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한상엽

독일이 예전 같지 않다. 정치는 불안하고 경제는 뒷걸음질 치고 사회는 어수선하다. 독일은 사민(SPD·赤), 녹색(Grünen·綠), 자민(FDP·黃) 3당의 연합 정권이다. 소위 ‘신호등 연정(聯政)’의 수장인 사민당 숄츠 총리는 리더십과 존재감이 박약한 편. 지난 8일 공영방송 ZDF의 정치 여론조사 프로그램 폴리트바로미터에 따르면 지지율 33%다. 정당별로도 사민당과 녹색당이 각각 15%이고 자민당 4%로, 야당인 기민당(CDU) 30%는 물론 극우 정당인 독일대안당(AfD) 18%보다 저조하다.

“독일에서 가장 비중 있는 정치인은 누구인가?”란 설문에서는 어떨까. 숄츠 7위, 부총리 하베크 5위, 재무 장관 린드너 8위로 역시 지지부진. 그나마 여성 외교 장관 베어보크가 3위로 체면치레를 했다. 2, 4, 6위는 거대 야당인 기민련(CDU/CSU)의 정치인들이다. 눈에 띄는 인물이 바로 몇 주째 1위를 달리고 있는 국방 장관 피스토리우스(사민당)다.

한데 피스토리우스의 인기도 어부지리 성격이 짙다. 독일은 지난 10년간 여성 장관 3명이 국방을 책임졌다. ‘가족 같은 군대’ ‘평화로운 병영’은 이루었으나, 대신에 뜨자마자 주저앉는 헬기, 굽어진 총신의 기관총, 실전 훈련 없는 병사들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그러다 터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독일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헬멧 5000개와 막사용 텐트를 다수 보낼 것이다.” 전쟁 초기라 하더라도 상황 파악 제로인 람브레히트 장관 후임으로 급히 수혈된 인물이 바로 피스토리우스다. 지방정부의 오랜 내무 각료였는데 강단 있다는 평. 현재 NATO 연합군과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북독일 모처에서 미디어 노출 없이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

경제도 회색빛이다. 경제성장률 예상치가 0.2%로 EU 주요 국가 중 꼴찌. 부총리 겸 경제·산업·에너지 장관 하베크(녹색당)는 야당의 동네북이다. 원래 직업이 동화작가인 그는 환경·농림·기후변화 쪽에서 경력을 쌓은 인물로 문사철(文史哲) 타입. 박사 학위 논문 제목은 ‘문학 미학의 장르 이론적 본질 탐구’다. 문약(文弱)한 환경론자가 경제·산업·성장을 고민하는 비대칭 형국이랄까.

재무 장관 린드너(자민당)도 만만치 않다. 코로나 기금을 무모하게 기후변화 항목으로 예산 전용하려다 헌법재판소 위헌 판정을 받아 셧다운 사태를 맞을 뻔했다.

사회상, 특히 살림살이도 빠듯하기만 하다. 전기·가스 요금은 2~3배 올랐다. 8평 방세로 뮌헨은 800유로(약 120만원), 베를린·프랑크푸르트도 600~700유로는 줘야 한다. 연초에는 농민들이 폭발했다. 농업용 기름값 보조금이 삭감되자 트랙터로 아우토반을 막고 수도 한복판 브란덴부르크 광장을 점령해 버린 것. “우리 모두 허리띠를 졸라맵시다.” 외즈데미어 농림 장관의 호소에 농민들은 “농사 못 지으면 독일 국민은 굶는 수밖에”로 응수했다.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지난 2월 8일 오후 귀국했다. 클린스만 감독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스포츠조선

이제 축구다. ‘축구란 남자 22명이 90분 동안 공을 쫓다가 결국 독일이 이기는 게임’. 프리미어리그 전설 리네커의 말이 무색하다. 브라질을 때려눕히고(7:1), 괴체의 결승골로 아르헨티나를 잠재우며(1:0) 월드컵 4회 우승을 거머쥐었던 전차군단. 그러나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이래 줄곧 내리막길이다. 2018 러시아 대회서 대한민국에 2:0패, 2022 카타르 때는 일본한테 2:1패로 연거푸 16강 탈락. 피파 랭킹은 현재 독일 16위, 우리나라 22위로 별 차이가 없다.

“아시안컵 우승이 목표입니다. 이걸로 당당히 평가받고 싶습니다”. 입발림 소리로 우리 국민을 기만한 간특한 꾀쟁이 위르겐 클린스만(60) 이야기를 해보자. 그의 태만과 무책임은 유별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하나.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도 클린스만은 틈만 나면 캘리포니아를 오갔다. 당시 조직위원장 베켄바워(1945~2024)가 대회 94일 전, “해괴하고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최후통첩을 보내고 츠반치거 축협회장 입에서 ‘퇴출 검토’가 언급되고 나서야 부랴부랴 독일로 왔다. 레전드 미드필더 마테우스(63)는 일갈한다. “클린스만은 내가 아는 가장 이기적인 인간. 모든 걸 하거나 아무것도 안 하는 권력자.” 사실 클린스만은 독일·미국 이중국적의 사업가로 20년 넘게 ‘사커 설루션(Soccer Solution)’이라는 스포츠 컨설팅 업체의 부회장이다. 감독은 그러니까 부업인 셈. 축구는 전술보다 체력이라며 근육질 트레이너들과 무리 지어 다니는데 이들 대부분이 자신의 비즈니스와 연관된 인력이다.

학창 시절 역사 시간에 배운 ‘남연군 분묘 도굴 사건’을 떠올린다. 때는 1868년, 독일 장사치 에른스트 오페르트(1832~1903)는 조선과의 통상에 군침을 삼키고 일을 벌였다. 최대 진입 장벽인 대원군의 부친 남연군 묘를 도굴해 부장품을 빌미로 담판을 지으려 했던 것. 미수에 그쳤으나 발칙하기 짝이 없는 상상 초월의 변고였다. 오페르트 이후 우리 배달 겨레에게 최대의 모멸감을 안긴 독일인이 클린스만이라면 지나칠까. 그는 중국계 미국인 모델 출신 아내 데비 챈과 태평양이 바라다보이는 헌팅턴비치에 산다. 거기서 국으로 가만있으라! 당신은 움직이면 민폐다. 아듀, 클린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