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오전 7시 충북 음성군의 버스 정류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터로 가는 통근버스에 오르고 있다. 이들은 임대아파트를 통째로 기숙사처럼 쓰며 생활한다.

지난 25일 저녁 8시 충북 음성군 금왕읍. 특수 플라스틱으로 방음 판 등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네팔인 라나(36)씨는 야근을 하다가 저녁 끼니를 놓쳤다. 가게 대부분이 이미 문을 닫아 거리가 어두컴컴했다. 라나씨는 휴대전화로 이리저리 연락한 끝에 영업 중인 해물 칼국수집을 찾아냈다.

네팔식 인사말로 “나마스테” 하며 식당 문을 열자 “나마스테”라는 말이 돌아왔다. 주방장과 서빙 직원 모두 네팔인이었고, 서로 연락이 닿아 라나씨는 늦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직원은 식탁 위 버너에서 익숙한 솜씨로 낙지를 데치고 물김치를 내왔다. ‘한국인 없는 한국’ 풍경이었다.

음성은 주민 중 외국인 비율이 15.9%에 이른다. 전국 어느 시군구보다 높은 수치다. 길 가는 사람 붙잡으면 6명 중 1명이 외국인인 셈이다. 작년 11월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22년 지자체 외국인 주민 현황’에서 전체 주민 중 3개월 초과 장기 거주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이렇게 나타났다.

음성의 외국인들은 대부분 인근 산업 단지나 농장에서 일한다. 과거 음성은 넓은 평야에서 농업이 발달했고 또 한때 우리나라 최대 금광 지대이기도 했다. 지금은 수도권 개발 규제를 피하려는 공장들이 그나마 경기도와 맞붙어 있어 교통이 좋고 땅값은 싼 음성으로 몰린다. 음성의 농촌은 고령화가 심각하다. 공업과 농업에서 부족한 일손을 외국인 인력으로 빠르게 채워나간 것이다.

“음성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인기 있는 곳”이라고 외국인들은 입을 모은다. 스리랑카 출신으로 음성에서 2006년부터 살고 있는 수미(43)씨는 “여기서 먼저 목돈을 벌고 귀국한 사람들이 ‘괜찮았다’며 추천해서 오게 됐다”며 “스리랑카에서 음성은 서울만큼 유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라나씨는 8년 전 한국에 처음 입국할 당시 경북 포항의 단기 근로자 자격이었다. 그러나 10개월 이후 음성으로 직장을 옮겼고 7년 넘게 계속 살고 있다. 라나씨는 “한국어 공부를 하기 좋다고 해서 왔는데 고향의 시골 풍경과 비슷해 마음이 더 편해졌다”며 “이곳에서 아이를 낳고 계속 살고 싶다”고 했다. 라나씨가 사는 아파트에는 그가 친하게 지내던 네팔인 부부 3쌍도 이웃으로 입주해 있다.

충북 음성군은 외국인 주민의 안정적 정착에 힘을 쏟고 있다. 사진은 외국인지원센터 전경. /뉴스1

일찍부터 지역 내에 국적별로 이주민 커뮤니티가 자리 잡았다는 것이 음성의 특징이다. 가장 오래된 모임인 필리핀 커뮤니티는 17년 동안 운영하면서 국내 타 지역 필리핀인과 정기적으로 농구 대회를 개최할 정도로 성장했다고 한다. 이런 커뮤니티는 같은 나라 출신끼리 모여 어려운 일은 서로 도우면서 범법 행위는 자체적으로 막는 기능을 한다.

2006년 민간에서 이주민 커뮤니티를 돕는 음성외국인도움센터(소피아외국인센터)가 들어섰고, 2020년에는 음성군이 직접 나서 외국인지원센터를 세워 외국인 노동자 정착을 돕고 있다. 이 기관들은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법률 상담 등을 제공하면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노동자가 한데 모이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신덕상 한국전문대학국제교류협의회 회장은 “이주민들끼리 뭉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이렇게 생겨나는 여러 커뮤니티를 건강한 방향으로 이끌며 우리 사회에 녹아들 수 있도록 하는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존 지역 주민에게도 외국인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한 축이 됐다. 음성 금왕읍의 한 공장 사장은 “일 잘하고 귀국하는 직원에게 같은 국적의 믿을 만한 사람을 추천받는다”며 “예전에 같이 일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네팔과 캄보디아 쪽 노동자들을 계속 쓰게 된다”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신뢰가 생긴 것이다.

실제로 법무부에 따르면, 전국 등록 외국인의 국적별 비율은 중국 35%, 베트남 17%, 네팔 4%, 우즈베크 4%, 캄보디아 4% 순이다. 이에 비해 음성군에서는 중국(18%)과 베트남(11%)이 비교적 적은 반면 네팔(11%)과 캄보디아(10%), 타이(6%) 등이 많은 편이다.

그래픽=송윤혜

일부 주민은 치안 문제를 일으킨다고 흔히 부정적으로 여기던 외국인 불법 체류자를 단속하는 것을 오히려 싫어한다. 불법 체류자를 잡아가면 노동자와 소비자가 부족해져 지역 경제가 타격받는다는 것이다. 25년간 빵집을 운영한 김미랑(51)씨는 “대대적인 불법 체류자 단속 이후 거리에 외국인이 사라지면서 매출이 곧장 20% 떨어지는 걸 보고 당황했다”고 했다. 음성 삼성면에서 인력 사무소를 운영하는 강모씨는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지역이라고 집중 단속을 하니 외국인 인력이 경기 오산 등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아 걱정”이라며 “공장·농장·상점 할 것 없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음성은 한국의 다른 지역보다도 먼저 ‘국제도시’가 됐다. 음성에 산 지 6개월 된 네팔인 수수미(24)씨는 “이곳에서 캄보디아 친구를 사귄 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고 했다. 음성에 15년 살다가 작년부터 옷 가게를 운영하는 베트남 출신 루미안씨는 “할머니들이 옷 싸다고 사 가시면서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신기해한다”고 했다. 또 음성의 스리랑카 사람들은 오는 4월 스리랑카 달력 기준으로 새해를 축하하는 축제를 처음으로 열 예정이다. 스리랑카인 약 500명이 참여한다고 한다. 라나씨가 방문했던 식당의 주방장 러지미(41)씨는 다양한 한식 요리를 익혀 2년 뒤에는 네팔에서 직접 한식당을 차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행안부 발표에서 전국 외국인 비율은 4.4%이고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어쩌면 음성은 한국에 닥칠 미래를 먼저 볼 수 있는 곳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