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드레스’ 하면 순백(純白) ‘화이트’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간 예비 신부들의 고민은 어깨를 드러낼까 말까, 머메이드 라인을 택할까 A라인을 택할까와 같은 드레스의 디자인일 뿐, 색은 고민할 것도 없었다. ‘흰색’으로 통일.
하지만 최근 신부들 사이에서 통념을 깬 ‘블랙 웨딩드레스’가 유행하고 있다면 믿으시겠는지. 장례식장도 아니고 웬 블랙? 싶지만, 날씬해 보이기도 하고, 고급스러운 느낌도 준단다. 이들이 검은색을 택한 이유를 탐구해봤다.
◇'웨딩=흰색’? NO!
오는 6일 결혼식을 앞둔 예비 신부 김다소나(31)씨는 지난해 12월 경기도 파주에 있는 헤이리 마을 근처에서 웨딩 촬영을 했다. 촬영 때 입은 드레스 세 벌 중 한 벌의 색은 ‘블랙’. 처음부터 검은 드레스를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디자인과 고급진 색에 반해 현장에서 ‘픽’ 했다고. 김씨는 “파격적인 검은 드레스는 나름의 도전이었다”고 했다.
‘웨딩 드레스는 흰색’이라는 공식은 깨지고 있다. 김씨가 고른 다른 두 드레스는 각각 클래식한 흰색과 푸른 하늘색이었다. 하늘색을 고른 이유는 ‘퍼스널 컬러’(personal color·개인의 주조색)와 잘 어울리는 색이기 때문. 촬영 후 주변 친구들에게 “검은색이 흰색보다 예쁜 것 같다”는 칭찬을 들었다. 김씨는 “본식 때에는 화이트 드레스를 입을 예정”이라면서도 “결혼식 2부 드레스는 흰색이 아닌 다른 컬러로 택할 것”이라고 했다.
과거 신랑이 검은 턱시도, 신부가 흰 드레스를 입었다면 최근엔 반대의 색을 입기도 한다. 신랑이 흰 턱시도를, 신부가 검은 드레스를 입는 것이다.
2년 전 결혼식을 올린 임신 33주 차 예비 엄마 정혜리(33)씨는 제주 김녕해변에서 야외 웨딩 스냅 사진을 찍으며 검은 오프 숄더 드레스를 입었다. 남편의 턱시도는 새하얀 화이트였다. 정씨는 “여성은 흰 드레스, 남성은 검은 정장이라는 기존의 공식을 탈피해보고 싶어 ‘반전 콘셉트’로 촬영했다”고 했다.
양가 부모님 반응은 어땠을까. 정씨는 “별다른 말씀 없이 ‘하고픈 것 다 하라’는 식으로 감사하게 지켜봐주셨다”고 했다. 결혼식도 조금은 독특했다. 유서 깊은 아름다움을 좋아해 일반 결혼식장이 아닌 사적 제252호 약현성당에서 식을 올렸고, 고민 끝에 스테인드글라스로 들어오는 자연광과 가장 잘 어울리는 흰 레이스 드레스를 골랐다. 폐백(幣帛)은 따로 하지 않았단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이들은 ‘검은 드레스가 상대를 향한 한결같은 마음을 더 강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당신 이외의 색으로는 물들지 않겠다’는 의미로 신랑과 신부가 모두 ‘올 블랙’ 의상을 입기도 한다. 지난 4월 제주 함덕서우봉해변에서 각자의 웨딩 스냅 사진을 찍는 수십 명의 신랑 신부가 모두 ‘블랙’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동영상이 소셜미디어에서 500만회 이상 조회되며 화제가 됐다.
‘신부=흰 드레스’ 개념이 일반화된 건 1840년대부터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결혼식 때 흰 드레스를 입은 후 유행을 타다가 공식처럼 굳어졌다고. 옷감을 흰색으로 표백하는 비용이 비쌌기 때문에, 이전에는 보라색·붉은색 등 다양한 색상의 드레스를 입었다고 한다. 그러다 1900년대 표백 기술이 발달해 흰색 옷감의 가격이 내려가자 일반 여성도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갑오개혁 이후 서구 문화가 유입되며 서구식 결혼 문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당초 우리나라 신부의 전통 예복은 초록색 원삼(圓衫)이나 빨간 활옷이었다. 1960년대 들어 전문 결혼식장이 생기고 현대식 결혼 문화가 본격화하며 현재와 같은 흰 드레스 차림이 당연시됐다.
블랙 웨딩드레스가 유행을 타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이다. 시작은 연예인. 톱 모델 최소라는 결혼식에서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자신의 사진을 2019년 공개했다. 오히려 하객과 양가 부모님의 옷이 흰색 톤이었다. “힙(hip)하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이어 걸그룹 AOA의 전 멤버 유나도, 가수 레이디제인도 웨딩 촬영 때 검은 드레스를 입어 주목을 받았다.
이런 유행은 일본에서도 번지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실제 결혼식장에서 검은 드레스를 입는 신부가 늘고 있다”고 지난 2월 보도했다. 지난해 일본의 웨딩 트렌드로 ‘검은 웨딩드레스’가 꼽히기도 했다. 그간 일본에서는 검은 드레스가 상복(喪服)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일상에서 입는 것을 금기시해 왔다.
다만 본식에서 검은 드레스를 입기도 하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웨딩 촬영’ 때만 입는 것이 보통이다. 지난해 검은 드레스를 입고 웨딩 스냅 사진을 찍었지만, 본식에서 흰 드레스를 입었다는 김모(32)씨는 “촬영 때 검은 드레스를 택한 이유는 색다르게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결혼식장에서는 흰색 드레스를 입는 것이 더 주인공 같아 보이지 않느냐”고 했다. ‘결혼식장에서는 신부만 흰옷을 입을 수 있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는 만큼,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싶어 흰색을 택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