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새벽 4시 조계사는 적막했다. 서울 종로 도심 한복판에 있는 절이지만 멀리서 가끔 자동차 소음이 들려올 뿐이었다. 절을 둘러싼 고층 건물도 캄캄하게 잠든 이 시각, 회색 법복을 입은 스님 1명이 앞서 걸었다. 스님과 달리 갈색 또는 주황색 옷을 입은 청년 12명(남자 8명)이 조용히 뒤를 따랐다. 스님 수련생이랄 수 있는 ‘행자’의 차림. 고무신이 모래를 밟는 소리가 ‘바스락바스락’ 크게 들렸다. 스님과 청년들이 목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천천히 대웅전 주변을 걸었다. 대웅전은 절에서 가장 큰 불상을 모시는 본관. 이들은 목탁 소리로 새로운 아침을 알리며 사찰을 깨우는 중이었다.
‘아무튼, 주말’은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이 단기 출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출가(出家)란 속세를 떠나 스님이 되는 것을 말한다. 조계사는 올해 처음으로 청년들이 스님이 되는 과정을 체험해 볼 수 있는 단기 출가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지난 5일부터 5박 6일 동안 청년들은 절에서 먹고 자면서 행자 생활을 체험했다. 머리를 스님처럼 완전히 밀지는 않지만 짧은 머리 또는 묶은 머리를 한 채 입방한다. 오전 3시에 일어나 오후 9시에 잠에 든다. 식사는 채식. 기자(32)를 제외한 청년들은 1994~2004년생으로 평균 26.1세였다.
◇“스님 예법 어려워” 허둥댄 첫날
지난 5일 오후 2시 조계사 입구 일주문으로 청년들이 모였다. 4층짜리 숙소 건물로 이동했다. 고무신으로 갈아신고 흰 티셔츠를 입었다. 남자는 갈색 바지, 여자는 주황색 바지를 받았다. 100m 밖이 ‘속세’지만 아주 깊숙한 미지의 훈련소에 입소한 기분이었다.
단기 출가 첫날, 숙소 3층의 30평쯤 되는 프로그램실에 들어가는 것으로 엄격한 교육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또 가장 많이 익힌 것은 행자로서 예절. 걸을 때는 오른손 뼈마디를 왼손으로 가리면서 손을 모아 다녀야 했다. “(주먹의) 공격성을 막는다”는 뜻이었다. 바닥에 있는 물건을 주울 때는 왼 무릎을 세운 채 무릎을 꿇어야 했다. 바닥에 앉을 땐 다리를 모은 채 절하듯이 엎드렸다가 양반다리로 바꾸면서 상체를 일으키는 식이었다.
가장 어려운 것은 불교식 절. 발을 모은 채 합장 자세로 그대로 무릎을 꿇는다. 동시에 왼발이 오른발 위에 오도록 꼬아야 한다. 세 번째 절은 엎드린 채 손을 합장하며 앞으로 내어놓는 동작이 추가됐다. 목탁을 두드리는 박자에 맞춰 행자 12명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 했다. 이론은 그랬지만 실제는 어설펐고 허둥댔다.
행자들을 달래준 것은 음식이었다. 스님들이 먹는 채식 식단 그대로였지만 나물도 김치도 모두 맛있었다. ‘속세’가 잊힐 정도로. 동그랗고 널따란 접시 위에 약 10종류의 반찬을 원하는 만큼 떠먹는 식이었다. 같은 버섯으로도 무침, 국, 버섯 탕수 등 다양한 요리를 했다.
마지막 미션은 잘 자는 것. 평소보다 이른 오후 9시가 취침 시간이었다. 내일 새벽 예불에 나가려면 제대로 자야 했다. 속세에 대한 근심 때문인지 오래 뒤척이다 잠들었다.
◇청년 행자들은 사연도 제각각
6일 오전 3시 40분. 눈이 떠졌다. 10분 뒤면 새벽 예불을 위해 출발해야 한다. 단체 생활인 만큼 늘 긴장해야 했다. 행자 중에는 이달 말 입대를 앞둔 대학생 임율(20)씨도 있었다. “군대 가기 전에 삶을 돌아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고 했다. 형님 행자들은 “군 생활을 일찍 체험한다”며 놀렸지만 지도 스님 말씀에는 울림이 있었다. “시간에 쫓기지 말고 시간이 나를 좇을 수 있도록 주인공이 되세요.”
이날 오전은 입재식 연습에 매진했다. 첫걸음을 떼는 행자들을 스님과 신도들이 축하해 주는 행사. 주지 스님 앞에 서기 때문에 예법과 박자가 어긋나지 않도록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입재식이 시작되자 행자들은 주지 스님을 따라 줄지어 대웅전으로 올라갔다. 걸음걸음마다 양옆으로 선 신도들이 꽃잎을 위로 던지며 환영해줬다. “큰스님이 되라”는 덕담도 들었다.
행사가 시작되고 스님들은 행자 한 명 한 명에게 바지와 같은 색 윗도리를 입혀줬다. 속세에서 길렀던 머리 일부분을 잘라 주머니에 담기도 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절하고 일어나는 박자는 행자마다 제각각이었다.
오후엔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차담’ 시간. 저마다 출가하게 된 사연을 털어놓았다. 캐나다인 길선진(27·본명 제이컵)씨는 “걸그룹 소녀시대에 빠져 한국어를 배웠다가 한국의 정신문화인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해 관심을 받았다. 이원빈(29)씨는 “어렸을 땐 불교에 열성적인 엄마의 모습이 싫었다”면서 “여행을 다니다 우연히 들른 절에서 마음이 편해졌고, 불교를 더 자세히 배우기 위해 왔다”고 했다.
행자를 응원하는 스님과 신도들의 간식 공양을 받느라 배가 꺼질 새가 없었다. 블루베리, 바나나 등 과일부터 도넛, 아이스크림까지. 절밥은 삼시 세 끼 뷔페 식으로 차려지지만 남기면 안 된다. 맛있는 절밥을 마음껏 가져다 먹으려던 욕심은 조금씩 덜어냈다.
◇108배에 방석엔 땀이 흥건
기자가 체험한 마지막 날인 7일 오전 8시. 대웅전 안에서 한 줄에 4명씩 모여 섰다. 불상 앞에 선 주지 스님이 죽비를 치자 청년들이 커다란 불상을 향해 일제히 절을 했다. ‘딱’ 소리가 날 때마다 절을 했다. 딱! 절, 딱! 절, 딱! 절…. 어느 순간 횟수 세는 것을 포기했다.
불교식 절은 이마를 바닥에 가까이 댄다. 앞에 깔아둔 방석과 이마가 만나는 자리에 땀자국이 짙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스님이 죽비를 ‘딱딱딱’ 연달아 쳤다. 108배를 마쳤다는 신호. 청년들의 번뇌도 함께 끊어졌을까?
오후에는 처음으로 ‘선 명상’을 배웠다. 차분한 음악에 맞춰 가부좌를 틀고 바른 자세로 앉은 채 속세의 걱정을 흘려보냈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과학이 발달해 발을 땅에 딛지 않고 살아가는 세상이 오더라도 마음 관리는 꾸준히 필요하다”며 “인내하면 내공이 생기고 무서울 게 없다”고 했다.
2박3일이 쏜살 같았다. 다시 속세로 돌아가야 할 시간. 주위에서 기자를 향해 “표정이 환해졌다”고 했다. 일주문을 나오자 기사 쓸 일이 또 걱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