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하늘 좀 봐!”
평일인 지난 16일, 제주시 애월읍에 위치한 애월카페거리 하늘에는 그림에나 나올 법한 양떼 구름이 멋들어지게 펼쳐졌다. 아기자기한 레스토랑과 카페가 빼곡히 들어선 이곳은 MZ 세대에게 힙한 관광 명소. 거리 곳곳에는 레트로 패션으로 한껏 치장한 젊은 커플들이 손을 맞잡고 걸어 다녔다.
비싼 명품 옷에 진한 화장을 한 젊은 중국인 관광객도 많았다. 카페거리 앞 한담해변에는 젊은이들은 물론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점심시간인데도 인근 카페와 식당 안은 다소 한산했다. 가수 지드래곤이 운영해 유명해졌던 카페도 막상 내부는 썰렁한 풍경이었다.
카페거리 근처 한 콘도에 들러 “평일치곤 사람이 꽤 많은 듯하다”고 하자 직원은 “예전에 비하면 턱도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코로나 전에는 이맘때에도 관광객이 바글바글했어요. 중국인도 말도 못하게 많았죠. 지금은 정말 없는 거예요.” 옆 카페 직원도 “작년부터 관광객이 많이 줄어 매출이 40%정도 줄었다”고 했다.
◇관광객 10% 줄었는데 매출은 30~40% 떨어졌다?
한국 최고의 관광지 제주의 명성이 흔들리고 있다. 코로나 시기 해외로 나가지 못하는 내국인 관광객이 몰리면서 ‘코로나 특수’를 누렸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내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빠르게 줄면서 관광업에 종사하는 제주도민들의 시름은 커지고 있다.
제주관광협회에 따르면 작년 제주를 찾은 관광객은 1334만3800여 명. 2022년에 비해 약 4% 감소했다. 특히 내국인 관광객은 2022년보다 8.2% 감소했다. 그런데 제주도 관광지 곳곳의 펜션과 식당, 카페들은 마치 입을 맞춘 듯 “관광객도 매출도 전보다 30~40%는 줄었다”고 했다. 왜 그럴까.
한 여행사 대표는 “최근 제주도를 찾는 내국인 관광객은 가족 여행, 개별 여행보다는 학교 수학여행이나 기업, 관공서 등에서 주관한 워크숍 등 단체가 많다”며 “이런 경우 대부분 호텔 인근만 돌기 때문에 상인들이 체감하는 감소 폭은 더 클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여행사 관계자는 “최근에는 중국인 관광객들도 대부분 호텔에서 놀고 시내에서 쇼핑만 잔뜩 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관광객 양태가 바뀌면서 제주시나 서귀포 밖 관광지들은 체감되는 감소 폭이 훨씬 커졌다는 것이다.
펜션업자들은 “코로나 때보다 숙박비를 한참 내렸는데도 손님들이 오질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한 펜션 소유주는 “작년 여름부터 손님이 줄어서 숙박비를 많이 내렸는데도 별 소용이 없다”며 “제주로 오는 항공편이 줄고 요금이 오르면서 관광객 발길이 줄었다”고 했다. 실제 국내 항공사들은 작년부터 해외여행 수요가 급증하자 국제선 좌석 공급을 늘리고 국내선 좌석을 대폭 줄였다. 한 저가 항공사의 경우 작년 상반기에 국내선 좌석을 약 120만석 줄이고 일본 등 국제선 좌석을 약 5000석에서 50만석으로 늘렸다.
서귀포시의 한 펜션 업자는 “관광객이 줄어든 것에 비해 코로나 시기 펜션이나 숙박 업소가 더 많이 늘었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숙박 업소들도 덩달아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직전인 2019년 12월 말 5600여 곳이던 제주도 내 숙박 시설은 작년 6월 기준 7000여 곳으로 4년 만에 25%가 늘었다. 코로나 시기 관광객이 몰리자 너나없이 펜션, 민박을 늘린 탓에 지금은 초과 공급 상태가 된 것이다.
렌터카 업계도 비슷하다. 코로나 시기 수요가 폭증하면서 임대료가 하루 10만~12만원까지 올라 ‘바가지’ ‘폭리’라는 불만이 쏟아졌지만, 당시 업체들은 렌트할 차가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한 업체 대표는 “그때 경쟁적으로 육지에서 차를 대거 들여왔는데 지금은 손님이 줄어 경영난을 겪는 곳이 적지 않다”며 “임대료를 많이 내렸는데도 작년과 비교하면 예약률이 50% 미만”이라고 했다. 20여 년간 제주 렌터카 업체 1위를 유지하던 ‘제주스타렌탈’은 작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여행 업계는 코로나 여파로 해외여행 수요가 늘어난 것과 동시에 코로나 시기 과도하게 바가지요금을 받은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 여행사 대표 A씨는 “식대, 렌터카 등 전반적으로 높은 물가로 인해 반감을 느끼는 내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다”며 “최근에는 손님들이 제주 대신 부산이나 여수, 목포를 더 많이 문의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행사 관계자는 “아무리 특수라고 해도 어느 정도 선을 지켜서 요금을 올려야 하는데, 그런 관행이 없다 보니 ‘제주도는 바가지가 너무 심하다’는 이미지가 고착되어 버렸다. 관광객들이 마음이 상했다”고 했다.
◇가격 내려도 돌아오지 않는 손님들
실제로 작년 여행 리서치 전문기관인 컨슈머인사이트의 여름 휴가지 만족도 조사에서 늘 1위를 지키던 제주도가 4위로 밀려났다. 대신 부산, 강원, 전남이 1, 2, 3위를 차지했다. 코로나 특수로 그린피를 2배 가까이 올린 제주 지역 골프장도 작년 이용객이 2022년 대비 40만명이나 줄었다. A씨는 “가성비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 중산층 이하 관광객들이 제주도의 높은 물가에 상심해 ‘두 번 다신 제주도 안 간다’는 말을 할 정도”라며 “절대 액수로 보면 해외여행이 더 비싼데도 왜 제주도 대신 해외를 택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컨슈머인사이트에 따르면 한국인 관광객의 국내 여행지 전체 평균 비용은 33만9000원인데 제주는 이보다 1.56배 비싼 52만8000원이었다. 해외여행은 3.41배인 115만7000원으로 파악됐다. 작년 친구들과 제주도에 다녀온 한 50대 부산 시민은 “제주도 횟집에서 10만원대 모둠회를 시켰더니 부산에서는 4만~5만원이면 먹을 수 있는 수준이더라”며 “일본 오키나와는 먹고 싶은 메뉴에 술까지 실컷 먹어도 10만원이 조금 넘었다. 이러니 여유가 있다면 제주도 대신 누구나 일본에 가려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난개발도 문제다. 코로나 전에는 중국인 관광객, 코로나 시기에는 내국인 관광객이 폭증하면서 제주도 곳곳에 우후죽순 카페와 식당, 펜션이 들어서면서 자연 풍광이 대거 훼손돼 제주도의 매력이 사라지고 있단다. 이날 오후 성산항에서 만난 한 30대 관광객은 “우도에 갔다가 충격을 받고 왔다”고 했다. 그는 “20대에 갔을 때 우도는 제주도 특유의 시골 풍경과 자연이 어우러진 곳이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완전 도떼기시장이 됐다”며 “10년 전 본 풍경이 싹 사라져서 오만 정이 떨어졌다. 어떻게 이렇게 관리가 안 되는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업자들도 할 말이 없진 않다. ‘바가지 논란’에 대해 이들은 당장 인력난 때문에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 인건비가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펜션 업자 B씨는 “객실 정리하는 직원을 뽑으려는데 사람이 없다”며 “요즘은 중국인 근로자들도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하고 피한다. 급여를 한참 올려 불러도 한 달째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서귀포시의 한 식당 사장은 “다른 식당에서 설거지하는 직원 구하는 데도 월 300만원을 부르는데 일하겠다는 사람이 없다더라”며 “인건비가 오르니 가격을 내리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했다. 서빙 직원은 “관광객들 대부분이 제주도에 오면 갈치조림, 흑돼지처럼 비싼 메뉴를 먹고 싶어 하니 당연히 비싸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어려움을 겪는 숙박·요식 업계와 달리 제주 내 고급 호텔과 풀빌라 등은 여전히 인기다. 펜션 업자 B씨는 “재력이 있는 관광객들은 물가에 크게 개의치 않고 호텔 등을 이용하다보니 작년에 고급 호텔들은 오히려 역대급 실적을 올렸다더라”고 말했다. 실제로 제주 내 고급 호텔의 경우 2022년부터 손님이 크게 늘면서 지금은 일할 인력을 구하지 못해 일부는 일반 사무직 직원이 나서 조리, 접객, 식음 준비까지 도맡고 있단다. 제주 용두암 인근의 한 자영업자는 “다들 어렵다고 하지만 정말 유명하고 값은 저렴한 가성비 식당들은 지금도 관광객들이 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린다”고 했다.
내국인 관광객이 줄어든 사이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용두암 등 제주시 인근 관광지에서는 “손님이 작년 말부터 조금씩 회복되는 추세”라는 얘기도 나왔다. 여행 업자들은 “그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제주도가 마르지 않는 우물이라는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지금은 울상에 ‘자성한다’고 말하지만, 다시 손님이 늘면 바가지요금 받는 일이 반복될까 걱정이에요. 한번 마음을 다치면 돌이키기 어렵고 요즘 젊은 사람들은 더 칼 같은데, 그걸 잘 모르는 거 같아요.”
제주=배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