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 반듯하게 깎은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가 늘어섰다. 유럽 대도시 같은 이 거리는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서초구는 2018년부터 반포대로·서초대로·방배로·강남대로 등 주요 도로의 가로수를 사각 형태로 가지치기하고 있다.
서초구뿐 아니다. 대구, 인천, 경기 수원·의정부, 충북 단양 등 가로수를 수종에 따라 네모·세모·동그라미 모양으로 만드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가로수를 이렇게 일정한 모양으로 다듬는 걸 ‘테마 전정(剪定)’이라 한다. 주민들은 ‘깍두기’ ‘메로나(아이스크림)’ ‘막대사탕’ ‘솜사탕 나무’ 같은 애칭으로 부른다. 관광 명소로 떠오르기도 했다.
◇‘닭발 가로수’ 흉물 논란
해마다 과도한 가로수 가지치기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굵은 가지까지 쳐내 몸통만 휑하게 남은 가로수가 ‘닭발’ 모양으로 흉물이 되거나 고사(枯死) 위기에 몰리기도 한다.
도심 열섬 현상 완화, 오염 물질 정화, 도시 미관 향상 등 가로수의 필요성은 두말하면 잔소리. 하지만 가지가 과도하게 자라면 간판을 가리거나 통행에 방해가 된다. 운전자 시야를 가리거나, 강한 바람이 불면 도시 시설물을 파괴하거나 전선을 건드리는 등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적절한 가지치기가 필요한 이유다.
문제는 무분별한 가지치기. 가로수 수목 형태를 파괴할 뿐 아니라, 잎 성장을 늦춰 광합성을 저해하고 양분 축적을 막아 가로수를 죽게 만든다. 과도하게 잘린 가지는 세균에 감염돼 부패가 일어나고, 나무 전체로 번져 서서히 고사하기 쉽다.
국제수목관리학회는 전체 가지의 25% 이내에서 가지치기할 것을 ‘수목 관리 가이드라인’에 명시했다. 25% 이상을 자르면 에너지 생산 능력이 떨어지고 수명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구체적 가로수 가지치기 지침이 없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해 환경부와 국립생물자원관이 내놓은 ‘도시 내 녹지관리 개선 방안’도 가지치기할 때 잎을 75%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도시 숲 등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도시숲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도시숲법 개정에 따라 지자체장은 가로수 제거·가지치기 등의 계획을 매년 수립하고, 가지치기를 할 경우 전문가 의견을 들어야 하며, 지역 주민과 시민 단체가 참여하는 가로수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금전적 이유에서 과도한 가지치기가 사라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지자체를 대신해 가지치기 작업을 하는 조경 업체 대표 A씨는 “강전정(강한 가지치기)보다 약전정(약한 가지치기)이 더 많은 비용이 들지만, 공사비 책정은 강전정이 약전정의 1.5배”라고 했다. “이발에 비교하면 강전정은 바리캉으로 머리카락을 밀어버리는 거예요. 훨씬 빠르고 쉽죠. 약전정은 가위로 섬세하게 머리카락을 다듬는 것과 같습니다. 당연히 시간도 수고도 더 들죠. 하지만 받는 돈은 더 적으니, 누가 약전정을 하겠습니까?”
◇안전과 도심 미관 다 잡는 테마 전정
과도한 가로수 가지치기가 논란이 되면서 테마 전정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테마 전정은 불규칙하고 무성하게 자라난 가로수를 수종의 특성을 살리면서 정형화된 모양으로 정돈하는 조경 방식이다. ‘특화 전지(剪枝)’ ‘조형 전지’라 부르기도 한다. 무성하게 자란 가로수가 신호등·교통표지판 등을 가리는 안전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도심 미관을 아름답게 하는 효과가 있다.
수원시는 테마 전정을 초기 도입한 지자체로 꼽힌다. 수원시는 2005년부터 정조로 양버즘나무 가로수를 직사각형으로, 창룡대로 은행나무 가로수를 원형으로 각각 다듬고 있다. 수원 중심 상권인 정조로와 창룡대로에서 가로수가 간판을 가린다는 민원이 많이 발생하자, 해법으로 테마 전정을 시작했다.
서초구는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벤치마킹했다. 파리처럼 거리에 빽빽하게 들어선 양버즘나무를 정형화된 네모 모양으로 정돈해 일정한 간격과 높이로 가로수를 유지한다. 반포대로, 서초대로, 방배로 등 3개 도로 724그루에 테마 전정이 적용됐다. 양버즘나무는 전국 지자체에서 테마 전정을 가장 많이 적용하는 수종이다. 양버즘나무는 소음 방지 효과가 뛰어나고 그늘이 커 가로수로 많이 활용되지만, 지나치게 빨리 자라는 데다 잎도 무성해 건물 간판뿐 아니라 전기선·신호등·교통표지판을 가려 안전 문제가 발생해 왔다.
대구시도 2019년부터 파리 샹젤리제 가로수를 참고해 수성구 들안로 등 일부 구간의 양버즘나무 가로수를 직각 모양으로 특화 전정하고 있다. 2022년부터는 양버즘나무뿐 아니라 은행나무, 이팝나무, 칠엽수 등 적용 수종을 확대했고 동그라미·네모·세모 등 모양도 다양하게 넓혔다. 대구시 관계자는 “26개 노선 5482그루를 대상으로 테마 전지를 하고 있다”고 했다.
단양군은 양버즘나무에 대한 민원이 잇따르자 1998년부터 가로수를 복자기나무로 교체해 왔고, 복자기를 둥근 버섯 모양으로 가지치기하고 있다. 단양군 안양읍 별곡사거리부터 ‘소노문 단양’ 호텔까지 2km 구간의 버섯 모양 복자기 가로수는 관광객들이 일부러 찾는 사진 촬영 명소로 자리 잡았다.
해당 지자체 주민들은 테마 전정에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다. 지난 22일 반포대로에서 서초구민 10명을 무작위로 만났다. 주민 6명은 “외국에 온 것 같다” “닭발처럼 흉측하지 않아 좋다” 등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3명은 “나무 본연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가지치기해야 한다”며 부정적이었다. 나머지 주민 1명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답했다.