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진 감독이 연출한 드라마디(드라마+코미디) 시리즈가 월요일 밤을 싹쓸이했다.”(미국 뉴욕타임스)
지난주 미국 할리우드의 가장 빛나는 무대에는 그가 있었다. 이성진(43)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은 골든글러브·크리틱스 초이스·에미상에서 총 15개 부문을 수상했다. 골든글러브에서는 작품상과 남녀 주연상 등을 받으며 “백인 중심이던 골든글러브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을 받았다. 크리틱스 초이스에서는 작품상·남녀 주연상, 여우 조연상 등을 받았다. 최고 권위 에미상에서는 작품상과 감독상, 남녀 주연상 등 8관왕을 차지하며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뛰어넘었다. 비주류였던 아시아계 미국인이 대거 등장하는 이번 작품의 성과에 미 NBC는 “’성난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자기들의 공간을 만들면서 주류 문화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드라마는 고군분투하는 건설 업자 대니 조(스티븐 연)와 그림처럼 완벽한 삶을 사는 자수성가 사업가 에이미 라우(앨리 웡)의 도로 위 추격전이 불화로 번지고 파멸로 치닫는 과정을 담았다. 영어 제목 ‘beef’는 ‘불평’ 혹은 ‘싸움하다’라는 뜻.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삶이 듬뿍 담긴 이야기는 사람들의 고립감과 분노를 건드린다. 이성진 감독의 첫 연출작이기도 하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에미상 최다 후보에 선정됐을 때였다. 25년 만에 한국을 찾은 재미 교포인 그에게 “상 몇 개나 받을 것으로 예상하느냐”고 묻자 그는 “부정 탈까 봐 말 못 하겠다”고 했다. 수상 후 “이렇게 많이 받을 줄 알았느냐”고 묻자, 그는 멋쩍게 웃었다. 그는 “특히, 에미상은 존경하는 동료 감독들의 투표로 선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큰 영광”이라며 “첫 연출작으로 이런 상들을 받게 돼 놀랍다. 모든 건 함께한 제작진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말했다.
◇내게 욕한 BMW 운전자에게 감사를!
5~6년 전 미 로스앤젤레스의 한 도로. 이성진 감독 뒤에 있던 흰색 BMW SUV가 미친 듯이 경적을 울렸다. 백인 남자인 BMW 운전자는 굳이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리고, 욕설을 잔뜩 한 후 차를 몰고 가버렸다. ‘신호가 바뀐 줄 모르고 아주 잠깐 대기했을 뿐인데.’ 이런 욕설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화가 난 그는 흰색 BMW를 따라갔다. ‘성난 사람들’ 탄생의 시작이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이 감독은 수상 소감으로 이렇게 말했다.
“제게 욕을 했던 운전자에게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경적을 울리고 소리를 지르며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분 나빴던 한 사건이 위대한 작품이 됐네요.
“그때 왜 따라갔는지 모르겠어요. 계획도 없었어요. 우리는 10번 도로를 탔고, 따라가다가 ‘집에나 가자’ 하고 4번 도로로 빠지는데, 그도 같은 길로 가더라고요. 아마 제가 계속 쫓아온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끝인가요? 극적이지는 않네요?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사건이지요. 살면서 한번쯤은 난폭 운전을 경험해요. 코로나 기간 더 증가했다는 보도도 있었지요. 현대사회에서 자동차는 고립된 존재이며, 일상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도 해요. 분리된 차에서 각자 주관적인 세계관에 갇혀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친구인 제작사 A24의 임원 라비 난단에게 연락했죠.”
-영화 ‘미나리’ 제작사로 영화제 수상 경력이 화려한 곳이죠?
“라비와는 10년 전 NBC 방송국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친구예요. 점심을 먹으며 말했더니 ‘그 캐릭터들이 너와 연결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 이야기로 써봐’라고 격려해줬어요.”
-남우 주연상을 받은 스티븐 연의 출연이 가장 먼저 확정됐다고요.
“스티븐과도 오랜 친구예요. 저는 종종 그에게 전화해 제 아이디어를 이야기하죠. 그러면 스티븐은 ‘이건 아니야’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이거야! 출연하겠어!’라고 답하더라고요. 첫 통화에서 3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어요. 처음부터 많은 부분을 함께 발전시켰죠.”
-아시아계 최초로 에미상 여우 주연상을 받은 앨리 웡과는 어떻게 작업하게 됐나요?
“그때 저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투카 앤 버티’ 각본을 쓰고 있었어요. 스티븐과 앨리 웡이 성우로 참여하고 있을 때라 앨리와 연락이 닿았죠. 코로나 기간이라 ‘줌(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설명했는데, 그가 ‘너무 재밌다’며 함께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는 늘 삶의 가혹한 진실을 흥미로워했어요. 앨리와 함께하며 (운전하다 욕을 한) 백인 남성은 아시아 여성으로 바뀌게 됐죠. 각본 속 캐릭터들은 스티븐, 앨리와 함께 만들어나갔어요.”
-첫 연출작인데 넷플릭스와 작업했어요.
“당시 애플·HBO 등 7곳에 제안했고, 아마존과 넷플릭스가 가장 많은 관심을 보였어요. 두 곳이 경쟁했고, 넷플릭스가 가져갔지요. 저희는 운이 좋았어요. 넷플릭스 팀에는 아시아인이 많아요. 드라마 팀장이 한국인, 그 밑 임원도 한국인, 그 밑 직원들은 중국인, 동남아인이에요. 만약 넷플릭스가 백인만으로 된 집단이었다면, 한인 교회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을 거예요. 오히려 넷플릭스가 많은 조언을 해주기도 했어요. 림프 비즈킷 등 명곡들을 전부 작품에 쓸 수 있었던 것도 넷플릭스가 아낌없는 지원을 해줬기 때문이죠.(이성진 감독은 작품 OST도 직접 작업했다.)
-코로나 시기에 작품을 쓰고 연출했는데요.
“코로나에 걸려 병실에서 작업하기도 했어요. 대본을 쓰던 중 코로나에 걸렸고, 첫 장면은 코로나에 걸린 상태로 촬영해야 했죠. 현장에서 직원이 아이패드를 들고 다니면서 저와 영상으로 소통했어요. 당시 전 구토하고 열이 나는 상황에서 작업했기 때문에, 캐릭터가 겪는 상황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어요.”
◇“어릴 적 내 이름이 부끄러웠다”
이성진 감독은 한국에서 태어나 9개월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다시 한국에 돌아와 초등학교를 다닌 후 다시 미국으로 갔다. 그리고 일리노이·루이지애나·미네소타·아이오와·텍사스·필라델피아 등에서 생활했다. 이런 그의 경험은 영화감독이 되는 자양분이 됐다.
-왜 그렇게 이사를 많이 다녔나요?
“그건 제 부모님께 여쭤봐야 할 것 같은데요?(웃음) 어린 시절, 전 영문도 모르고 이사를 가야 했어요. 그런 경험은 결과적으로 좋은 작가가 되는 데 도움이 됐죠. 이사를 한다는 건 처음 가본 장소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주변 사람들 눈치를 보게 되죠. 관찰을 통해 사람을 빨리 파악하는 능력이 배양된다는 뜻이기도 해요. ‘얘는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구나’. 그렇게 파악한 인물에 살을 붙이고, 생동감을 부여하면 ‘캐릭터’가 돼요.”
-극 중 갈등의 시작점이 인테리어 제품을 판매하는 체인점 ‘홈 디포’인데요.
“3년 전 저는 아내와 첫 집을 샀어요. 처음 집을 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홈 디포에 자주 갔죠. 매우 흥미로운 용광로 같은 곳이었어요. 벤츠 SUV부터 도요타 트럭까지 모두 볼 수 있죠. 긴장감이 넘치는 장소처럼 느껴졌어요. 그런 모습들을 관찰하며 글을 썼죠. 극 중 집을 공사하고, 수리공이 등장하는 장면들도 제가 경험한 요소들을 담았고요.”
-첫 차를 산 건요?
“고등학교 때 부모님이 주신 줄무늬가 그려진 오래된 마쓰다 미니밴요. 그 순간을 잊지 못해요.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자유’를 얻은 것이니깐요.”
-대본을 쓸 때 가장 중시하는 점은요?
“아는 것을 써야 해요. 저는 집 근처 홈디포가 사회 경제적 지위가 충돌하는 곳이라는 것도 알았고, 한국 교회를 알고 있었어요. 이민자 부모들의 기대치를 알고 있었죠. 이 모든 것이 자녀를 얼마나 피곤하게 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어요. 저는 구글에서 ‘가장 고통스럽지 않게 자살하는 방법’을 검색해본 적도 있어요.”
-‘성난 사람들’에 이민자의 현실이 생생하게 표현되는 이유군요.
“그렇다고 제가 ‘아시아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에요.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등장인물과 배우죠.”
이성진은 전형적인 한국계 가정에서 자랐다. 부모의 기대감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미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그러나 ‘전공을 살려 투자 은행에서 일하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2003년 뉴욕으로 간 그는 NBC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하며 글을 썼다.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요?
“반대는 제가 조금씩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면서 자연스럽게 설득되는 것 같아요. 처음 작가로서 이름을 올렸던 작품이 2008년 시트콤 ‘필라델피아는 언제나 맑음’이에요. 크레디트도 없이 스태프 작가로 참가했다가, 총괄 에디터로 이름을 올렸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들이 작가로 사는 것에 위안을 얻으셨다고 해요. 이제는 너무 행복하고 자부심을 느낀다며, 제 작품이 나오면 꼭 보세요.”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떻게 대본을 썼나요?
“집에서 혼자서 많이 썼어요. TV 프로그램과 영화를 보고 많은 연습을 했죠. 아이디어가 생기면 휴대폰에 바로 메모해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은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바로 써라, 나중에 쓰려고 하면 사라져 버린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블로그를 운영했다고도 들었는데.
“2003~2004년 TV를 보고 의견을 블로그에 썼어요. 꽤 인기가 많았는데, 제 경력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어요. 할 일이 없어 우울할 때 했던 일이에요.”
-그리고 할리우드로 진출했죠.
“제 대본에 관심을 가져준 사람이 있어서요. 전화도 많이 돌렸는데, 연락 오는 곳은 많지 않았어요. 정말 힘들었던 시기에요. 돈도 떨어지고, 도둑을 맞기도 하고.”
당시를 회상하며 그는 에미상 수상 소감으로 이렇게 말했다.
“처음 LA에 왔을 때 돈이 없어서 통장 잔액이 마이너스(-) 63센트였어요. 그걸 메우러 가서 ‘1달러를 저금하겠다’고 하니까 ‘정말요?’라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땐 그 무엇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었죠.”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한다면요?
“할리우드에서 작가로 데뷔하는 건 정말 어려워요. 운도 좋아야 하고, 정말 잘 써야 합니다. 운은 내 힘으로 안 되지만, 글을 잘 쓰는 건 가능해요. 당시 전 나가 놀지 않고, 집에서 대본을 쓰고, 개선하고, 작가나 감독들이 썼던 글을 보며 연구했어요. 쓰고 또 썼죠. 그러면 운이 따라와요.”
◇소니 리에서 이성진으로
그가 처음 참여한 2007년 드라마 ‘롭 앤 빅’에 그의 이름은 ‘소니 리(Sonny Lee)’로 돼 있다. 그 후 그는 10여 작품을 소니 리로 작업했다. 그가 처음 ‘이성진’이라는 한국 이름을 쓰게 된 것은 2019년 ‘투카 앤 버티’ 때부터다. 당시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 등을 휩쓸고 있었다.
-‘소니 리’에서 ‘이성진’이 됐어요.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는 10대에게 ‘이성진’이라는 이름은 좋지 않아요. 선생님이 출석을 부를 때 발음을 잘 못해요. 그땐 그게 너무 창피했어요. 혼자 숙제를 하다가 ‘소니 리’라고 써냈어요. 그렇게 제 이름은 ‘소니’가 됐죠. 작가 경력 중반까지는 소니라는 이름을 썼어요. 그러나 다양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면서, 다시 ‘이성진’으로 바꿨죠. 그리고 카페에서 커피를 사는데, 신용카드 영수증에 적힌 ‘이성진’이라는 단어를 직원이 잘 발음하지 못하는 거예요. 주변 사람들도 웃고, 다시 고등학생이 된 기분이었어요. ‘소니로 바꿔야 하나?’라고 고민할 때쯤 영화 ‘기생충’이 나왔어요. 미국 사람들은 봉준호 감독도 알고, 박찬욱 감독도 알아요. 그 이름을 말할 때 절대 실수하지 않아요. 정확히 발음하려고 노력해요. 저도 ‘소니’ 대신 ‘이성진’이라는 이름에 자부심을 갖고, 훌륭한 감독이 돼 사람들이 제 이름을 정확히 말하려고 노력하도록 만들어야 겠다고 결심했죠.”
-할리우드에서 다양성의 가치는 많이 바뀌었나요?
“제가 처음 작가로 데뷔했을 때는 아시아계 작가가 전혀 없었어요. 만약 5년 전이었다면, ‘성난 사람들’은 존재할 수 없어요. 반기지도, 시청하지도 않아요. 5년 동안 할리우드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이제는 제 정체성을 밝히는 게 편해요. 처음 작가로 데뷔했을 때는 ‘어떻게 하면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글을 쓸까’ 정말 많이 노력했어요. ‘사람들이 나를, 내 글을 싫어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많이 했지요. 지금은 다양성이 강조되며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요. 굳이 미국인처럼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아시아인 차별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나요?
“그렇지 않아요. 아직 존재해요. 차별을 없애기 위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수도 있고, 저처럼 이야기를 통해 표현할 수 있죠. 미국 내 많은 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관심 있게 보는 한국인 배우는요?
“송강호, 이병헌, 배두나, 정호연, 그리고 YJ(윤여정).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 ‘기생충,’ ‘괴물,’ ‘살인의 추억,’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임상수 감독의 ‘하녀’ 등을 인상 깊게 봤어요. 배우 스티븐 연이 출연한 이창동 감독의 ‘버닝,’ ‘오아시스,’ ‘밀양,’ 나홍진 감독의 ‘곡성’ 등도 다 봤어요. 한국 영화를 너무 좋아하고, 그들의 열연에 존경심을 느끼죠.”
-한국 작품이 세계적으로 더 잘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번역과 통역이 중요해요. 한국인들은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정말 잘해요. 제 미국 친구들을 보면 일본이나 브라질 작품은 보지 않지만, 한국 작품은 거의 다 봐요. K팝도 좋아해요. 한국에 호의적이기 때문에 북미에서 협업 기회도 많죠. 한국의 정체성을 그대로 표현해도 돼요. 진정 어린 경험을 표현하는 걸 절대 피하지 마세요. 지금 미국인들은 한국인들의 정체성을 경험하고 싶어해요. 가슴 울리는 이야기는 내 속에 있어요. 한류가 성공한 것이 증거예요.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더 크고 보편적인 스토리가 될 수 있어요.”
-어릴 때 가장 관심 있었던 작품이나 감독은요?
“영화 ‘E.T’요.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았어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스토리 구조 자체를 잘 짜는 감독이에요. 노래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죠. 화음이 잘 만들어져 있어, 어떻게 변주하든 누구나 다 좋아해요. 작업하다 막힐 때면 종종 봤어요. 더 커서는 ‘이터널 선샤인’을 주로 봤고요. 저는 폴 토머스 앤더슨, 봉준호, 코언 형제, 아리 애스터 등 매우 가혹한 삶의 모습을 흥미롭고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작품들을 좋아해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죠. ‘성난 사람들’ 마지막회에 나오는 칼 융의 ‘사람은 빛의 형상을 상상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어둠을 의식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다’는 말처럼 말이죠.”
-마지막회는 초현실적인 느낌이 들어요.
“과거 애니메이션들을 작업한 것이 도움을 줬어요. 애니메이션은 사람들이 전부 빨간색으로 변한다든가 하는 뇌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작업을 할 수 있어요. 실사 영화를 만들 땐 마음속의 한계를 설정해야 하거든요.”
-차기작이 마블의 악당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기대작 영화 ‘선더 볼츠’인가요?
“저는 마블의 ‘선더 볼츠’에서 각본만 쓰고 있어요. 이건 제 친구인 제이크 슈레이어 감독의 작품이지요. 마블은 감독이 왕이거든요.”
-‘성난 사람들’ 시즌 2 계획은 없나요?
“원래 성난 사람들’에는 더 많은 등장인물과 이야기들이 있었어요. 시즌 1은 대니와 에이미에게 집중해 의도적으로 완결된 작품이죠. 만약 넷플릭스가 시즌 2의 기회를 준다면 저는 더 깊이 탐구하고 싶어요. 아이디어가 많거든요.”
-영화계로 온 것을 후회한 적은 없나요?
“작가가 된 것을 ‘매우 행운’이라고 느껴요. 아직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한국인과도 더 연결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그는 더 많은 작품을 요리할 준비가 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