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가 부동산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전세 사기는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도전하는 중대 범죄다. 조직 범죄이자 ‘보증금 편취’를 노리는 금융 사기이며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사회적 재난이다. 따라서 전세 사기가 무엇인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지난해 4월 전세 사기 피해를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한 30대 여성 A씨의 인천 미추홀구 자택 앞. 현관문에 전세 사기 피해 대상 주택 안내문과 함께 수도요금 체납 안내 스티커가 붙어 있다. 악질 임대인, 이른바 ‘빌라왕’에게 당한 무수한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박상훈 기자

◇전국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조직 범죄

현재 전세 사기는 수도권, 지방 할 것 없이 대규모로 일어나고 있다. 인천 미추홀구에서는 2400여 채에서 550억원 규모 피해가 발생했다. 대전에서는 LH의 전세 임대주택 지원 제도를 악용한 사건으로 최소 600명의 임차인 피해자가 발생하였고 1000억 규모의 전세 보증금이 반환되지 않았다. 부산에서는 집주인이 170억원대 전세금을 반환하지 않고 잠적한 사건이 있었으며, 수원에서는 정씨 일가가 무자본 갭투자로 800여 채에서 225억원을 편취했다. 수도권 일대에서는 ‘빌라왕’ 김대성이 2017년부터 신축 빌라를 대상으로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전세 사기를 벌여, 1244명이 2300억원대 피해를 보았다.

전국에 걸쳐 수백억~수천억원 규모로 발생하는 전세 사기 사건은 건물주 혼자 벌일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감정평가사, 분양 대행업자, 공인 중개사, 은행원 등 다양한 조력자들과 결탁한 조직 범죄 양상을 띠고 있다. 검찰 역시 ‘범죄 집단’으로 인식하고 사건을 기소 중이다.

아파트 매매가와 전세가는 네이버 등 여러 플랫폼에 즉각적으로 반영된다. 하지만 전세 사기의 표적인 다가구·다세대·빌라(특히 신축 빌라)는 가격 정보가 공시된 곳을 찾기 힘들다. 세입자들은 해당 주택의 적정한 매매가와 전세가를 알기 어렵고, 그 전세금이 시세보다 높은지, 전세 가격과 매매 가격의 차가 어느 정도인지 등을 모르는 채 임대차 계약을 맺는다.

반면 건축주나 건축주와 한 패인 분양 대행업자, 공인 중개사는 정보를 통제하고 적극적 사기 행위를 벌이고 있다. 예를 들어, 건축주의 요청을 받은 감정평가사가 2억원 상당 주택을 3억원으로 평가하는 ‘업(up) 감정’이 존재한다. 건축주와 한 패인 공인 중개사는 매매 가격 3억원과 같은 액수만큼의 전세 가격으로 세입자를 구해 온다. 가치를 부풀린 전세 계약이 체결되면 건축주와 분양 대행업자, 공인 중개사는 수익을 나눠 챙긴다. 공인된 자격증을 가진 다양한 전문가들이 도덕적 해이에 빠져 조직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거래 관계를 손상하는 이런 ‘미들맨’에 대한 강력한 법적 제재가 뒤따라야 한다.

“없는 집을 방세 – 무지한 노파를 사기하여” 조선일보 1933년 7월 30일자

◇1933년부터 시작된 전세 사기

청년과 서민들을 떨게 하는 전세 사기는 갑작스레 나타난 사회문제가 아니다. ‘전세 사기’ 키워드로 과거 신문 기사를 검색하면 1933년 전세 사기에 관한 첫 기사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일보 1933년 7월 30일 자 기사를 보자. 사기꾼 N씨가 K씨 소유 가옥을 매입하기로 약정하고 월부로 대금을 납부하기로 한다. 그런데 대금을 완납하지 않고도 N씨는 소유주 행세를 하며 노인에게 집 한 칸을 전세 놓고 전세금을 편취하여 도주한다. 즉 매매 계약이 마무리되지도 않았는데 소유자 행세를 하며 전세금을 가로챈 것이다. 이 전세 사기 방식은 지금도 전형적 수법의 하나다.

전세 사기 수법은 점차 복잡한 양상을 띠며 진화한다. 조선일보 1938년 4월 6일 자 기사는 제목부터가 ‘전세 사기한(꾼)’이다. 집주인 C씨는 본인 주택을 동경 건물 회사에 저당을 잡히고 3000원을 빌린다. 그러고 돈을 일부러 갚지 않고 경매에 넘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숨긴 채 3명에게 전세를 주어 보증금 950원을 편취한다. 회사가 빌려준 3000원과 세입자 보증금 950원을 빼앗은 것으로, 주택 담보 금융까지 편취하는 방식으로 규모가 확대된 것이다. 현재 선순위 기망형 전세 사기와 같은 방식이다.

전세 사기는 1950년대에도 발생하였고, 1970년대에 지속적으로 나타났으며, 1981년 전후에는 악질적 전세 사기가 지면을 장식했다. 1972년 “아파트 사기 잇달아”(경향신문 1972.07.24.) 기사를 보면 건축주가 아파트 건물과 대지를 담보로 은행에서 거액을 융자받고 입주자들에게 입주금과 전세금을 받은 뒤, 은행 대출을 상환하지 않고 도주하였다.

148억원대 전세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른바 '건축왕'에게 사기죄의 법정최고형이 선고된 2024년 2월 7일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가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법원은 전세사기 건축왕 남모씨에게 사기죄 법정최고형인 징역 15년을 선고하고 범죄 수익 115억원 추징을 명령했다. /연합뉴스

지난 100년간 발생한 전세 사기 수법은 현재와 구조가 흡사하다. 다만 제도 개선이 미비한 틈을 타 더 극악한 방식으로 대형화, 조직화, 지능화하고 있다. 건축주가 감정평가사와 결탁하여 가치를 부풀리고, 분양 대행업체와 공인 중개사에게 수수료를 주고 MZ 세입자를 꾄 후, 건물 가치보다 훨씬 높은 액수의 전세 계약을 성공시키고 수익을 나눠 갖는다. 그러고 건축주는 그 건물을 새로운 주인(어떤 경우는 노숙자)에게 매도하고 잠적한다.

과거에는 악덕 건축주와 세입자의 관계였다면, 현재는 건축주가 전세 계약 체결과 동시에 새로운 집주인(바지 사장)과 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본인은 빠지면서 (대개 돈이 없는) 바지 사장과 세입자의 관계로 만드는 것이다. 범죄의 마스터 플래너인 (전세금을 받고 건물을 매도한 옛) 건축주는 유유히 법망을 빠져나가고 있다. 전세 제도 개선을 소홀히 하고 건축주를 단죄하지 않는다면, 더 악랄한 전세 사기 수법이 등장하여 서민들을 괴롭힐 것이다.

전세 사기를 개인 잘못으로 돌리는 독자가 있으리라 본다. 그런데, 만약 그 독자가 다가구와 다세대의 차이를 모른다면 그도 전세 사기 표적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왜 다가구가 전세 사기의 주요 대상이 되는지, 전입신고를 제대로 해도 전세금을 날릴 수 있는지, 전세 사기가 부동산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은 다음 회에서 설명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