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의 한 장면. 무당 화림(김고은)은 묫바람 때문에 집안에 우환이 이어진다고 진단한다. /쇼박스

영화 ‘파묘(破墓)’가 1000만 관객을 바라본다. ‘명당’ ‘대풍수’ 등 풍수를 재료로 쓴 영화나 드라마가 있었지만 이만큼 흥행한 적은 없다. 풍수학자로서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극장에서 본 ‘파묘’는 필자가 아는 사실과는 달랐다.

파묘란 무덤을 파헤친다는 뜻이다. 어떤 사연이 있어 기존의 무덤을 파서 이장하거나 소각하는 행위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그 묘 때문에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고 생각하거나 후손들이 묘지를 관리하기 불가하거나.

영화 ‘파묘’는 무당 화림(김고은)이 미국 LA의 재벌 집안(친일파)에 대물림되는 우환을 ‘묫바람’으로 진단하면서 시작된다. 묫바람은 풍수지리의 동기감응설(同氣感應說)을 전제로 한다. 조상 유골이 좋은 곳에 모셔져 있으면 후손이 좋은 기운을 받아 명당 발복이 되며, 반대로 나쁜 땅에 묻히면 집안에 불운이 닥친다는 것이다. ‘파묘’가 지어낸 이야기는 후자에 속한다. (※다량의 스포일러 주의)

영화 ‘파묘’에서 주인공들이 무덤 속을 들여다보는 장면. 왼쪽부터 법사 봉길(이도현), 무당 화림(김고은), 풍수사 상덕(최민식), 장의사 영근(유해진). 하늘이 한반도 모양이다. /쇼박스

그런데 이 영화 속 부잣집에 우환이 잇따르는 이유는 좀 다르다. 악지(惡地)이기도 하지만 ‘쇠말뚝[철침·鐵針]’과도 얽혀 있다. 묫바람과 쇠말뚝은 ‘파묘’를 떠받치는 두 기둥이다. 묫바람에 대한 전설부터 소개한다.

방효유(方孝孺·1357~1402)는 중국 명나라 대학자였다. 그가 태어나기 전, 부친이 길지를 구해 조상을 안장할 때였다. 꿈에 붉은 옷을 입은 노인이 애원했다. “우리가 대대로 살던 곳입니다. 3일만 여유를 주시면 옮기겠습니다. 꼭 보은하겠습니다.” 노인은 공손하게 절을 하고 떠났다. 한갓 꿈으로 여긴 부친은 이장을 강행했다. 땅을 파자 수백 마리 붉은 뱀들이 우글거렸다. 다 태우고 묘지를 조성했다. 방효유가 태어나고 세월이 흘렀다. 연왕이 조카를 쫓아내고 황제에 오를 때, 방효유에게 즉위 조서를 쓰게 했다. 방효유는 거절했다. “9족을 멸하겠다.” “9족이 아니라 10족을 죽여도 못 합니다.” 연왕은 과연 10족을 죽인다. 모두 873명이었다. 소각된 뱀 숫자와 같았다.

뱀의 소굴을 파헤치는 것이 파묘는 아니나, 남(뱀)의 집을 빼앗아 묘를 잘못 쓰면서 생겨난 묫바람이다. 영화 ‘파묘’는 나쁜 묫바람의 해결책으로 화장(火葬)을 제시한다. 무당이 묫바람을 진단하고 해법으로 파묘를 말할 때, 이를 둘러싼 후손들의 반응과 갈등, 해결과 화해로 이야기가 흘러갈 것으로 보았다. 전반부는 그렇게 가나 싶었는데 어느 순간 급변했다. 쇠말뚝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서울의 한 극장에 영화 ‘파묘’ 홍보물이 걸려 있다. /뉴스1

쇠말뚝이란 무엇인가? 땅에는 지기(地氣)가 있는데, 그 흐름을 막거나 끊어 그곳에 터를 잡은 무덤의 후손에게 재앙을 부른다는 도구다. 그런데 ‘파묘’의 쇠말뚝은 한 개인이나 고을에 불행을 가져오는 물건이 아니다. 장재현 감독은 그것을 한일 ‘풍수 전쟁’의 비밀 병기로 사용한다. 이 영화는 조선과 일본 사이의 긴 역사적 앙금을 깔고 사건을 전개한다.

임진왜란으로 조선 정벌을 꿈꾸다 몰락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세력(서군)과 조선에 관심이 없던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력(동군)은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로 단판 승부를 겨룬다. 도요토미 세력이 패한다. 조선 정벌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도 실패하니 얼마나 억울할까? 영화에는 이때 패한 어느 다이묘(영주)의 한 맺힌 정령이 쇠말뚝으로 등장한다.

서군은 변방의 다이묘로 숨죽여 연명한다. 19세기 메이지 유신 과정에서 서군은 동군인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린다. 이후 서군 세력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유지를 받들어 조선 정벌을 꿈꾼다. 정한론(征韓論)이다. 1910년 조선을 병탄한 그들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도요토미 히데요시 무덤이었다.

그들은 조선을 36년간 통치하였으나 늘 불안하였다. 영화 ‘파묘’는 일본 최고 음양사 무라야마 쥰지로 하여금 다이묘 정령을 관에 넣어 세로로 파묻게 한다. 쇠말뚝이다. 또 그 관 위에 친일파 중추원 부의장 박근현의 관을 올려놓는다. 쇠말뚝을 은폐해 뽑히지 않게 한 것이다. 악령 위에 묘를 쓴 후손이 잘될 리 없다. 그 묫바람으로 3대째 불행이 이어진다. 후반부는 무당 화림과 풍수사 상덕(최민식)이 쇠말뚝을 없애는 판타지로 점프한다. 영화는 허구이고 창작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역사와 시대를 논할 때는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파묘’에는 세 가지 왜곡이 있다.

영화 '파묘'의 한 장면.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이 이장을 위해 관을 열었다. /쇼박스

첫째, 쇠말뚝은 삼각점의 오해다. 삼각 측량을 할 때 기준으로 정하는 세 점 말이다. 1895년 일본은 200여 명의 측량사를 보내 조선 땅을 측량한다. 이에 대한 반발로 많은 조선인이 희생된다. 망국의 슬픔이다. 1912년 조선총독부가 “삼각점 표석 밑에 마귀를 묻었기 때문에 재액이 닥칠 것이라는 유언비어에 속지 마라”고 시달할 정도였다. 일본이 조선을 강탈하였으나 풍수 침략은 하지 않았다.

둘째, 영화에 등장하는 음양사 무라야마 쥰지는 실존 인물 무라야마 지쥰(村山智順·1891~1968)을 겨냥했다. 그는 1919년 동경제대 철학과 졸업 후 총독부 촉탁으로 조선에 왔다. 민속 관련서 10여 권을 편찬하고 1941년 귀국한다. 가업인 묘코지(妙廣寺)란 절의 주지직을 승계하기 위해서였다. 무라야마는 조선의 지관 전기응의 도움을 받아 ‘조선의 풍수’를 펴냈다. 조선 풍수는 이 책 덕분에 전해진다. 훌륭한 학자를 술수나 부리는 음양사로 둔갑시킨 것은 그에 대한 모욕이다. 필자는 일본에 있는 그의 무덤을 참배하기도 했다.

셋째, 이른바 ‘쇠말뚝설’은 유교를 근간으로 하는 조선의 사대주의 풍수관에서 비롯된다. 바탕에는 ‘곤륜산에서 3개의 지맥이 중국으로 뻗으며, 그 하나가 백두산을 거쳐 한반도로 이어진다’는 관념이 있었다. 곤륜산은 시조, 백두산은 중조, 삼각산은 할아버지 산이 된다. 신성한 지맥에 쇠말뚝을 박을 순 없는 일이다. ‘쇠말뚝설’은 그래서 퍼졌을 뿐이다.

이와 반대되는 풍수설이 있다. 곤륜산·백두산이 아니라 자기가 사는 곳의 진산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즉 서울은 삼각산, 대구는 팔공산, 부산은 금정산, 광주는 무등산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지방 분권 시대에 부응하는 우리 시대의 풍수론이다.

‘파묘’는 서스펜스와 재미를 주는 영화다. 하지만 안타깝다. 풍수학자에게는 세 가지 왜곡이 큰 구멍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