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방한 중인 LA 다저스 선수들과 가족들이 ‘디너 파티(soirée)’를 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입국 때부터 화제가 된 오타니 쇼헤이와 그의 부인 다나카 마미코도 함께였습니다. 이들과 다저스 선수, 가족들은 여의도 도심과 한강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와인과 위스키, 핑거 푸드를 맛보았습니다. 이곳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 호텔 29층에 있는 레스토랑 ‘마리포사 앤 M29′ 입니다.
마리포사는 스페인어로 ‘나비’. 인테리어 곳곳에 나비를 모티브로 한 가구 및 오브제가 디스플레이 돼 있습니다. 레스토랑 메인 홀 양옆에 테라스가 있는데, 이 또한 나비의 날갯짓을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평소에는 현대 유럽 음식을 기본으로한 단품과 코스 요리를 판매하지만, 이날은 특별히 LA다저스를 위한 파티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서울시리즈를 위해 방한한 이들이 지내는 호텔이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이기 때문입니다.
호텔은 이미 몇 개월 전 정해졌다고 합니다. 경기장인 고척돔까지 30분밖에 걸리지 않는 지리적 이점뿐만 아니라, 2021년 문을 연 나름 신상 호텔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경이 설계했으며, 한국 전통 건축 양식에서 따온 붉은색 철골구조가 특징입니다. 드라마 ‘펜트하우스’,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의 그래미 시상식 공연 등을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호텔은 308개의 일반 객실과 40개의 스위트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오타니 등 LA 다저스 선수들과 가족들이 사용하는 곳은 ‘시그니처 스위트룸’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5~6명은 앉을 것 같은 소파와 다이닝 스페이스 등이 있는 곳”이라며 “키가 큰 오타니도 다리를 뻗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욕조도 있다”고 합니다. 1박에 100만원 정도. 파크원 내에 있어 백화점 ‘더 현대 여의도’와도 연결돼 있습니다. 지난 17일 키움히어로즈와의 연습 경기에서 홈런을 기록한 프레드 프리먼도 전날 ‘더 현대 여의도’를 구경하러 갔다 왔다고 하더라고요.
‘페어몬트’라는 이름은 19세기 미국으로 이주한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자의 아들인 제임스 그레이엄 페어(Fair)에서 따왔습니다. 이 사람의 삶은 참 흥미롭습니다. 1831년 아일랜드 티론주에서 태어난 그는 12살 때 아버지와 함께 미 일리노이 농장으로 이주합니다. 농장에서 자라며 공부한 그는 1850년 캘리포니아로 이주합니다. 당시 그는 캘리포니아 북부 페더강에 많은 금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곳에서 사금 채굴부터 시작했습니다.
이후 그의 관심은 네바다주(州)로 옮겨졌습니다. 카슨강에서 도광기를 운영하며 캄스톡 광맥 지역에서 여러 광산 관리직을 맡게 됩니다. 그는 세 명의 아일랜드 동료들과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이들이 투자해 처음 큰돈을 번 것이 ‘컴스탁 광산’. 미국 최초로 발견된 은(銀) 광산입니다. 이후 그들은 많은 광산을 운영·관리했고, 1873년 버지니아에서 대형 광맥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들이 세운 회사 이름은 따로 있었지만, 사람들은 이들 회사를 ‘보난자 펌(노다지 회사)’으로 부르게 됩니다.
페어는 광산에서 번 수익 대부분을 철도와 샌프란시스코 부동산에 투자했습니다. ‘네바다 은행’을 설립하기도 했는데, 이 은행은 은이 강세이던 시절 미국에서 가장 큰 은행이었습니다. 1881년에는 네바다주 의회 미 상원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습니다. 정치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 은 화폐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라, 이를 홍보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은 그를 ‘은왕(銀王)’, ‘실버킹’으로 불렀습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큰 저택을 짓기 위해 놉힐 꼭대기 부지에 땅을 매입했습니다. 그리고 1894년 제임스가 죽은 후, 그의 두 딸은 아버지를 기리기 위한 건축물로 호텔을 세웁니다. 성인 ‘페어’에 언덕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접미사 ‘몬트(mont)’를 붙여 만든 이름 ‘페어몬트’의 탄생입니다. 참고로 그의 큰딸은 백만장자 헤르멘 오릭스와 결혼했고, 둘째딸은 미국의 대부호 중 한 명인 밴더빌트 가문으로 시집을 갑니다.
페어몬트 호텔은 개관 전부터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오픈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캘리포니아에 대지진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건물이 무너진 것은 아니지만, 3일간 지속된 후속 화재로 고급 내장재와 시설이 타버렸습니다. 당시 호텔은 회색 화강암, 크림색 대리석, 테라코타 석재를 기본으로 수공예 가구, 수입산 카펫으로 치장된 상태였다고 하니 피해가 어마어마했겠지요.
이렇게 폐허가 된 현장을 캘리포니아 최초 여성 건축사인 줄리아 모건이 리모델링을 맡게 됐습니다. 그리고 호텔은 정확히 1년 후 다시 오픈했습니다. 그 때부터 페어몬트는 샌프란시스코의 재건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자 사교 모임의 장이 됐습니다. 1945년 부동산 개발업자 벤자민 스위그에게 인수된 후에는 당대 최고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도로시 드레이퍼를 통해 화려하게 재탄생합니다.
1947년 오픈한 페어몬트의 디너클럽인 ‘베네시아룸’은 인종차별의 장벽을 허문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당시 백인 디너 클럽에서는 흑인 뮤지션을 초청하는 일도 드물었고, 초대해도 객실 제공을 하지 않았는데, 페어몬트는 백인 뮤지션과 동등하게 대우했다고 합니다.
페어몬트 호텔은 1999년 캐나다 호텔 기업인 ‘캐나디언 퍼시픽 호텔’에 지분이 인수됩니다. 페어몬트 호텔 본사가 캐나다에 있는 이유입니다. 캐나다 퀘벡의 페어몬트 샤또 프롱트낙 호텔은 드라마 ‘도깨비’ 촬영 현장으로도 유명합니다. 공유와 김고은이 다시 만나는 그곳입니다.
이렇게 페어 가문은 페어몬트를 운영한 기간이 많지 않습니다. 샌프란시스코 호텔도 개관 전 지분을 팔았다가, 다시 사들였다 되파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러나 호텔 주인이 여러 번 바뀌어도 ‘페어몬트’라는 이름은 변치 않고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름이 주는 고급스러운 느낌 때문이 아닐까 하는데요. 이것이 ‘브랜드의 가치’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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