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거주민 A씨는 5개월 전부터 계단에서 걷기 운동을 해 왔다. 아파트 1층부터 12층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갔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길 다섯 번 반복하는 방식이었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그러다 문제가 생겼다. “오늘 운동 중 아파트에 거주하는 다른 분과 같이 엘리베이터에 탔어요. 그분이 ‘매일 운동을 하냐’고 물으시길래 ‘네’ 대답하고 다시 이어폰을 끼려는데 ‘본인 운동을 위해서 계단 오를 때마다 센서등이 켜지고 내려올 때는 엘리베이터 사용으로 전기료가 발생하는 게 옳은 행동은 아닌 거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이 이웃은 관리사무소에 항의성 민원도 넣었다고 한다.

이 경험담이 지난달 공유되자 온라인 커뮤니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계단 운동이 생활 패턴에 맞기도 하고 운동하고 싶을 때 바로 할 수 있어서 계속할 생각인데 제가 전기료를 더 내야 하나요?” 여러 의견이 쏟아졌다. “전혀 눈치 볼 필요 없다.” “저녁 늦게 계단오르는 건 시끄러울 수 있으니 그 이유라면 몰라도 전기료 더 내라는 건 억지다.” “남이 반복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거 솔직히 좀 무서움.” “우리 아파트는 그래서 운동하지 말라고 권고하더라.” 아파트 거주 비율 53.6%. ‘아파트 공화국’이 쏘아올린 새로운 화두였다.

◇아파트 계단 운동, 민폐인가요?

일러스트=김영석

새해 다짐, 올해는 꼭 군살을 빼자며 분기탱천하던 의욕은 72시간을 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움직이기에 겨울은 너무 춥기 때문이다. 작심삼일을 피하려면, 별다른 준비 절차 없이 즉시 가능해야 한다. 엄동설한에도 현관문만 열면 시작할 수 있는 운동, ‘계단 오르기’가 연초마다 각광받는 이유다. 돈도 들지 않는다. 그러나 세태가 각박해지면서 조심스러워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경기 의정부에서는 아파트 계단 운동을 하던 30대 남성이 이웃 주민의 도어록 비밀번호를 훔쳐본 뒤 무단 주거 침입하다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마다 의견을 구하는 게시글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헬스장은 가기 싫고 날씨는 춥고 그래서 시작한 게 계단 오르기인데요… 딱 한 집에서 강아지가 짖을 때가 있네요… 내가 사는 아파트인데 개 때문에 계단 운동도 못하나 싶어 짜증도 나고… 잠깐 몇 초 짖는 거지만 계속하면 민폐려나요?”

정답이 없는 질문. 운동 방식이 가지각색이기 때문이다. “계단으로 2층 올라가서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오고, 다시 3층까지 올라갔다가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오고… 12층까지 이렇게 순차적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는 역순으로 반복하는 운동을 3년째 하고 있습니다… 근데 결국 시비 걸려서 싸웠습니다. 왜 계속 엘리베이터 쓰냐고요.” 음악을 들으며 운동하는 경우도 있고, 구축(舊築) 계단식 아파트의 경우 발소리가 층간소음을 유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앞산 오르듯 비(非)입주자가 근처 아파트에 들어가 계단 운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한 부동산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남의 아파트에서 계단 운동, 민폐다? 아니다?’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뭐 이런 걸로 예민해 vs. 남의 주거 공간에서 민폐, 어찌 보시나요?”

◇계단 운동만을 위한 아파트

경기도 오산의 한 아파트 단지에 건축된 계단 운동 전용 건물(위 사진 가운데 파란색·헬시스퀘어)과 내부 모습. /유튜브

그래서 이 아파트는 특별하다. 경기도 오산의 대단지 ‘서동탄역 더샵 파크시티’에는 계단 운동만을 위한 별도의 건물이 있다. 2019년 입주 당시부터 화제였다. 113동 옆에 통유리로 지어진 17층 높이 건물, 이름하여 ‘헬시스퀘어’다. 이 건물에는 오직 계단과 엘리베이터만 있다. 널찍한 통유리 창문으로는 바깥이 훤히 내려다 보이고, 벽면 한쪽을 편백나무로 마감해 자연 친화적 환경을 조성해뒀다. 다 올라가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식이다. 아파트 비상계단과 달리 ‘운동용’이기에 계단도 널찍하다. 이 아이디어를 낸 시행사 유니온개발 장주연 부장은 “계단 운동이 좋다는 건 다들 알지만 층간소음 등의 여러 민원 사항을 고려해 따로 떨어진 건물을 고안했다”며 “입주자들의 건강도 챙기고 트렌드에도 걸맞는 신개념 공간”이라고 말했다.

각 지자체에도 아파트 계단 오르기를 장려하는 ‘건강 아파트’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김해시·창녕군·의령군 등이 지정에 앞장섰다. 정읍시는 120가구 이상 아파트를 대상으로 ‘건강 계단’을 조성하고 있다. 2019년부터 현재까지 10곳, 올해도 아파트 두 군데가 지정됐다. 층계마다 소모 ㎉ 및 응원 문구 등을 부착하는 식의 인테리어를 제공하는 것이다. 정읍시 관계자는 “돈 안드는 운동 방법으로서 올바른 걷기 자세 등을 알려주는 활동도 병행한다”면서 “계단을 오르고 싶은 의욕도 생기고 오래된 아파트에 신선한 느낌도 생겼다는 주민들의 평가가 있다”고 말했다.

◇두 얼굴을 한 ‘천국의 계단’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최고의 효율을 얻어갈 수 있는 건강 운동법, 아파트 계단 오르기. 잘만 활용하면 '천국의 계단'이지만, 무턱대고 오르내렸다가는 더 일찍 승천해야할 수도 있다. /freepik

미국 툴레인대 공중보건열대의학대학원 연구진은 성인 45만8860명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매일 50계단(약 5층) 이상 오르면 심혈관 질환 발병률이 최대 20%까지 낮아진다는 결과를 지난해 10월 발표했다. “짧은 시간 폭발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기에 심혈관 건강을 끌어올릴 효율적인 방법”이며 “일반적인 권장 운동량을 채우기 힘든 사람들에게 추천한다”고 했다. 배우 최완정(56)씨가 대한계단오르기걷기협회를 창설해 협회장으로 활동하는 이유다. 최씨는 “아파트 계단을 오르며 체중 10㎏를 감량하고 우울증·불면증도 이겨내면서 이 효능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며 “처음에는 아파트 20층까지 올라가는데 40분이 걸렸지만 익숙해진 지금은 같은 시간에 다섯 번을 왕복한다”고 말했다. 천국의 계단, 그러나 양면이 있다.

“평소 무릎 통증이 있거나 계단을 오를 때 무릎이 아픈 사람은 굳이 계단 오르기로 건강을 지킬 필요는 없다”고 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정선근 교수는 책 ‘백년 운동’에서 지적한다. 평지를 걸을 때는 체중의 0.5배, 계단을 오를 때는 2.5배, 계단을 내려올 때는 5.7배의 힘이 무릎에 전달된다. “계단 오르기는 평지 걷기보다 무릎 관절을 상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유튜브 강연을 통해서도 정 교수는 설명한다. “예전에 무릎이 아팠던 분이라면 낮은 계단을 선택하고 앞꿈치로 걸어 올라가라. 내려오는 건 엘리베이터로. 허리 아픈 분들에게는 계단 운동이 좋지만, 계단이 너무 높아서 골반이 왔다갔다 하는 일종의 ‘엉덩이 윙크’(butt wink)가 오면 안 된다.”

계단 손잡이를 잡고 올라간다면 무게 중심에 신경을 써야 한다. 무게 중심을 뒤로 놓고 계단을 오르면 엉덩이 근육이 아닌 무릎 안쪽 근육을 사용하게 돼 무리가 커지는 탓이다. 홍정기 차의과학대학교 스포츠의학 대학원장은 “손잡이를 잡으면서 올라갈 때는 최대한 손을 멀리 뻗어서 상체 무게 중심을 앞에 둬야 한다”며 “손잡이를 멀리 잡는 게 불안하다면 가까이 잡되 팔꿈치를 구부려 몸을 앞으로 쏠리게 하라”고 조언했다. 누구나 걷는 계단이지만 함부로 걸으면 다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