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입니다. ‘조지하다’가 무슨 뜻일까요?”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가 불쑥 묻는다. 답하지 못했다. “‘심굴하다’는? ‘계입하다’는? ‘개입’이 아니고 ‘계입’입니다.” 그는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몇 가지만 정리하자면 이렇다.
①호천
②건정
하나도 모르겠다. 국어 질문인 것 같은데 답하지 못해 부끄러워질 찰나, 그가 말했다. “모르는 게 당연해요. 국어사전에 없는 말입니다. ‘법전’(法典)에만 존재하죠.”
‘법’(法) 하면 왠지 따분한 느낌이 든다. 국립국어원 공공언어지원단장을 지낸 김세중(64) 박사는 그 이유가 법전 속 ‘문법적 오류’에 있다고 6년째 주장하고 있다. 국민이 지키기로 약속한 사회 규범이 법이고, 법을 명문화한 것이 법전이다. 법전은 법리 면에서 완벽해야 한다. 이를 표현한 문장도 그래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비문(非文)과 오류투성이라면? 법전의 현대화를 주장하며 ‘나 홀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김 박사를 만났다.
◇이런 법전,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래서 퀴즈의 답이 뭔가요?
“‘조지(阻止)하다’는 ‘막힐 조’를 써 ‘하지 못하게 하다’의 뜻으로 쓰여요. 형법 제136조에 등장하죠. 그런데 이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저지(沮止)하다’예요. ‘조지’라는 말은 없죠.”
-왜 이런 일이 생겼나요?
“일본어에서는 ‘막는다’는 뜻으로 ‘沮止’와 ‘阻止’ 둘 다 써요. 일본 법전을 참고하다 보니 단어를 그대로 옮겨 쓴 거죠. 우리나라 기본법은 1950~1960년대에 만들어졌어요. 당시 법을 만든 분들은 대부분 1910~1930년 일제강점기에 공부했던 분들입니다. 일본 법전을 기계적으로 번역하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긴 거예요.”
-다른 말들은요?
“조금씩 달라요. ‘심굴하다’는 근원이 어딘지조차 알기 어려워요. 민법 제241조에 ‘토지의 심굴금지’라는 조항으로 나오는데, 풀이하면 자신의 땅이라 해도 이웃집 지반이 붕괴할 정도로 파서는 안 된다는 뜻이거든요. ‘깊게 파다’는 의미를 표현하려고 ‘팔 굴(掘)’ 앞에 ‘깊을 심(深)’을 넣은 것 같아요. 단어를 새로 만든 거죠. 상법 제73조에 적힌 ‘계입(計入)한’은 ‘계산에 넣은’이라는 뜻이고요.”
‘호천’은 호수와 하천을, ‘건정’은 열쇠와 자물쇠를 포함하는 잠금장치를 이르는 말이다. 역시 사전에는 없다. 그가 이런 식으로 오류를 지적한 조항만 헌법·민법·민사소송법·상법·형법·형사소송법 등 기본 6법에서 수백 개에 이른다.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나는 밥에 먹는다.’ 이 문장은 확실히 이상하다. ‘나는 밥을 먹는다’가 맞다. 김 박사는 “놀랍게도 법전에는 이런 식의 비문이 곳곳에 있다”고 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요?
“민법 제2조 1항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 이른바 ‘신의성실의 원칙’이에요. 문제는 조사를 잘못 썼다는 거예요. ‘신의에 좇아’가 아니라 ‘신의를 좇아’라고 써야 해요. ‘나는 밥을 먹는다’를 ‘나는 밥에 먹는다’라고 쓴 셈이에요.’
그는 우연한 계기로 법에 관심을 갖게 됐다. 국립국어원 퇴직 후 수유역 근처에 있는 법무사 지인의 사무실 공간을 빌려 매일 출근하듯 도장을 찍었다. 그러다 지인 일에 도움이 되고 싶어 법전을 읽기 시작했다. 2018년 10월, 민법부터 펼쳤다.
-그때 발견했군요.
“맞아요. 오류를 형광펜으로 표시하기 시작했어요. 핑크색은 문법상 오류, 주황색은 낡거나 쓰지 않는 단어, 노란색은 조사의 문제 등으로 구분했어요. 띄어쓰기 오류는 ‘∨’ 표시를 했고요. 민법 1118조까지 오류가 무려 340개 조가 넘더군요. 문법 전공자 입장에서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어요. ‘오류의 보고’ 같은 느낌이었죠.”
김 박사는 2년 전 이런 내용을 지적한 ‘민법의 비문’에 이어, 최근 범위를 6법으로 넓힌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를 펴냈다. 그가 이렇게 ‘법’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법전에 오류 좀 있어도 사는 데 지장 없는 거 아닌가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법을 따분하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몇 번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 사전에 없는 단어, 지나치게 낡아 쓰이지 않는 단어가 너무 많아요. 국민이 법에 접근할 수 없도록 막는 차단막처럼요.”
-그럼 안 되나요?
“법을 만든 이유는 국민이 법을 따르길 기대하기 때문이에요. 법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해놓고 어떻게 법을 따르라고 요구할 수 있죠? 최근에는 홀로 소송하는 사람도 늘고 있어요. 대법원 홈페이지에서 소송하는 법을 안내할 정도죠. 이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법전은 큰 장애물이에요.”
-그래서 책을 썼군요.
“부끄러웠어요. 언어학자의 양심이라고 할까요. 기본법이 제정될 무렵에는 문맹률이 높아 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극소수였어요. 내용만 중요하지, 문법에 맞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다르잖아요.”
-쉽지 않았을 텐데요.
“맞아요. 저는 언어학자라 솔직히 법을 잘 몰라요. 하지만 문법적 오류를 제대로 고치려면 법조문의 의미와 취지를 알아야 했어요. 그래서 법리 공부를 했죠. 법대생이 보는 2000쪽짜리 책을 대여섯 권 샀어요. 그러다 보니 민법만 다루는 데도 집필에 3년이 걸렸어요.”
◇변호사도 모르는 법조문
야심 차게 첫 책을 냈지만, 곧 잊혔다. 국회도, 교수도, 법학자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이유를 이렇게 진단했다. “내가 ‘듣보잡’이라서 그래요.”
-’듣보잡’이라니요?
“‘김세중’이라는 사람은 법학 분야에서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니 법조계 사람들이 거들떠나 보겠어요? 말하자면 실패한 거죠. 그래서 오기가 발동했어요. 민법을 포함해 6법을 아우르는 책을 쓰기로 했죠.”
-이번 책은 얼마나 걸렸나요.
“1년 반 정도요. 주목을 끌고 싶어 책 제목을 발칙하게 ‘우리 법은 아직도 1950년대다’라는 식으로 지었죠. 현대에 걸맞지 않는 ‘후진적인’ 법이라는 점을 부각하고 싶었어요.”
-반응은 어떻던가요.
“동의하는 법조인이 많았어요. 한 원로 법조인은 이런 말을 했어요. ‘언제 돼도 되긴 될 거야.’ 굉장히 기뻤지만, 한편으로 서운했어요. 누구나 공감하지만 시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서요.”
-그래도 반향이 있네요.
“재미있는 일이 있었어요. 이번 책이 나온 뒤 검사 출신 원로 변호사 두 분에게 책을 선물했죠. 근데 ‘조지하다’는 말이 형법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요. 한 분은 제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곤 즉시 사무실로 뛰어가 법전을 확인하더군요. 믿을 수 없었던 거예요.”
-어떻게 모를 수 있죠?
“익숙해졌기 때문이에요. 현재는 법전이 한글로 제공되지만, 예전에는 국한문 혼용을 했죠. 그분들은 ‘阻止하다’의 의미에 중점을 둬 공부했고, 표현은 염두에 두지 않은 거예요.”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저는 차마 법을 의심하지 못하고 제 국어 능력을 의심했습니다. 역시 제 국어 감각이 이상한 게 아니었습니다.’ 김 박사가 파일 보관함에서 A4 용지 여러 장을 꺼냈다. 이번 책을 출간한 뒤 법조인 준비생들로부터 받은 편지다.
-학생들도 고역이겠네요.
“지금도 로스쿨 재학생과 법대생은 법전의 문법적 오류 때문에 공부에 어려움을 겪어요. ‘언어적 학대’ 같아요. 하지만 어떻게 기성 법조인을 상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겠어요. 이게 문제예요. 그렇게 법조인이 되면 법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요. 잘못된 문장도 익숙해지면 맞는 말처럼 느껴지거든요.”
-목소리를 낼 사람이 없겠어요.
“맞아요. 법조인은 개선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국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으니 일부는 지적인 우월감을 갖기도 하죠. 국어학자는 법률 언어에 관심이 없어요. 앞장서 요구하는 단체가 없으니 국회도 움직이지 않죠. ‘그간 잘 살았는데, 뭐가 문제야?’라면서요.”
낡은 법전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은 여러 차례 있었다. 2015년과 2018년 입법 예고된 민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특히 2015년 개정안은 1118조까지 있는 민법 조문 중 1057개(약 95%)를 새로 썼을 정도다. 하지만 19·20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아 모두 무산됐다.
-왜죠?
“당시 대부분의 민법학자들이 시큰둥했어요. ‘법조문은 손대지 않는 게 맞다’는 거죠. 법조인은 법을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개정이 되겠어요? 많을 땐 국회의원의 5분의 1이 법조인 출신인 우리나라에서요.”
그는 “될 때까지 해보겠다”고 했다. 김 박사는 이번 책을 출간하고 막역한 친구와 둘만 사용하는 소셜미디어 공간에 이렇게 적었다. ‘전쟁은 시작됐다. 아마 몇 년은 걸릴 것이다.’ 친구의 답은 이랬다. ‘넌 어마어마한 일을 시작했다. 호흡을 더 길게 가져가도 된다’.
-70여 년간 안 된 일인데, 과연 될까요?
“이건 국격의 문제예요.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는 말이 있잖아요. 또 우리 국민들은 법을 이해할 권리, 알 권리가 있고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린 ‘법 앞에 평등하지 않은’ 셈입니다. 이제는 바로잡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