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주류 숍에 진열돼 있는 글렌리벳 18년./김지호 기자

국내에서는 위스키를 즐기는 데 한계가 있다. 술에 매겨지는 비싼 세금 때문이다. 10~12년 숙성된 엔트리급 위스키에서 숙성 연수를 올리자니 가격이 두 배 이상 뛴다. 그렇다고 무작정 엔트리급 위스키만 붙잡고 마시기에는 뭔가 아쉽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비싸다고 무조건 맛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맛있는 술은 비싸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엔저 현상에 일본 여행객이 크게 늘고 있다. 이를 놓칠세라 위스키 애호가들도 주류 사냥에 나섰다. 일본은 위스키에 종량세를 적용한다. 종량세란 술의 가격에 상관없이 양이나 알코올 도수를 기준으로 과세하는 구조다. 값비싼 위스키일수록 얻을 수 있는 세금 혜택은 더욱 커진다. 똑같은 위스키도 일본에서 구매하면 국내 출시가보다 절반 이하로 저렴한 이유다.

평소 가격 때문에 살까 말까 망설이던 위스키도 일본에서는 어느 정도 노려볼 만하다. 그중에서 글렌리벳 18년이 눈에 띄게 가성비가 좋다. 일본 내 가격이 워낙 저렴해서 국내 위스키 입문자들 사이에서는 일본 특산품처럼 여겨지는 제품이기도 하다.

글렌리벳 증류소는 밀주가 성행하던 시기에 최초로 합법적 주류 면허를 취득한 곳이다. 역사가 깊은 만큼 위스키 맛에서도 ‘짬’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글렌리벳 18년을 잔에 따르고 코에 대는 순간 상큼한 청사과에 오렌지 껍질 제스트를 뿌려 바닐라를 입힌 듯한 향이 난다. 위스키를 한 모금 입에 물면 40도의 알코올 도수가 다소 묽은 듯하지만, 코에서 느껴졌던 사과와 달콤한 꿀, 허브 맛이 밀고 들어온다. 위스키를 삼키면 자몽과 오크통에서 나타날 법한 나무의 쌉싸름한 여운이 입안에 감돈다. 자칫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민티한 허브향과 나무 맛은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빠진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놀라운 맛은 아니지만 정말 무난하게 꿀떡꿀떡 넘어가는 밸런스 좋은 위스키다. 운이 좋다면 일본 주류 체인점인 ‘야마야’에서 7200엔에 비교적 쉽게 구매할 수 있다. 면세 혜택도 있으니 잊지 말자. 18년 숙성 위스키를 6만원대에 맛볼 기회다. 어지간한 국내 엔트리급보다 저렴한 가격이다. 국내에서 글렌리벳 18년을 구하려면 20만원이 훌쩍 넘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일본에서 최저가만 고집할 일은 아니다. 주류 숍만 찾다가 여행의 질이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대형 주류 숍에서 1만엔 언저리에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 있으므로 너무 힘 뺄 일은 아니다. 10만원대 초반까지는 지불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술이다. 유난히 사랑받는 위스키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