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비비테

일을 한 지 10년이 됐다. 나보다 10년 어린 동료와도 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이 힘들면 참아도, 사람이 힘들면 못 참는다’라는 말을 내 입에서, 친구의 입에서, 선배의 입에서 수없이 들으며 10년이 지났다. 나보다 어린 동료들이 나 때문에 힘든 일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렇다면, 좋은 동료란 무엇인가. 나의 10년을 돌아본다. 어떤 동료 때문에 수면제 처방을 받은 적도 있고, 어떤 동료 덕분에 아주 지저분한 프로젝트를 해내기도 했다. 나의 멘털을 실험체로 삼은 격동의 시간이었다. 끝내, 내 안에는 좋은 동료에 대한 한 가지 명제가 남았다.

좋은 동료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 내가 어려워하는 동료들은 나이부터 캐물어봤다. 여기서 ‘캐물어보다’라는 동사를 주의 깊게 봐달라. 그들은 단순히 물어보지 않는다. 척박한 땅에 난 잡초 뿌리를 끄집어내듯 ‘캐어’ 물어본다. 나이만 물어보는 건 아니다. 우리 집 부동산이 전세인지 월세인지 갭투자인지 알아내고, 내가 특목고를 나왔는지 아닌지 물어본다. 그들은 주로 눈치가 빠르다. 하지만 눈치가 없는 척을 한다. 상대방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면 미소를 지으며 뚫어져라 바라본다. 답변이 올 때까지.

이제 좋은 동료의 사례를 써보겠다 . 동료 H는 내 나이를 궁금해하지 않았고 내가 말을 놓을 때까지 존댓말을 썼다. H는 명령어로 말하지 않았다. 일을 시킬 때는 ‘~줄래요?’라는 문장을 구사했다. H는 특이한 옷을 많이 입었다. 은색 단발머리는 비대칭으로 잘려있을 때가 있었는데 집에서 직접 잘라서 그렇다고 했다.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야 그녀가 나보다 11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번은 내가 프로젝트 매니저고 H가 팔로어였던 적이 있다. 월요일 아침부터 H에게 전화가 왔다. “지윤님, 주말 내내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H는 신난 목소리로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좋은 아이디어네요. 하지만 적용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나는 H의 아이디어를 거절했다. 사실 내가 거절하고 말고 할 포지션도 아니었지만, H는 흔쾌히 “그렇죠? 저도 그런 단점도 생각했어요” 하고 대화를 마쳤다.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11살 많은 다른 선배였다면 내가 이렇게 근심 없이 아이디어를 거절할 수 있었을까. H는 믿음을 주는 사람이었다. ‘본질이 아닌 것으로 기분 나빠 할 사람이 아니다. 내 생각을 오직 합리적 차원에서 판단해줄 것이다’라는 믿음. 그 전화를 끊고 꽤 감동에 젖었다. 기업 홍보자료에 등장하는 ‘수평적’이라는 단어를 마침내 경험했기 때문이다. 멸종위기 동물을 발견한 마음으로 잠시 묵상을 했다.

멋진 동료들은 여자, 남자, 선배, 팀장, 후배라는 말보다 ‘사람’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인간사회를 분류하는 흔한 척도 말고 그냥 ‘사람’.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 함께 일하면 된다. 존중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