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연출가 임영웅(90)씨는 1970년대에 허리 디스크를 앓고 몸이 약간 기울어졌다. 그래서 ‘움직이는 피사의 사탑’으로 불렸다. 서울 서교동 산울림소극장 1층 카페에는 ‘12시 5분 전’에 시간이 멈춘 괘종시계가 10년쯤 걸려 있었다. “비스듬하게 서 있는 임영웅 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표시”라고 주인장은 말했다.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로 기억되는 이 연출가가 며칠 전 별세했다. 연극 속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50년이 넘도록 고도를 기다려 왔다. 고도는 나타나지 않고 그들은 같은 행동을 반복할 뿐이다. 자기 삶조차 통제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에 갇힌 현대인을 포착한 것이다.
인생은 온갖 기다림의 총합이다. 군사정권 시절에 고도는 민주화를 향한 기다림으로 해석됐고 누구에게는 신(神), 또 누구에게는 어둠 속 등불과 같았다. 살면서 의지하고 싶은 대상이나 믿음, 희망이 고도였다. 연극인에겐 ‘고도=관객’이기도 했다.
영정 사진 속 연출가는 웃고만 있었다. 배우 전무송·박정자·손숙·윤석화 등과 작업한 그는 생전에 “연출가와 배우는 서로 의지하는 관계”라고 말했다. “누가 누구 위에 있는 게 아닙니다. 같이 오래 한 배우일수록 그런 믿음이 생겨요. 뭘 잘하고 뭐가 부족한지 속속들이 알게 되지요. 그렇게 인연을 이어가며 서로 발전하는 거예요.”
배우, 극작가, 연출가 등 후배들이 밤늦도록 빈소를 지켰다. 고인과 서로 믿고 의지하며 성숙해진 관계였을 것이다. 임영웅씨가 인생을 통틀어 가장 좋아한 대사는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포조의 “(누구에게나) 격려해줄 사람이 필요하잖아!”였다. 연극인들에게 임영웅씨는 존재만으로 격려가 되는 선배였다.
연극은 날마다 달라지는 시간 예술이다. 그때 그곳에 앉아 있지 않으면 흘러가 버린다. 미술은 어제 보나 오늘 보나 내일 보나 똑같다. 영화도 매한가지다. 그러나 연극은 오늘도 덧없이 사라진다. 인생을 닮은 예술이라 그 장르가 좋았다. 이제 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다시 볼 순 없을 것이다.
어떤 연극이 좋다면 반드시 희곡이 좋아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희곡도 연출가와 배우가 망쳐버릴 수 있다. 좋은 음식이라면 반드시 재료가 좋지만, 재료가 좋다고 꼭 좋은 음식이 되진 않는다는 뜻이다. 임영웅씨는 재능을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기용한 연출가, 기울어진 몸으로도 반듯한 연극을 만든 거장이었다. 그를 떠나 보낸 밤에 비스듬하게 멈춰 있던 그 괘종시계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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