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 30분. 여행자의 배꼽시계는 정확하다. 화려한 분수쇼와 불꽃놀이가 끝나고 주섬주섬 일어서자마자 배가 고팠다. 저녁을 든든히 먹긴 했지만, 이 시간이면 현지식 안주에 맥주 한 캔이 간절해진다. 그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음식 냄새와 시끌벅적한 소리를 따라 무작정 걷는 것이다. ‘어디서 이렇게 맛있는 냄새가’ 하고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온갖 길거리 음식을 들고 있는 여행자들로 북적거리는 골목에 다다른다. 야시장이다.
선셋타운에서 20분 정도 밤바다를 따라 걸으면 알록달록한 전구들이 머리 위에 떠 있는 시장이 나타난다. 베트남 최초의 해변 야시장 ‘부이 페스트 바자(VUI-Fest Bazaar)’. 이탈리아 베네치아 골목을 본뜬 것 같은 유럽식 건물에서 베트남·튀르키예·중국 등 세계 각지 음식을 맛본다. 식당과 바다를 보며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야외 펍(pub)이 들어서 있다. ‘야식’이라는 확실한 목적을 가진 이들은 그곳으로 들어간다.
메뉴 결정에 소질이 없거나 이것저것 다 먹어보고 싶다면 골목에 늘어선 푸드 트럭을 ‘찍먹’해보는 방법이 있다. 유독 줄이 긴 트럭 앞으로 달려가 보니 한국에서 유명한 철판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베트남까지 와서 이걸 먹을 생각은 없었는데, 과일의 나라는 역시 달랐다. 망고를 아낌없이 우수수 쏟아 넣는 모습에 홀려 줄을 섰다. 10분을 기다려 돌돌 말린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물곤 생각했다. ‘이게 진짜 망고 아이스크림이구나’.
야시장엔 뮤직 바나 가라오케는 없다. 그러나 거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흥’이 있다. 야외 테이블에서 맥주를 홀짝이다 보면 신나는 음악 소리와 함께 춤추는 청년들이 나타난다. 가이드는 “야시장 식당 직원들”이라고 설명했는데, 냄비·프라이팬 같은 조리 도구를 두들기며 몸을 흔드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난타’의 야시장 버전이랄까. 박자에 맞춰 나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이며 박수를 치게 된다. 한바탕 열기가 지나가고 나니, 얼굴을 살짝 스치는 바닷바람과 맥주 한 모금이 왠지 더 시원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