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점집에 갔다 왔다”는 얘기가 자주 들린다. 연초라서인지, 사는 게 팍팍해서인지, 뭐 하나 맞혔다는 점집은 입소문을 타고 문전성시를 이룬다. 10분당 2만~3만원은 기본이고, 특별점사는 100만원짜리도 있다고. 여기에다 부적이나 굿이 추가되면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무당에게라도 기대보자는 심정이겠지만, 맹신은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포털사이트에 무속인을 치면 연관 검색어로 ‘살인’ ‘사기’ ‘가스라이팅’ 등 무서운 단어가 나오는 것도 그 이유. 무속인이 연루된 사건은 매년 쏟아진다. 그러나 “피해자가 원해서 한 일 아니냐”는 인식 탓에 크게 조명받지는 못한다. 무속인 ‘지석’은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살이 꼈다, 복이 없는 팔자라고 해서 굿을 하자는 무당이 많은데요. 사주에 살이 있는데 살풀이한다고 100% 해소된다는 게 앞뒤가 안 맞잖아요. 마음의 안정은 찾을 수 있겠죠. 본질적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요즘 무당은 TV, 유튜브에 자주 등장한다. 하나의 영업 방식이다. 남자나 여자나 머리를 곱게 빗고 화려한 한복을 차려입는데 화장을 아주 진하게 하는 게 특징이다. “일부러 무섭게 보이려거나 세 보이려고 하는 분도 있겠죠. 그런데 진짜 무당은 그날그날 찾아오는 신령님(귀신)이 좋아하는 화장을 해야 점사가 잘 나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요.” 믿거나 말거나. 무속인 ‘청아’의 얘기다.
이런 화장을 한 무속인은 며칠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이혼한 배우 이동건의 사주를 보다가 다짜고짜 눈물을 흘렸다. “너무 외로운 사주예요. 배우자로 연예인 만나면 네 번이고 다섯 번이고 이혼해.” 이동건도 보탠다. “너무 무섭네요.” “오버 액션”이란 쪽도 있지만, 섬뜩하면서도 솔깃해 이 무속인이 누군지 검색하는 시청자도 있다. 이 무속인 ‘매화아씨’는 방송 이후 인기가 폭등했다. 김대호 MBC 아나운서도 유튜브에 출연해 이사를 갈지, 퇴사해야 할지 고민하며 신점을 본다. 이렇게 점집을 찾는 건 쉬운 일이 돼 버렸다. 꼭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을 필요도 없이 휴대폰을 켜기만 하면 수없는 정보가 쏟아지고, 전화 통화나 앱을 통한 채팅 상담도 가능한 세상이다.
그만큼 무속인도 많아졌다. 사실 많아도 너무 많다. 10대 때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반인 이야기를 담은 TV 프로그램 ‘고딩엄빠’에선 ‘출산 후 무당이 됐다’는 엄마가 3명이나 등장했다. 유튜브엔 “오늘 신내림 받았어요”란 영상이 수두룩하다. 4세, 7세, 10세 꼬마 무당부터 평범한 삶을 살았던 MZ 무당까지. 어제까지 유튜버였는데 오늘 무당이 돼있기도 한다. 대부분 ‘너무 아팠는데 병원에 가도 낫질 않고 신내림을 받지 않으면 죽는다고 해서 굿을 했다’거나, ‘빙의가 돼서 일상생활이 안 된다’는 등의 뻔한 레퍼토리를 읊는다.
문제는 재미로, 심신 안정차 점집을 찾을 수 있지만 너무 믿어버릴 때 생긴다. 최근 한 무당 부부가 가장을 잃은 일가족 3명을 상대로 19년간 가스라이팅해 수억 원을 갈취한 사건이 일어났다. CCTV를 설치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서로 폭행, 성폭행을 하도록 조종했다. 법원은 무당 부부에게 각각 15년, 10년형을 선고했다. “자녀가 귀신에 씌었다”며 퇴마 굿을 종용, 무속인과 그에게 심리적 지배를 당한 부모가 자녀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건도 종종 벌어진다. 한 남성이 자신의 딸에게 무속인이 되라고 꼬드긴 친누나를 폭행해 숨지게 한 일도 있었다. 무당이 엮인 불륜, 성 비위 사건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이렇다 보니 무속인끼리도 자정을 외친다. “무조건 굿을 하라거나, 앉아서 말만 하면서 많은 돈을 요구하면 믿지 마세요.”(무당 해월) “점 보러 갔는데 ‘당장 내림굿 해’하면 무당이 돈 벌 생각만 있는 겁니다. 그래서 개나 소나 무당이니 이런 소리가 나옵니다.”(유민지 호신마마) 점집을 찾는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겠지만, 인생을 갈아 넣지는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