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쇠씨가 종종 혼자 밥을 먹으러 다니는 건 외톨이여서가 아니었다. 어떤 음식은 누군가와 함께 먹기엔 좀 민망하기 때문이었다. 너무 값이 싸서, 너무 허름해서, 너무 멀어서, 심지어 너무 불친절하거나 지저분해서.... 두쇠씨는 그런 식당에 끌리곤 했다. 누굴 데려갔다간 뻘쭘해지기 십상이었다. 뭐 이런 데를 다니느냐는 뒷말을 듣느니 조용히 혼자 가는 게 현명했다.
유행이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요즘엔 젊은 사람들이 그런 곳을 경쟁적으로 찾아 다닌다고 했다. 낡은 간판과 찌그러진 냄비에 환호작약하며 인터넷에 올린다. 그 덕에 두쇠씨도 발품 안 팔고 꽤 괜찮은 식당을 건지곤 했다.
두쇠씨는 종로2가 낙원상가로 향했다. 악기상가로 이름난 그곳 지하에 시장이 있었다. 1960년대 말 지어진 이 원조 주상복합 건물은 1층을 삼일대로가 관통하는 필로티 구조다. 두쇠씨는 2층 악기상가에 가봤고 그 위에 있는 극장과 야외 공연장도 갔었지만 15층 규모에 51평형까지 있다는 아파트엔 가본 일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지하에는 무엇이 있는지도 몰랐다.
낙원상가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는 낯설었다. 페인트가 벗겨진 벽과 허름한 옛날식 계단엔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불법 적치물 없이 깨끗한 입구가 오히려 스산했다. ‘낙원시장’이라는 간판만 대낮에도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오토바이와 삼륜차들이 아무렇게나 서있는 입구를 지나 시장이 있었다. 총 면적의 절반은 창고로 쓰이는 듯한 이곳은 쌀집, 기름집, 정육점, 수입 잡화점까지 갖춘 곳이었다. 시장 가운데 밥집들이 밀집해 있었고 두쇠씨의 목적지인 ‘169호 나라김치반찬’은 시장 한쪽 끄트머리 1번 출입구 근처에 있었다.
6인용 식탁 두 개가 있는 이 밥집에선 80대 남자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주인 할머니는 그 맞은 편에 앉아 TV를 보다 졸다 하고 있었다. 바쁠 때는 합석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점심 메뉴는 셀프 비빔밥 단 한 가지. 5000원이었다. 이 비빔밥의 특징은 이 가게에서 파는 모든 반찬과 김치를 넣어 비벼 먹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기본 나물인 고사리·무나물·당근·시금치에 반찬으로 깻잎무침·오징어젓·무말랭이·콩자반·콩나물·무생채가 있었고 김치만 8가지가 있었다.
한쪽에 양푼이 쌓여 있었는데 그 크기가 냉면 대접은 댈 것도 아니고 공중 목욕탕에서 물 끼얹을 때 쓰는 작은 대야만 했다. 족히 비빔밥 3인분은 담을 수 있는 크기여서 밥을 세 주걱이나 펐는데도 바닥에 얕게 깔렸다. 나물과 반찬을 양껏 담다간 짜지겠지, 하고 생각하는데 주인 할머니가 말했다. “조금씩 퍼요. 먹고 모질르면 더 먹어. 냄기면 안 돼.”
비빔밥에 어울릴 만한 나물과 반찬을 다 담고 나서 달걀 프라이 하나를 얹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자 할머니가 시래기 된장국을 내줬다. 비빔밥 특유의 빨·주·노·초 색감이 최고급 한식집의 그것과 견줘 전혀 손색이 없었다. 물론 다진 고기 볶음이 빠졌지만 5000원에 언감생심이었다.
두쇠씨는 집에서도 가끔 비빔밥을 해 먹지만 이렇게 많은 나물과 고명을 올리기는 불가능하다. 나물비빔밥 한 그릇 1만원 받는 비빔밥 프랜차이즈에서도 고작 5~6가지 나물을 찔끔 올려줄 뿐이다. 비빔밥은 재료가 많을수록 맛있어지니 이 집 비빔밥 맛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 맛을 능가하는 비빔밥은 소머리 육수로 밥을 짓는 전주비빔밥뿐일 것이었다. 이게 바로 종갓집 명절 쇤 다음 날 먹는 비빔밥 수준이겠군, 하고 두쇠씨는 생각했다. 마이클 잭슨이 이 집 비빔밥을 먹었더라면 굳이 호텔 비빔밥을 먹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저녁에는 안주류 위주로 팔지만 나물 떨어질 때까지는 비빔밥도 계속 판다고 했다. 게다가 이 집에서는 소주가 3000원이다. 5000원이 기본이요 소주 6000원도 흔한 종로통에서 비빔밥 맘껏 퍼 담고 소주까지 곁들여 8000원이라니, 이곳이 지상 아니 지하 낙원이로구나 하고 두쇠씨는 생각했다.
두쇠씨는 낙원시장에서 나와 광화문 네거리 쪽으로 걸었다. 번쩍찬란한 건물들에서 밥을 먹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역시 맛있는 건 혼자 먹어야 돼, 하고 두쇠씨는 씩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