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 노점에서 사람들이 쌀국수를 먹는 풍경 /게티이미지

퍼는 식민지 시절 프랑스 식문화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는 ‘프랑스 기원설’과 북부에서 국경을 맞댄 중국 식문화를 받아들여 만들어졌다는 ‘중국 기원설’이 있다. 베트남 사람들이 두 요리 대국의 영향을 동시에 받아들여 재창조했다고 보는 게 합당할 듯하다.

프랑스 식민지가 되기 전 베트남에서는 농사를 돕는 소를 잡아 먹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이르러 프랑스군이 수도 하노이를 비롯한 베트남 각지에 주둔하면서 소고기 식용 문화가 차츰 퍼졌다. 특히 레스토랑은 물론이고 가정에서도 ‘포토푀(pot-au-feu)’를 만들어 먹었다. 포토푀는 소고기를 당근, 양파 등 각종 채소와 함께 푹 끓인 프랑스의 대표적인 가정식이다.

포토푀는 베트남 사람들 입맛에 맞춰 차츰 변화하다가 ‘보코(bo kho)’라는 베트남식 소고기 스튜가 됐다. 보코는 빵과 함께 길거리 포장마차에서도 팔렸다. 퍼라는 이름도 포토푀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보코가 베트남 북부에 있는 수도 하노이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는 동안, 20세기 초 중국에서 넘어온 화교들은 ‘뉴러우펀(牛肉粉)’을 소개했다. 뉴러우펀은 사골 국물에 쌀국수를 넣은 음식이다. 이때까지 베트남 사람들은 소뼈를 우려낸 사골 국물도, 쌀가루를 가공해 만드는 쌀국수도 알지 못했다.

뉴러우펀은 베트남말로 ‘응우뉵펀(nguu nhuc phan)’이라고 한다. 응우뉵펀은 물소 뼈를 우린 국물을 사용하다가 차츰 일반 소뼈로 대체되면서 오늘날 쌀국수 국물의 기본이 됐다.

쌀국수에 들어가는 국수를 베트남어로 ‘반퍼(bahn pho)’라 한다. 쌀가루를 물과 섞어 묽은 반죽을 만든다. 찜통에 면포를 깔고 쌀가루물을 얇게 펴서 쪄내면 크고 둥그런 쌀피가 된다. 이것을 우리 칼국수처럼 칼로 썰면 반퍼가 된다.

베트남에는 반퍼 외에 ‘분(bun)’이라는 쌀국수도 있다. 15세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반퍼보다 훨씬 오래된 국수다. 한국의 냉면처럼 구멍이 여럿 뚫린 틀에 반죽을 넣고 눌러서 국수발을 내린다. 분은 돼지고기와 각종 채소, 양념과 함께 비벼 먹는 ‘분짜(bun cha)’가 유명하다.

초기 퍼는 소고기 육수뿐이었다. 하지만 1939년 2차 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 식민 정부는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소고기 판매를 금지했다. 그러자 퍼 식당 주인들은 소고기 대신 닭고기로 국물을 내기 시작했다. 이후 쌀국수는 소고기와 사골 국물을 쓰는 ‘퍼보(pho bo)’와 닭 육수를 쓰는 ‘퍼가(pho ga)’로 양분됐다.

인도차이나 전쟁이 1954년 제네바 협정 체결로 멈추면서 베트남은 남북으로 갈라졌다. 이때 북베트남인 200여만 명이 남베트남으로 이주하면서 북부 음식인 쌀국수가 남쪽에 정착하게 된다. 1975년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100만명이 넘는 베트남인들이 남베트남을 떠나 미국,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로 이주하면서 쌀국수는 세계적인 음식으로 자리매김한다.

이처럼 퍼에는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가 스며 있다. 여러 나라의 식문화가 녹아들며 발전해 온 베트남 음식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아이콘으로 손색이 없다. 베트남에선 2017년부터 ‘퍼 데이(pho day)’를 제정해 기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