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 굽이마다 벚꽃의 향연이다. 세종대교에서 신륵사까지 벚나무가 빼곡한 여주시 강변북로 산책로를 벗어나 어영실로를 따라가다 보면 도자마을 사이로 ‘장작솥뚜껑닭볶음탕’에 이른다. 천년 고찰 신륵사에서 차로는 지척이고, 걷기에도 멀지 않다. 띄엄띄엄 터를 잡은 전원주택 몇 채가 있을 뿐 주변은 온통 숲이다. 해 질 무렵, 산새들은 분주하고 저녁 공기는 향긋하다.
식당 밖 산더미처럼 쌓인 장작 더미와 열병하듯 늘어선 카트 위 큼지막한 솥뚜껑들이 먼저 손님을 맞이한다. 카트도 솥뚜껑도 직접 주문 제작했다. 지난해 새 단장을 마친 식당 건물은 웅장하고 정갈하다. 메뉴는 닭볶음탕 한 가지. 인원에 따라 1마리(8만원)와 1.5마리(11만5000원) 가운데 하나를 고를 수 있을 뿐이다.
눈인사를 나누고 예약을 확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님이 카트를 끌고 나타났다. 받침대 위에 서너 뼘 크기의 솥뚜껑을 걸고 장작불로 끓여낸 닭볶음탕은 일행의 탄성을 불렀다. 장작불은 솥뚜껑을 녹일 기세로 이글거리고, 닭볶음탕은 장작불 위에서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화력이 엄청나 18호 닭 한 마리가 다 익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토치로 그을린 어설픈 불맛으로는 흉내 내기 어려운 제대로 된 불맛이다. 닭볶음탕이 내뿜는 진한 향기로 식욕은 폭발 직전이다.
장작솥뚜껑닭볶음탕은 호방하다. 숲으로 둘러싸인 식당 규모와 솥뚜껑 크기는 물론 식재료도 거침이 없다. 닭은 1750그램 안팎의 18호를 쓴다. 여느 프랜차이즈 치킨집에서 쓰는 10호 안팎의 닭과는 뼈 굵기부터 다르다. 부재료도 마찬가지다. 통감자도 대파도 양배추도 버섯도 가래떡도 큼지막하다. 갓 담근 김치를 비롯해 여섯 가지 반찬들도 푸짐하고 버릴 게 없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지고, 불멍에 빠져든 일행은 자리를 뜰 기세가 없다. 향긋한 봄밤의 공기를 호흡하며 지평막걸리를 곁들여 볶음밥까지 비우고 나니, 세상살이조차 거칠 게 없을 듯하다.
‘셰프박명주브라더’의 닭볶음탕은 호방함 대신 섬세함으로 승부를 걸었다. 서울대입구역 2번 출구를 나와 ‘샤로수길’ 안내 표지를 따라 동쪽으로 접어들면 골목 양편에 눈길을 건네기 어려울 만큼 카페와 주점, 식당들이 즐비하다. 관악구청 맞은편에서 낙성대 인헌초등학교까지 이어지는 골목에는 ‘샤로수길, 서울시 로컬브랜드 상권 육성 사업 공모 선정’을 자축하는 현수막이 나부끼고, 한산할 법한 평일 낮인데도 청춘 남녀들이 북적인다. 셰프박명주브라더는 샤로수길 터줏대감이다.
샤로수길 초입에 자리한 이 식당에는 산새 소리 가득한 숲 대신 수묵 산수화와 사군자, 서예 액자가 곳곳에 걸려있다. 이글거리는 장작불과 큼지막한 솥뚜껑 대신 태블릿 메뉴판과 아담한 버너가 손님을 맞는다. 메뉴는 이태리 치킨스튜, 타이 치킨스튜, 토마토갈릭 치킨스튜 세 가지. ‘이태리’에는 토마토와 치즈가, ‘타이’에는 토마토와 레몬그라스와 고수 분말이, ‘토마토갈릭’에는 토마토와 마늘이 더해진다. 첫 방문이라면 박명주 셰프의 시그니처 메뉴인 ‘이태리 치킨스튜’(2인 3만2000원, 3인 4만5000원, 4인 5만6000원)가 무난하다.
조리를 마친 치킨스튜가 테이블 위 버너에 오르기까지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다. 일부러 한가한 오후 시간에 방문한 탓이다. 보통 밥때라면 대기 시간과 조리 시간이 얼추 비슷할 터이다. ‘이태리 치킨스튜’는 이탈리아 풍미를 가미한 이색적인 닭볶음탕이다. 토막 닭도, 기본 양념도, 양파, 당근, 대파, 양배추 같은 부재료도 닭볶음탕과 다르지 않다. 감자 대신 토마토를 통째로 넣으면서 닭볶음탕은 치킨스튜로 변신한다. 닭볶음탕의 매콤함 말고도 달콤함과 새콤함이 황금 비율로 조화를 이룬다. 떡 대신 파스타 세 종류(스파게티, 푸실리, 파르펠레)가 들어가고, 깨소금 대신 바질을 듬뿍 얹어 마무리한다. 볶음밥에서도 리소토 풍미가 강하다.
닭고기는 세대와 국경, 문화를 뛰어넘는다. 몇 해 전부터 돼지고기를 앞질러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육류가 되었다. 좋아하는 부위도 제각각이라 다툴 일이 없다. 호방하고 거침없는 닭볶음탕이든, 섬세하고 이색적인 치킨스튜든 정성 들여 조리한 닭 한 마리를 둘러싸고 술잔을 기울이는 것만큼 흐뭇한 풍경은 없다. 닭고기는 언제나 옳다.
※‘양세욱의 호모 코쿠엔스’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