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 A씨가 인천 남동구 간석동 도로변에서 단독 추돌 사고를 냈다. 구청 측은 변상금 647만9000원을 부과했다. 뭔가가 박살 났기 때문이다. 차가 들이받은 것은 무엇일까?① 중앙분리대② 신호등③ 은행나무
◇미안하다… 몰라봤다
바깥에 있다고 공짜가 아니다. 지난해 2월 발생한 이 사고, 피해자는 나무였다. 순간적으로 은행(銀行)을 떠올리게 하는 금액. 시내 도로에 설치하는 중앙분리대가 보통 m당 50만원 안팎, 신호등 기둥이 200만~1000만원임을 감안하면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 몸값이다. 신록의 계절, 식목 시즌마다 삼삼오오 뒷산에 묘목 심으러 가는 발길이 이어지지만, 정작 가장 주변의 나무 ‘가로수’ 가치에 대해서는 어두운 게 현실. 돈으로 접근하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다.
“비싸니 각별히 조심하라”며 온라인상에 떠도는 ‘가로수 변상 현황’ 사진도 유명하다. 경기도 성남시 태평로에 서 있던 큰 은행나무, 지름이 40㎝였다. 변상금 834만원. 도로 확장 등을 위한 ‘제거’를 제외하면, 가로수 훼손의 가장 흔한 이유는 교통사고라고 한다. 타박상, 골절상, 심하면 화상(火傷)에 따른 회생 불가 판정도 나온다. 한 구청 관계자는 “전문가가 금액을 산정하는데, 수령이 많고 몸통이 굵을수록 공사비 등 비용이 커진다”면서 “생각보다 비싸다고 느낄 수 있지만 충돌 시 충격을 흡수하거나 더 큰 사고를 막는 방어막 역할도 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가로수길 가로수’ 값어치는?
서울 시내 최다 가로수는 은행나무. 가로수 최다 보유 지자체는 강남구. 신사동에 은행나무로 조성한 ‘가로수길’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국립산림과학원 박찬열 연구관은 지난해 이 일대 시민 답사 조사를 진행했다. 나무 자원의 가치를 정량화하는 분석 도구 ‘i-Tree’로 탄소 저감 및 수해 방지 등 금전적 효과를 산출했다. 결과는? 헥타르(100×100m)당 매년 약 96만원. 나무가 자랄수록 효과는 증가한다. 오래된 나무가 많은 종로구 효자로는 약 265만원, 노원구 동일로~덕릉로~월계로는 219만원, 마포구 연세로~성산로는 104만원 선. 박 연구관은 “정서 안정 등 심리 치료 효과까지 수치화한다면 금액은 더 커질 것”이라며 “주민들의 병원비 비교 등을 통해 가로수의 더 넓은 효용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가로수 수종은 벚나무다. 벚꽃 축제를 열려고 지역마다 공격적으로 심었기 때문이다. 이맘때 가장 아름다운 나무, 미모와 재능을 겸비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벚나무의 이산화탄소 저장량은 연간 9.5㎏에 달한다. 수령 25년쯤 된 벚나무 250그루가 1년 간 자동차 한 대가 내뿜는 이산화탄소 2.4t을 흡수한다고 한다. 열과 성을 다해 꽃피우고 탄소까지 가둬주는 벚나무는 그러나 위태롭다. 지난해 경기도 덕풍터널 인근에서 택시에 받힌 왕벚나무 네 그루(변상금 574만7000원)와 음주 운전 차량에 치인 서울 공릉동 아파트 앞 벚나무(변상금 124만1000원)처럼. 때 이른 ‘벚꽃 엔딩’이었다.
◇‘닭발’ 가로수… 독극물 피살까지
도심의 살풍경을 바꾸고, 콧구멍을 맑게 하며, 가수 이미자가 “살아있는 가로수엔 봄이 오네… 꽃이 피네”(‘살아있는 가로수’) 노래한 인내의 메타포. 그럼에도 인정사정없이 잘려나간다. 그 증거가 ‘닭발 나무’다. 봄철만 되면 거의 몸통만 남기고 뭉텅뭉텅 베어내는 강전정(强剪定) 탓에 품위를 잃고 닭발로 전락하는 것이다. 미용실 자주 가면 돈 많이 드니 아예 박박 민다는 식의 효율성 차원이라지만, 흉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환경부가 수목의 4분의1 이상을 자르지 않도록 하는 새로운 가지치기 지침을 마련했음에도 마찬가지다. 회사원 한모(37)씨는 “이파리를 세모·네모 모양으로 잘라 거리의 개성을 살리는 동네가 있는 반면 가로수가 마냥 불쌍해 보이는 동네도 있다”며 “가로수에서 그 동네 수준이 드러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횟집 앞에서 염분에 고사하고, 불법 현수막에 몸이 파여 썩어가는 가로수들…. 의도적 ‘독살’도 벌어진다. 농사나 장사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가 대부분. 2022년에는 서울 북가좌동 스타벅스 앞 플라타너스에 근조(謹弔) 리본이 달렸다. 대로변 다른 가로수와는 달리 매장 앞 세 그루만 잎이 누렇게 뜨더니 후드득 떨어졌다. 경찰 수사 결과 누군가 제초제 ‘근사미’를 대량 살포한 사실이 드러났다. 환경 단체 등이 가세해 논란이 커지자 인근 건물 관리인은 자신이 농약을 부었다는 진술서를 제출하고 변상금 780만원을 냈다. 나무는 죽은 뒤였다. 땅에서 뽑아내기 전, 서대문구청 측은 며칠간 그 가로수에 이런 애도문을 걸었다. “이 나무는 누군가의 고독성 농약 살포로 말라죽은 양버즘나무로, 안타까운 사실을 기억하고 사회적 교훈으로 삼기 위해 남겨두었습니다. 이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가로수에 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입양해 돌봅니다, 더 잘 자라도록
필요해서 심은 나무, 그러나 너무 쉽게 버려지는 나무. 이를테면 버즘나무는 주요 민원 대상이었다. 꽃가루 때문이다. 경기도 하남시청은 가로수 교체 계획을 세워 매각을 검토했다. 쉽지 않았다. 생각을 바꿨다. 옮겨서 키워보기로. 2000년 4월, 약 2만7000평 규모의 나대지(裸垈地)에 오갈 데 없는 가로수들을 데려왔다. 한강변 도로 개설 공사로 베일 운명이던 소나무 159그루, 도로 확장 공사로 상처 난 은행나무 300그루….
국내 최초 ‘나무 고아원’이 생겨난 배경이다. 지금은 46종 2만3000여 그루가 모여 울창한 숲을 이룬다. 고아원 입구에는 마흔 살 넘은 수양버들이 서 있다. 동부파출소 앞에서 옮겨온 나무. 병들어 썩어가던 나무. 이틀간 대수술로 살려내 이곳 얼굴이 된 상징성이 큰 나무다. 하남시청 측은 “유아들을 위한 체험 숲으로 가꿔 환경 교육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집 앞 가로수, 혹시 유심히 살펴보신 적 있는지. 마음에 들면 하나 골라 ‘반려 가로수’로 삼을 수 있다. 올해부터 제주도는 일반 시민이 집 근처 가로수를 입양해 돌볼 수 있도록 ‘반려 가로수’ 제도를 시범 실시한다. 단체나 기관이 아닌 개인이 자율적으로 가로수의 보호자가 되는 것이다. 국립제주박물관~사라봉 입구, 서귀포 일주서로 등 2660m 구간에 늘어선 먼나무·이팝나무·느티나무가 그 대상. 신청자는 2년 동안 나무 주변 잡초를 뽑거나 쓰레기를 줍고 물을 주는 일을 맡는다. 도청 측은 “직접 가로수 주인이 돼 키워낸 나무에 대한 애정이 도시 환경 개선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그럼 올해도 잎이 울창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