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사이 마치 작전주 주식처럼 올라버린 외식 물가는 10만원 넘는 식사를 흔하게 만들었다. 그 값만큼 누릴 수 있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다. 그러나 요즘 그저 모두 같이 가격을 올렸을 뿐 그만한 자격을 가진 곳은 드물어졌다고 느낀다. 비슷한 이유로 ‘오마카세’ 혹은 ‘코스’, 한국어로 풀어 ‘맡김차림’ 한다는 집을 최대한 멀리했다. 정해진 메뉴 없이 그때그때 구해지는 식재료를 요리사의 재량으로 내놓는 콘셉트는 애당초 웬만한 능력이 아니면 구현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런 집이 흔해졌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6호선 대흥역 바로 뒤편 학원가 근처 2층에 자리한 ‘요수정’을 처음 알았을 때 흥미가 돌지 않은 이유였다.
의문과 회의. 마땅히 냉소로 일상을 채우고 자조로 밤을 보내야 한다는 한국 중년 남자의 어두운 정체성은 혀끝에서 감도는 섬세한 쾌감까지 경제적 가치로 환산해야 한다고 더욱 강박 지었다. 그러나 이 집이 내놓은 가격은 그 고민이 조금 민망해지는 수준이었다. 다섯 가지 요리가 나오는 코스가 3만원대라면 강남 쪽에서는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우중충한 회의감 대신 천연색의 기대감이 찾아왔다. 가운데 넓게 자리 잡은 주방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 벽으로 넓게 두른 바 카운터 자리는 폭이 넉넉해 좁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간단한 인사 후 점심 코스가 시작됐다.
나뭇잎 모양을 한 금빛 접시에 딸기 타르트가 놓였다. 광어살 잘게 자르고 당근 소스를 자박하게 넣고는 맨 위에 설향 딸기를 올렸다. 상큼한 딸기 맛이 먼저 느껴졌고 그 뒤로 바삭한 타르트의 식감이 작은 진동을 일으켰다. 엄지와 집게손가락 사이에 딱 들어갈 만큼 아담한 크기였지만 이 집이 지향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산뜻한 산미와 식재료가 가진 질감과 풍미를 최대한 살린 간단한 조리, 그리고 오차 범위가 좁은 소금 간으로 계절의 맛을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의도였다. 다음은 고수꽃과 올리브를 올린 줄무늬전갱이였다. 살결 사이사이에 하얗게 기름이 낀 줄무늬전갱이는 약간의 비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작은 칼을 빠르게 움직여 생선을 썰어내는 요리사의 손놀림은 눈을 지그시 감고 현을 누르는 수석 바이올린 주자 같았다. 풋내가 느껴지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산(産) 올리브오일과 새콤한 오렌지 조각이 3도 화음처럼 맛이 딱딱 맞아떨어졌다. 장엄한 악단이 뒤를 채우고 허리를 꺾은 채 빠르게 건반을 훑어내리는 협주곡이 아니라 4분의 3 박자의 약간 빠른 템포에 강약약으로 통통 튀는 귀여운 왈츠의 리듬이었다.
주방의 요리사들은 무대 위에 오른 능숙한 춤꾼처럼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요리를 접시에 올리고 손님에게 설명했다. 곧이어 나온 요리는 호박꽃 튀김이었다. 봄이 되면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꼭 이 요리가 나온다. 호박 꽃잎 안에 거제도산 죽순과 감자, 그리고 페코리노 양젖 치즈를 섞어 만든 크림을 넣었다. 곱게 튀겨낸 그 꽃봉오리를 빨간 토마토소스에 찍어 먹었다. 방목을 하여 계절을 난 짐승의 야생성이 살아 있는 치즈. 그 길들여지지 않은 기운이 봄꽃을 만났다. 왈츠의 템포에 힘이 실리고 리듬이 빨라졌다. 깔끔하게 익혀낸 토마토소스는 맛이 예리하여 튀김의 기름기를 말끔히 가렸다. 홍성산 아스파라거스에 버터와 올리브오일을 넣고 볶아낸 링귀니 파스타, 와규 살치살 구이가 이어졌다. 아스파라거스의 생동하는 초록색, 붉은 기운이 살아있는 소고기의 선명한 단면, 아늑하게 녹아내리는 감자 퓌레까지 먹었을 때 코스가 끝이 났다.
작은 무대 위에서 날숨과 들숨이 넘나들고 이마에 땀방울이 어릴 즈음 피아노를 때리는 타건음이 잦아들었다. 관객은 얼마 없지만 소박한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춤을 춘 듯 거추장스러운 표정도 몸짓도 없었다. 삶을 진부하게 만드는 허례의식도, 음흉한 꾀도 없었다. 몸속에서 솟아나는 뜨거움을 위해, 혹은 알아주는 누군가를 향한 요리를 먹은 것 같았다. 그 요리는 작은 접시 위에서 봄처럼 빛났다.
#요수정: 점심 코스 3만8000원, 저녁 코스 5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