 순천 주암면 용두마을, 용이 승천하는 모습이라는 담양 등용동, 광양 용머리공원 등이 대표적이다. 전북과 광주까지 포함하면 전라권에만 용 관련 지명이 556개에 이른다. 올해 ‘반값 강진 관광의 해’를 선포한 강진군은 군수가 군내 용 지명 마을 15곳 중 하나인 대구면 청용마을을 찾아 강진 알리기에 나서기도 했다.
◇태안 바다에 숨은 ‘잠룡’
평소 주변 경관과 부조화를 이루는 듯한 인위적인 용 조형물도 용의 해엔 포토존이 된다. 전남 고흥 미르마루길의 용 조형물이나 전북 김제 벽골제의 ‘쌍용’ 조형물, 충남 예산 예당저수지 부근의 ‘용들의 승천’ 조형물은 청룡의 해 사진 명소로 등극했다. ‘용바위하늘길’의 우리말 지명인 미르마루길은 고흥 우주 발사 전망대와 연결된 4km의 해안탐방로다. 승천한 용바위와 사자바위 전설을 간직한 해안절벽 위에 땅을 뚫고 나온 듯 용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예당호 출렁다리를 배경으로 세워진 용들의 승천 조형물은 야간 촬영 명소. 관광 안내소 측은 “새해 들어 사진 찍으려고 야간에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며 “겨울철 조명 점등은 일몰부터 밤 10시까지”라고 했다.
숨어 있던 ‘잠룡’ 여행지들도 등판 릴레이를 이어간다. 충남 홍성은 청룡산과 용봉산을 간판스타로 내세웠다. 청룡산은 갈산면 와룡천에서 용담을 볼 때 결성면 무량리와 서부면 판교리에 걸쳐 있는 산의 형세가 마치 용이 경치를 구경하듯 구불구불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용운 선생 생가지와 천년 고찰 ‘고산사’ 등이 있는 산이다.
충남 태안군 솔향기길 1코스에 있는 ‘용난굴’은 용의 전설을 입고 ‘동굴 샷(동굴을 배경으로 찍는 사진)’으로 차츰 알려지고 있는 곳. 물때까지 맞춰 찾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안내판에는 동굴 벽의 용의 핏물 흔적, 용의 꼬리와 발 모양 바위 등에 대한 ‘미스터리한’ 설명이 이를 뒷받침하는 증명 사진(?)과 함께 꽤 그럴싸하게 펼쳐진다.
‘용 지명 마케팅’이 전국 단위로 펼쳐지는 것에 대해 김미영(61)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은 “용은 현존하지 않는 동물이기에 상상이 더해지면서 우리 민족 정서에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미쳐왔다”며 “본 적 없기에 경외심을 갖게 되고 일부 신앙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용은 치수와 관련이 깊은 동물로서 농경 사회부터 물이 있는 곳, 물이 필요한 곳 어디서든 수호신 역할을 한다고 믿으며 다양한 전설로 존재해왔다. 스토리텔링이 잘된 곳이 결국 오늘날 유명 관광지와 겹친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청룡은 선한 영향력과 긍정의 기운을 가진 용이라니 “용 관련 여행지를 여행하다 보면 우리 민족의 삶과 정서, 내력을 이해하는 데 도움 될 것”이라는 얘기다.
[누가 누가 용 닮았나? 전국 용 명소 비교해보니...]
대한민국 구석구석 용 닮은꼴 찾기
우리 국토 곳곳에 ‘용’ 관련 명소가 많다고 하니 이참에 ‘대한민국 구석구석 용 닮은꼴 찾기 대회’라도 해보는 건 어떨까. 삼인성호(三人成虎), 아니 삼인성룡(三人成龍)이라고 여기저기서 용이라고 내세우는 통에 용인 것 같기도 용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니 말이다. 일단 찾아가 ‘숨은 용 찾기’를 해봐도 재미있겠다.
용 머리 형상으로 인정받은 곳은 제주시 용담동 해안에 있는 용두암(龍頭巖). 이름도 용머리 바위다. 제주공항과 가깝고 무료 탐방이라서 누구나 제주 여행 코스에 넣을 만하다. 높이가 10m 정도 되는 용의 머리 형상 바위가 해안가로 삐죽 나와 있다. “말 머리 같기도 하다”는 소수 의견도 나온다. 용두암은 승천하지 못한 용 전설을 품고 있다. 이 전설과 관련해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용연’도 볼거리다. 오름의 형상이 누워 있는 용을 닮았다는 종달리 ‘용눈이오름’, 산방산 아래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용을 닮았다는 안덕면 ‘용머리 해안’도 이어 가 볼 만하다. 다만, 두 곳 모두 용두암과 달리 육안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규모다.
한국관광공사 ‘용(龍)기뿜뿜 여행지’ 5선에 이름 올린 경북 예천군 ‘회룡포’는 물줄기가 용의 형상을 닮은 ‘물돌이 마을’이다. 용궁면 향석리 전망대에 오르면 이 감입곡류 지형의 물줄기를 내려다볼 수 있다. 회룡포(回龍浦)는 이름 그대로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용이 비상하듯 물을 휘감아 돌아간다 해서 붙여진 이름. 장안사에서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전망대와 만난다.
용 닮은 나무는 어떨까. 경기도 이천 백사면 천연기념물 ‘도립리 반룡송’은 하늘을 오르기 전 땅에 서린 용을 닮아 반룡송이라 불린다. 논밭 가운데 덩그러니 보호수인 커다란 소나무가 가지를 펼치고 서 있다. 고개를 갸우뚱하다 안내판을 보고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표피가 용비늘을 닮은 붉은색이며, 사방으로 뻗은 가지가 움직이는 듯한 용틀임 형태’라고 적혀 있다. 나무 아래로 가까이 가서 가지를 보시라.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