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용산으로 옮겼을까? 공식적 설명은 없었다. 혹자는 풍수적 이유라고 하지만 명확하지 않다. 관상가가 등장하기도 했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말했다. 풍수와 관계없는 공간심리학적 발언이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 전부터 최근까지 2년 동안, 호사가들이 풍수와의 관계를 묻는다. 심지어 일본 아사히와 마이니치 신문, 영국 BBC방송 등 서울 주재 외신기자들까지 인터뷰 요청을 한다. 풍수학인으로서 답변할 수 없는 문제이다. 풍수적 이유라고 말하려면 “청와대가 흉지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청와대는 흉지가 아니다.
청와대 흉지설은 문재인 정부가 공식화했다.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려고 문 대통령은 2017년 취임 후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를 꾸렸다. 그런데 2년 후 2019년 1월, 유홍준(전 문화재청장) 위원은 춘추관에서 공약을 파기한다. “청와대 주요 기능을 대체할 부지를 광화문 인근에서 찾을 수 없다. 그러나 풍수상 불길한 점을 생각할 때 옮겨야 마땅하다.” 그것이 문제였다.
이 말을 들은 후임자가 청와대로 가고 싶었을까? 참고로 유홍준 교수는 풍수학자가 아니다. 그는 청와대가 ‘풍수상 불길한’ 근거를 풍수학적 관점에서 말해야 했다. 고려를 멸망시킨 조선이 새로운 도읍지를 찾을 때 최고의 풍수사들과 풍수에 밝은 문신들의 논쟁 끝에 이곳이 최종 낙점되었다. 태종·세종·세조 임금 때 흉지설이 잠깐 제기됐으나 여지없이 논박됐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세계 최빈국이었다. 북한보다 못살았다. 지금은 세계 10대 경제 대국, 6대 군사 강국이고 K컬처는 세계 최고다. 모두 청와대 대통령들 시절에 이뤄진 업적이다. 혹자는 대통령의 불행한 말로를 흉지의 근거로 삼는다. 이에 대해서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분석이 명쾌하다.
“막강한 권력을 갖는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 스스로 불행을 자초한다. 대통령제일지라도 의회 중심주의로 권력을 분산해야 대통령의 불행을 막을 수 있다.”(김종인 저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
지난 10일 총선에서 여당이 완패했다.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또 떨어졌다. 일부 정치인·언론은 대통령의 ‘레임덕’이라고 말한다. 이 또한 대통령 집무실이 풍수상 흉지인 탓일까? 마치 대통령 집무실 터가 나빠서 실패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듯한 발언도 적지 않다. 진보든 보수든 대통령이 성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와 국민 모두가 불행해진다.
풍수로 보면 청와대 터와 용산 터의 차이는 무엇인가? 청와대는 사신사(四神砂), 즉 북악산·인왕산·남산·낙산으로 둘러싸인 ‘산(山)풍수’다. 용산은 한강으로 둘러싸인 ‘물[水]풍수’가 특징이다. ‘산풍수’는 인물을 배출하고 ‘물풍수’는 재물을 늘려준다[山主人, 水主財]는 풍수 격언이 있지만, 이 또한 원론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땅[풍수]이 아니라 사람[덕]이라는 점이다. 훗날 대사헌을 지낸 어효첨(1405~1475)이 난무하는 잡술을 비판하며 세종 임금에게 풍수의 본질을 이야기한 대목을 옮겨본다.
“천명(天命·시대정신)으로 주맥(주산)을 삼고, 민심(民心)으로 안대(안산)를 삼으십시오. 천명을 굳게 하고 민심을 결합함으로써 국운이 반석같이 된다면 구차한 풍수 사설(邪說)이 어찌 들먹여지겠습니까.”(‘세종실록’)
어효첨이 풍수의 본질을 왜곡한 것이 아니다. 풍수 고전 ‘탁옥부’의 다음을 근거로 한 말이다. “임금의 성공은 덕에 있지 힘에 있지 아니하며, 그것을 지킴은 도에 있지 땅에 의한 것이 아니다(帝王之興也 以德而不以力, 其守也以道而不以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